곡괭이마저 평평해지는 시대, AI 골드러시의 끝에서
인공지능 산업에서 진짜 돈을 버는 쪽이 어딘지는 이미 답이 나와 있었다. 1848년 캘리포니아 골드러시에서 금을 캐러 간 사람 대부분은 빈손으로 돌아왔고, 곡괭이와 청바지를 판 리바이 스트라우스(Levi Strauss)와 새뮤얼 브래넌(Samuel Brannan)이 부자가 됐다. 2024년까지의 인공지능 시장도 거의 같은 구조였다. 엔비디아(NVIDIA)의 GPU를 사지 않으면 모델을 훈련시킬 수 없었고, 데이터센터를 짓지 않으면 서비스를 돌릴 수 없었다. 인공지능을 만드는 쪽이 아니라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게 해주는 쪽이 돈을 벌었다. 벤처캐피탈은 2025년 3분기까지 인공지능 관련 기업에 1,765억 달러를 쏟아부었고, 그 돈의 상당 부분은 결국 칩과 전력과 냉각 설비로 흘러갔다.
그런데 2026년, 그 곡괭이마저도 과거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2026년 1월 중국의 딥씩(DeepSeek)이 V3 모델을 공개하면서 업계의 전제가 하나 무너졌다. 딥씩은 V3를 훈련시키는 데 약 550만 달러를 썼다. H800 GPU 278만 8천 시간이다. 같은 수준의 성능을 내는 미국 모델들이 1억 달러 이상을 쓴 것과 비교하면 훈련 비용을 95퍼센트 줄인 셈이다. API 가격은 더 극적이다. 딥씩 V3.2의 입력 토큰 가격은 100만 개당 0.28달러. GPT-5는 같은 단위에 1.25달러를 받는다. 출력 토큰은 0.42달러 대 10달러. 같은 작업을 시키면 딥씩이 16배 싸다. 하드웨어를 덜 쓰고도 비슷한 결과를 내는 길이 열리자, 곡괭이 장사의 독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전히 2026년, 다른 방향에서 또 하나의 균열이 생겼다. 2026년 9월 15일, 타입세이프(TypeSafe)라는 회사가 젭(Jev)이라는 모델을 공개했다. 창업자 디오고 알메이다(Diogo Almeida)는 OpenAI에서 ChatGPT를 공동 발명한 사람이다. 젭은 거대언어모델(Large Language Model)이 아니다. 타입세이프는 이것을 시스템 원 모델(System One Model)이라고 부른다. 다니엘 카너먼(Daniel Kahneman)의 빠른 직관적 사고 체계에서 이름을 따왔다. 기존 거대언어모델이 토큰을 하나씩 순서대로 생성하는 자기회귀(Autoregressive) 방식으로 작동하는 반면, 젭은 병렬 샘플링(Parallel Sampling)으로 여러 질문에 동시에 답한다. 출력은 텍스트가 아니라 선택(Choice), 점수(Score), 예/아니오 확률(Noul)이라는 구조화된 결정이다. 응답 시간은 70에서 500밀리초. 기존 거대언어모델의 3초에서 329초와 비교하면 최대 193배 빠르다. 비용은 입력 토큰 100만 개당 0.042달러. GPT-5.6 테라(Terra) 대비 76분의 1이다.
젭이 의미 있는 이유는 성능 때문만이 아니다. 이 모델이 보여주는 것은, 모든 인공지능이 반드시 거대언어모델이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분류, 라우팅, 검증 같은 일은 수백억 개의 파라미터를 가진 범용 모델 대신 그 일에 특화된 작고 빠른 모델로 처리할 수 있다. 곡괭이의 크기가 작아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다른 도구가 등장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기술의 이야기다. 진짜 변화는 다른 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중국에서 나오는 감원 소식의 결이 바뀌었다. 2024년까지의 감원은 인공지능이 사람의 일을 대체하면서 생기는 구조조정이었다. 단순 반복 업무를 하던 사람들이 밀려났다. 2026년의 감원은 다르다. 인공지능 자체를 연구하고, 인공지능 서비스를 만들던 부서에서 사람이 나가고 있다.
텐센트(Tencent)가 2026년 3월에 2016년부터 운영해온 AI 랩(AI Lab)을 해체했다. 순수 연구 조직을 통째로 접고, 인력을 상용 모델인 혼원(混元, Hunyuan) 팀으로 흡수시켰다. 남겨둔 건 산학 협력 센터뿐이다. 바이두(Baidu)는 3분기 적자 이후 전사적 구조조정에 들어갔는데, 핵심 인공지능 모델 조직을 기초모델 부서와 응용모델 부서로 나누고 젊은 관리자에게 넘겼다. 자사 챗봇 원신(文心, Wenxin)의 책임자도 교체됐다. 한 부서에서는 9명 중 4명이 해고 통보를 받았다. 모닝스타(Morningstar) 분석가의 진단이 직설적이다. 거대언어모델이 갈수록 상품화(Commoditized)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유연하게 대응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이 흐름은 텐센트와 바이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2026년 7월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인공지능대회(WAIC 2026)에서 중국 기업들의 전시 방향이 일제히 바뀌었다. 문샷 AI(Moonshot AI)는 3조 파라미터급 오픈소스 모델 키미 K3(Kimi K3)를 내놓으면서도 부스는 최소한으로 줄였다. 스텝펀(StepFun)은 연구 시연 대신 실제 소비자 하드웨어인 스텝X 네오(StepX Neo) 스마트폰을 들고 나왔다. 바이춘 AI(Baichuan AI)는 종양학과 소아과 같은 의료 특화 모델을 전면에 내세웠다. 01.AI는 보스 에이전트(Boss Agent)와 탑 세일즈 AI(Top Sales AI) 같은 기업용 제품을 내놨다. 방향이 분명하다. 더 큰 모델을 만드는 경쟁에서, 이 모델로 돈을 버는 경쟁으로 전환한 것이다.
숫자가 이 전환의 속도를 보여준다. 알리바바의 인공지능 관련 매출은 2026년 1분기 기준으로 클라우드 사업 전체 매출의 50퍼센트를 넘었다. 바이두도 같은 시기에 인공지능 매출이 전체의 절반을 돌파했다. 2026년에 전체 인공지능 프로젝트의 42퍼센트가 폐쇄되거나 대형 플랫폼에 통합됐다. OpenAI조차 아틀라스 브라우저, 소라(Sora) 영상 서비스, 오퍼레이터(Operator) 에이전트, 달리(DALL-E)를 모두 접거나 ChatGPT로 흡수시켰다. 소라는 높은 운영 비용 때문에 중단됐다.
이 장면을 인터넷 시대와 겹쳐 보면 속도의 차이가 눈에 들어온다.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St. Louis Fed)의 연구에 따르면, 개인용 컴퓨터(PC)가 대중 시장에 나온 뒤 40퍼센트 보급률에 도달하기까지 약 12년이 걸렸다. 인터넷은 약 5년이었다. 인공지능은 2년 만에 같은 보급률을 찍었다. 스탠퍼드 대학교(Stanford University)의 2026년 AI 인덱스(AI Index)는 인공지능이 대중 시장에 나온 지 3년 만에 53퍼센트 보급률에 도달했다고 보고한다.
차이가 나는 이유가 있다. 인터넷은 깔아야 할 것이 많았다. 전화선 위에 모뎀을 올리고, 서버를 세우고, 브라우저를 만들고, 웹사이트를 짓고, 결제 시스템을 붙이고, 사람들이 온라인에 접속하는 습관 자체를 만들어야 했다. 인공지능은 그 위에 올라탔다. 스마트폰,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소프트웨어 생태계, 수십억 명의 연결된 사용자가 이미 존재하는 상태에서 출발했다. 바닥부터 깔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퍼지는 속도가 다른 차원이 된 것이다.
인터넷 시대에는 어디서 돈이 벌릴지 모르니까 모든 방향에 돈을 태웠다. 1999년 닷컴 버블 당시 미국에서만 수백 개의 인터넷 기업이 상장했고, 대부분은 수익 모델 없이 트래픽만 좇다가 사라졌다. 그 정리에 거의 10년이 걸렸다. 아마존(Amazon)이 분기 흑자를 처음 낸 게 2001년, 구글(Google)이 애드워즈(AdWords)로 본격적인 수익화에 성공한 게 2003년이다. 탐색에서 수익화까지의 거리가 멀었다.
인공지능은 그 거리를 단축시키고 있다. 탐색의 시간이 짧아졌다는 것은, 곡괭이가 필요한 시간도 짧아졌다는 뜻이다. 인터넷 시대에 곡괭이 역할을 한 시스코(Cisco), 선마이크로시스템즈(Sun Microsystems), 장비 업체들은 10년 넘게 호황을 누렸다. 인공지능 시대의 곡괭이인 GPU와 데이터센터 장비는 그만큼의 시간을 보장받지 못할 수 있다. 물론 데이터센터는 계속 필요하다. 하지만 딥씩이 보여준 것처럼 같은 성능에 필요한 하드웨어의 양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고, 젭이 보여준 것처럼 거대한 모델 자체가 필요 없는 영역이 늘어나고 있다면, 곡괭이의 수요 곡선은 인터넷 시대와 같은 모양이 되기 어렵다.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지 애커로프(George Akerlof), 마이클 스펜스(Michael Spence),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의 정보 비대칭(Information Asymmetry) 이론은 시장에서 한쪽이 다른 쪽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질 때 비효율과 초과 이윤이 발생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조지 메이슨 대학교(George Mason University)의 경제학자 알렉스 타바록(Alex Tabarrok)과 타일러 코웬(Tyler Cowen)은 2015년 카토 언바운드(Cato Unbound)에 비대칭 정보의 종말(The End of Asymmetric Information)이라는 글을 발표하면서, 인터넷이 이 격차를 체계적으로 허물고 있으며 이 추세는 되돌릴 수 없다고 진단했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2026년, 인공지능이 그 추세에 가속도를 붙였다. 정보의 격차가 줄어드는 정도가 아니라, 행동 능력의 격차까지 줄어들고 있다. 예전에는 정보를 가진 사람과 갖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있었고, 그 정보를 실행할 능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가 있었다. 이 두 겹의 격차가 초과 이윤의 원천이었다. 이제 인공지능이 두 겹을 동시에 허물고 있다. 누구나 같은 수준의 코드를, 같은 수준의 분석을, 같은 수준의 디자인을 만들 수 있게 되면, 만들 수 있다는 사실 자체는 더 이상 차이를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중국 기업들이 하고 있는 일이 의미가 있다. 연구를 접고 상용화로 돌아선 것이 아니라, 연구와 상용화 사이의 구분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텐센트가 AI 랩을 해체하고 혼원 팀에 합친 것은 연구를 포기한 게 아니라, 연구가 제품 안에서 일어나는 시대가 왔다는 판단이다. 바이두가 기초모델과 응용모델을 나눠서 젊은 팀에 맡긴 것은 탐색이 끝났다는 선언이다. 모닝스타 분석가의 말처럼, 거대언어모델이 상품이 된 이상, 더 좋은 모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모델로 무엇을 하느냐가 유일한 질문이 됐다.
인터넷이 10년에 걸쳐 완성한 이 전환을 인공지능은 3년도 안 걸려서 통과하고 있다. 다 아는 영역에서는 돈을 벌기 어렵다는 오래된 원칙이, 그 속도 때문에 훨씬 빠르게 현실이 되고 있다.
도덕경(道德經) 11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삼십 개의 바큇살이 하나의 바퀴통에 모이는데, 그 빈 곳이 있으므로 수레의 쓸모가 있다. 三十輻共一轂 當其無 有車之用. 있음이 이로움이 되는 것은, 없음이 쓰임이 되기 때문이다. 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
모든 사람이 같은 곡괭이를 같은 가격에 쥘 수 있게 된 광산에서, 곡괭이라는 있음(有)은 더 이상 차이를 만들지 않는다. 차이를 만드는 것은 어디를 파고, 어디를 파지 않을지를 가르는 없음(無)의 자리다. 그리고 인터넷 때와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그 자리를 찾을 시간이 예전보다 훨씬 짧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