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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가 늘어도 주가는 떨어진다, 메모리 사이클의 규칙

주가는 수요를 반영하지 않는다. 수요에 대한 기대가 어느 방향으로 바뀌는지를 반영한다. 이 둘은 전혀 다른 것이고, 메모리 반도체의 지난 30년은 그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가장 가혹하게 보여준 기록이다. 수요가 계속 늘어난다는 전제가 옳아도 주가가 우상향한다는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실제로 메모리 산업에서는 수요가 늘어나는 바로 그 기간에 주가가 90퍼센트 빠진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2026년 7월 17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린 대한상의 하계포럼에서 SK하이닉스 주가를 두고 메모리는 계속 필요하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보면 우상향으로 간다고 말했다. 인공지능이 성숙할수록 저장해야 할 기억이 늘어나고, 그 기억을 담는 것이 메모리 칩이니 수요는 기하급수로 늘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사고팔고 하지 말고 가만히 갖고 있는 편이 재산 보전에 좋다는 조언이 뒤따랐다.

전제는 맞을 것이다. 추론 중심으로 넘어간 인공지능이 더 많은 메모리를 요구한다는 데 이견을 달 이유가 없다. 문제는 그 전제에서 결론으로 넘어가는 다리다. 수요가 늘면 이익이 늘고, 이익이 늘면 주가가 오른다는 삼단논법은 상식처럼 들리지만 세 개의 연결 고리 중 두 개가 자주 끊어진다.

먼저 숫자를 보자. 1995년 전 세계 D램 시장 규모는 400억 달러를 넘었다. 그로부터 7년 동안 매출은 늘기는커녕 줄었고, 2001년에는 100억 달러를 밑돌았다. 같은 기간 표준 D램 한 개의 용량은 4메가바이트에서 256메가바이트로 예순 배 이상 커졌다. 다시 말해 세상이 소비한 메모리의 총량은 폭발적으로 늘었는데, 그것을 만들어 판 회사들의 매출은 4분의 1로 쪼그라들었다. 수요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었다. 그 사실이 아무도 구해주지 못했을 뿐이다.

메모리에서 비트 단위 수요가 뒷걸음질 친 해는 거의 없다. 2023년이 사상 처음으로 D램 수요 비트 성장률이 한 자릿수인 8.3퍼센트로 떨어진 해였는데, 그것도 마이너스가 아니라 플러스였다. 그런데도 그해 SK하이닉스는 조 단위 영업손실을 냈다. 수요가 8퍼센트 늘어난 해에 회사가 적자를 본 이유는 공급이 14퍼센트 늘었기 때문이다. 가격은 수요의 절대량이 아니라 수요와 공급의 격차에서 결정된다. 격차는 방향이 아니라 속도의 차이에서 생기고, 그래서 방향만 보고 있으면 반드시 틀린다.

1995년에도 똑같았다. 1993년과 1994년에 D램은 공급이 모자랐고 주요 업체의 매출총이익률은 50퍼센트를 훌쩍 넘겼다. 삼성과 현대전자, 지금의 SK하이닉스는 창사 이래 최대 이익을 냈고 반도체는 한국 수출의 13퍼센트를 넘어섰다. 한국 산업사에서 가장 위대한 호황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그리고 1995년과 1996년 두 해 동안에만 전 세계에서 50개 안팎의 새 공장 건설 계획이 발표됐다. 설비투자가 반도체 생산액의 30퍼센트를 넘었다. D램 가격은 1995년 말 고점을 찍고 1996년에 51퍼센트, 1997년에 다시 65퍼센트 떨어졌다. 1995년의 이익이 1996년의 공급을 불렀고, 1996년의 공급이 1997년의 적자를 불렀다. 이익 그 자체가 이익을 죽인 것이다.

여기서 규칙 하나가 나온다. 초과수익은 수요에서 나오지 않는다. 병목(bottleneck)에서 나온다. 수요가 아무리 커도 누구나 만들 수 있으면 값은 원가로 수렴한다. 반대로 수요가 평범해도 만들 수 있는 곳이 세 곳뿐이면 값은 부르는 대로 간다. 지금 SK하이닉스가 최근 분기에 70퍼센트를 넘는 영업이익률을 냈다는 사실, 2025년 한 해 매출 97조 1467억 원에 영업이익 47조 2063억 원으로 영업이익률 49퍼센트를 기록했다는 사실은 메모리 수요가 크다는 증거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메모리가 병목이라는 증거다. 제조업체가 매출의 절반을 이익으로 남긴다는 것은 정상적인 경쟁 상태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그것은 이윤이 아니라 지대(economic rent)에 가깝다. 그리고 지대는 자리에 붙는 것이지 사람에게 붙지 않는다. 자리가 사라지면 사람도 함께 사라진다.

병목이 오래가지 않는 이유는 병목 자체가 신호이기 때문이다. 49퍼센트라는 이익률은 전 세계 자본에 보내는 광고문이다. 여기를 파라. 그리고 자본은 반드시 온다. 마이크론은 2026 회계연도 설비투자를 200억 달러로 올렸고 아이다호 신공장 가동 시점을 2027년 중반으로 앞당겼다. 삼성전자는 평택 5공장 공사를 재개했고, SK하이닉스는 용인 클러스터 1기 팹을 2027년 완공을 목표로 짓고 있으며 청주 M15X를 조기 가동한다. D램 3사의 2026년 설비투자는 전년 대비 평균 40퍼센트 이상 올라갔다. 다만 이 돈이 실제 출하량으로 바뀌는 시점은 2027년 하반기 이후다. 삼성의 차세대 공장 P5L은 계획을 최대한 당겨도 2028년 중반에나 웨이퍼를 넣을 수 있다.

그 시차가 사이클의 정체다. 지금 벌어들이는 초과수익은 2년 전에 아무도 증설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것이고, 지금 집행되는 증설은 2년 뒤에 도착한다. 도착할 때 수요가 그만큼 자라 있으면 균형이 유지되고, 조금이라도 덜 자라 있으면 가격은 무너진다. 자본의 결정은 오늘의 가격을 보고 내려지는데 물건은 미래의 가격에 팔린다. 이 구조를 바꿀 방법은 없다. 공장을 짓는 데 3년이 걸리는 한, 메모리는 영원히 뒤늦게 대응하는 산업이다.

가격이 오르는 것 자체가 수요를 갉아먹는다는 점도 있다. 지금 보급형 스마트폰 원가에서 D램이 차지하는 비중은 35퍼센트, 낸드가 19퍼센트다. 둘을 합치면 원가의 절반을 넘는다. 이 수준에서 값이 더 오르면 제조사는 용량을 줄이거나 제품을 포기한다. 메타는 서버 수명을 6년에서 7년으로 늘리는 식으로 메모리 구매를 미루기 시작했다. 애플은 다음 분기 메모리 원가가 크게 오를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것이 수요 파괴다. 값이 오르면 공급이 늘고 수요가 준다. 양쪽에서 동시에 병목을 메우러 온다.

이 대목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갈 사례가 있다. 코닝이다. 1970년에 상용 광섬유를 처음 만든 회사이고, 1990년대 후반 인터넷을 깔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병목이었다. 1998년 8월에 9달러 근처였던 주가는 2000년 8월 113달러까지 갔다. 시가총액 1150억 달러. 당시의 논리는 지금과 한 글자도 다르지 않았다. 인터넷 트래픽은 계속 늘어난다. 트래픽이 늘면 광섬유가 더 필요하다. 그러니 코닝은 우상향한다.

전제는 옳았다. 인터넷 트래픽은 그 뒤로 단 한 해도 줄지 않았다. 2026년 1분기 코닝의 광통신 매출은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수요에 힘입어 전년 대비 36퍼센트 늘었다. 26년이 지난 지금 그 예측은 완벽하게 실현됐다. 그사이 주가는 2002년 10월에 1달러 근처까지 떨어졌다. 고점 대비 99퍼센트다. 글로벌크로싱과 월드컴, 360네트웍스가 줄줄이 무너졌고 2000년부터 2002년 사이 전 세계 통신주 시가총액에서 2조 달러가 사라졌다. 이유는 단순하다. 깔린 광섬유의 85퍼센트에서 97퍼센트가 불이 켜지지 않은 채 땅속에 묻혀 있었다. 수요는 늘고 있었지만, 이미 깔린 공급이 그 수요를 몇 배로 앞질러 있었다.

이 이야기의 가장 서늘한 대목은 따로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남아 있는 파나수스 펀드의 2002년 6월 보고서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코닝 주가가 7.62달러에서 3.55달러로 떨어졌다고 적은 다음, 네트워크 트래픽이 늘고 있으니 언젠가 통신사들은 광섬유에 더 투자해야 할 것이고 그때가 되면 주가는 강하게 회복할 것이라고 썼다. 지금 3.55달러는 아무리 봐도 싸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 판단은 논리적으로 흠잡을 데가 없었고, 실제로 옳았고, 다만 회복까지 20년 넘게 걸렸다. 산업의 미래를 맞히는 일과 주식으로 돈을 버는 일은 같은 일이 아니다. 이 문장은 지금도 공개된 문서로 남아 있다.

그래서 주가는 무엇으로 움직이는가. 기대의 변화율로 움직인다. 오늘의 주가에는 이미 알려진 미래가 전부 들어 있다. 인공지능이 메모리를 많이 쓴다는 이야기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이고, 2026년 메모리 시장이 전년 대비 85퍼센트 성장해 4000억 달러에 이르고 삼성과 SK하이닉스의 합산 메모리 영업이익이 200조 원을 넘을 것이라는 전망은 이미 증권사 보고서에 인쇄돼 있다. 인쇄된 미래는 더 이상 수익의 원천이 아니다. 주가가 오르려면 그 인쇄된 숫자보다 더 좋아져야 한다. 실적이 좋아지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좋아지는 속도가 어제보다 빨라져야 한다. 그래서 경기민감주에서는 실적이 가장 좋고 주가수익비율(PER)이 가장 낮아 보이는 순간이 대개 고점이다. 분모의 이익이 정점이기 때문이다. 싸 보여서 사는 순간이 가장 비싸게 사는 순간이라는 역설이 이 업종의 오래된 규칙이다.

여기서 세 개의 규칙이 남는다. 첫째, 수요의 방향이 아니라 수요와 공급의 속도 차이가 가격을 정한다. 둘째, 초과수익은 병목의 임대료이고 병목은 이익을 신호로 삼아 스스로를 메운다. 셋째, 주가는 실현된 이익이 아니라 기대의 수정분에 반응하므로, 모두가 아는 좋은 소식은 이미 값이다.

장자의 산목편에는 直木先伐 甘井先竭이라는 말이 있다. 곧은 나무가 먼저 베이고, 단 우물이 먼저 마른다. 나무가 베이는 이유는 굽어서가 아니라 곧아서이고, 우물이 마르는 이유는 물이 나빠서가 아니라 달아서다. 쓸모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소진의 원인이 된다. 지금의 메모리는 세상에서 가장 단 우물이다. 물이 달다는 것과 그 우물이 계속 물을 낼 것이라는 것은 서로 다른 이야기이고, 오히려 달기 때문에 두레박이 몰린다. 하이닉스가 매출의 35퍼센트를 설비투자에 넣으면서 공급과잉 위험을 관리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도, 세 회사가 질서 있는 증설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결국 우물이 마르는 속도를 자기들 손으로 조절해 보겠다는 뜻이다. 지난 30년 동안 이 조절이 성공한 적은 없다. 다만 실패할 때마다 살아남은 회사의 수가 줄었고, 1995년에 상위 10개사가 나눠 갖던 시장을 지금은 세 회사가 90퍼센트 넘게 쥐고 있다. 사이클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사이클을 견디는 사람이 줄었다.

시장에서 삼십 년을 지켜보며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산업의 서사와 주식의 손익은 서로 다른 시계로 흐른다는 것이다. 서사는 십 년 단위로 옳고 주식은 분기 단위로 정산된다. 옳은 이야기를 붙들고 있다가 파산하는 것이 이 바닥에서 가장 흔한 죽음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최 회장의 발언 안에 이미 답의 절반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주가가 갑자기 열 배씩 오른 것도 이런 현상 때문이라며, 전망이 좋아지면 올라갔다가 조금 아닌 것 같으면 확 떨어지기도 한다고 했고, 다음 달 주가가 어떻게 될지는 자기도 모른다고 했다. 열 배는 메모리 수요가 열 배로 늘어서 오른 것이 아니다.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열 배로 늘어서 오른 것이다. 그 문장을 말한 사람이 그 다음 문장으로 가만히 갖고 있으라고 말한 것인데, 두 문장 사이에는 아무도 건너본 적 없는 강이 하나 흐르고 있다.

수요는 늘어날 것이다. 우물이 다는 것도 사실이다. 남은 질문은 두레박이 몇 개까지 오는지, 그리고 그때 당신이 우물 주인인지 두레박 주인인지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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