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sdom

밥을 먹으면서 화면을 보는 이유, 수천 년 된 식탁의 본능

밥을 먹으면서 무언가를 본다. 유튜브를 틀든, 넷플릭스를 켜든, 혼자 밥을 먹는 사람 대부분은 화면 없이 숟가락을 들지 못한다. 이것이 과식을 부르고, 포만감을 둔하게 만든다는 연구는 이미 여러 편 쌓여 있다. 그런데 이 행동을 단순히 나쁜 습관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식사 중에 사람의 목소리를 곁에 두려는 충동은, 스마트폰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인류가 밥을 먹기 시작한 때부터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먼저 숫자부터 보자. 2014년 학술지 Appetite에 실린 Hetherington 연구팀의 실험에서, 텔레비전을 보면서 식사한 참가자들은 화면 없이 먹은 그룹보다 뚜렷하게 더 많은 열량을 섭취했다. 이 연구는 시각적 자극이 주의를 빼앗으면서 포만감 신호 처리가 지연된다는 메커니즘을 제시했다. 2025년 Physiology & Behavior에 발표된 후속 연구는 한 가지 흥미로운 구분을 추가했는데, 텔레비전 시청은 실제로 열량 섭취를 늘리지만 스마트폰 사용은 유의미한 차이를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화면의 크기와 몰입도가 핵심 변수라는 뜻이다. 그리고 2026년 American Journal of Clinical Nutrition에 실린 체계적 문헌 검토와 메타 분석은, 주의 분산 상태에서의 식사가 동시 섭취량뿐 아니라 이후 식사의 섭취량까지 늘린다는 결과를 종합했다. 뇌가 방금 먹은 것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니, 다음 끼니에서도 과잉 섭취가 이어진다는 이야기다.

과학적으로 보면 결과는 분명하다. 화면을 보면서 먹으면 더 먹고, 먹고도 덜 만족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음 물러서서 질문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왜 밥을 먹으면서 굳이 무언가를 보려고 하는가.

심리학에서는 준사회적 관계(Parasocial Relationship)라는 개념이 있다. 미디어 속 인물과 실제로는 일방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마치 함께 있는 것 같은 심리적 안정을 얻는 현상이다. 2021년 Stein의 연구팀이 Human Behavior and Emerging Technologies에 발표한 논문은, 혼자 식사하는 사람들이 먹방(Mukbang)을 포함한 미디어를 켜는 행동이 이 준사회적 관계의 충족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분석했다. 외로움 수준이 높을수록 식사 중 미디어 사용이 빈번했고, 특히 먹방은 다른 콘텐츠보다 사회적 대리 만족(Social Surrogate) 기능이 두드러졌다. 누군가 먹는 모습을 보면서 먹으면, 혼자가 아닌 것 같은 착각이 생긴다. 착각이라고 해서 가치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 이 충동의 뿌리는 매우 깊다. 인류 역사에서 식사는 거의 언제나 사회적 행위였다. 로마의 연회(Convivium)를 떠올려보면 된다. 로마 귀족들은 트리클리니움(Triclinium)이라는 식당에 기대어 누워 먹으면서, 시 낭송을 듣고, 무용수의 춤을 보고, 악사의 연주를 곁에 두었다. 페트로니우스의 사티리콘에 나오는 트리말키오의 만찬은 그 극단적인 풍경을 묘사한다. 음식이 나올 때마다 연극적 퍼포먼스가 동반되고, 손님들은 먹으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보고 듣는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로마 연회 해설에 따르면, 식사 중 오락은 로마 상류층의 사교 문화에서 분리할 수 없는 요소였다. 먹는 것과 보는 것은 원래 함께였다.

동양도 다르지 않았다. 조선의 궁중 연회에서는 정재(呈才)라 하여, 음식이 올라올 때 춤과 음악이 반드시 동반되었다. 당악(唐樂)과 향악(鄕樂)이 교대로 연주되고, 무용수들이 춤을 추는 가운데 왕은 수라를 들었다. 중국의 황제들도 마찬가지였다. 식사는 조용한 행위가 아니었다. 오히려 침묵 속에서 혼자 밥을 먹는 것이 역사적으로는 예외에 가깝다.

텔레비전이 발명되고 나서, 그 역할을 TV가 물려받았을 뿐이다. 거실 한가운데 놓인 텔레비전 앞에서 온 가족이 저녁을 먹던 풍경은, 20세기 중반 이후 거의 모든 나라에서 보편적이었다. 지금은 그 텔레비전이 손 안의 화면으로 옮겨온 것이고, 가족이 사라진 자리에 유튜버가 들어와 앉은 것이다.

먹방이 그 극단적인 형태다. 누군가 카메라 앞에서 엄청난 양의 음식을 먹는 것을 보면서, 시청자는 함께 밥을 먹는다. Frontiers in Psychology에 실린 연구들은 먹방 시청이 준사회적 상호작용(Parasocial Interaction)을 활성화하고, 이것이 외로움의 부분적 완화로 이어진다고 보고했다. 혼밥의 시대에, 먹방은 일종의 디지털 식탁 동료인 셈이다. 물론 그 동료는 나를 모르고, 나는 그 동료에게 말을 걸 수 없지만, 목소리와 씹는 소리만으로도 뇌는 어느 정도 위안을 받는다.

수행의 관점에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도교의 양생(養生) 전통에서 식사는 기(氣)를 받아들이는 행위다. 장자(莊子)가 말한 심재(心齋), 마음을 비우는 공부는 일상의 모든 행위에서 의식을 현재에 두는 것을 포함한다. 먹을 때 먹는 것에만 집중하라는 가르침은, 포만감 신호를 제대로 수신하라는 현대 영양학의 권고와 놀라울 정도로 겹친다. 의식적 식사(Mindful Eating)라는 개념이 동양의 수행 전통에서 비롯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수행자가 아닌 보통 사람들에게, 조용히 혼자 밥을 먹으라고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루 종일 사람들 사이에서 시달리다가 겨우 혼자 된 저녁 시간에, 아무 소리 없는 식탁 앞에 앉아 숟가락질만 하고 있으면 고요함이 위안이 되기보다 공허함이 될 수 있다. 외롭고 마음이 힘든 사람에게, 화면 속 누군가의 목소리는 실질적인 온기다. 그것이 과학적으로 과식을 유발한다 해도, 그 온기마저 빼앗는 것이 옳은 일인지는 또 다른 문제다.

결국 이것은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에 가깝다. 칼로리를 적게 먹는 것이 맞는가, 아니면 외롭지 않게 먹는 것이 맞는가. 둘 다 맞다고 말하기엔, 두 가지가 같은 자리에서 공존하기 어렵다. 사람이 밥을 먹으면서 무언가를 보는 행위는,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식탁 위의 본능이 지금 이 시대에 찾은 가장 손쉬운 출구일 뿐이다. 그 출구가 건강에 좋은지 나쁜지는 따로 있고, 사람에게 그 출구가 필요한지 아닌지도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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