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은 사람을 따라간다, 한 길은 0이 되어도 한 사람은 0이 아니다
직장을 잃거나 업종을 통째로 바꿔야 하는 순간, 지난 십 년의 축적은 정말 사라지는가. 답부터 말하면, 한 길은 0으로 돌아갈 수 있어도 한 사람은 0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문제는 대부분 자리에 묶여 있는 것과 사람을 따라 움직이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시작된다.

실리콘밸리의 투자자 나발 라비칸트(Naval Ravikant)는 조 로건(Joe Rogan)의 팟캐스트에서 산을 비유로 들었다. 한 사람이 평생 한 산을 오른다. 3분의 2쯤 올라간 지점에서, 이 길로는 정상에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정상으로 가려면 다시 산기슭까지 내려가 다른 길을 찾는 수밖에 없다. 아무도 그러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미 올라온 높이를 버리는 일이고, 나이가 들수록 남은 시간이 짧아 그 대가가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라비칸트는 위대한 창작자와 사업가일수록 바로 이 다시 시작하는 능력을 가졌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산기슭으로 내려가는 것은 정말 전부를 잃는 일인가.
최근 몇 년, 안정적이라 여겨지던 업들이 흔들렸다. 부동산이 그랬고, 한때 사람을 빨아들이던 인터넷 업계도 그랬다. 많은 사람의 다시 시작은 스스로 고른 것이 아니라, 딛고 서 있던 길이 갑자기 꺼져버린 결과였다. 그럴 때 진짜 사람을 얼어붙게 만드는 것은 당장의 수입이 아니다. 더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이렇게 오래 했는데, 여기를 떠나면 나에게 무엇이 남는가.
직위, 수입, 회사 안에서 쌓은 인맥, 플랫폼이 실어준 조회수. 이 손실은 전부 진짜다. 그러나 우리는 한 길이 0이 된 것을 한 사람이 0이 된 것으로 자주 착각한다. 직위는 원래 회사에 남는다. 하지만 뒤엉킨 일을 가닥 잡고, 서로 다른 사람들을 맞물리게 해서 결과물을 내놓는 능력은 사람을 따라 움직인다. 고객 명단은 원래 플랫폼에 남는다. 하지만 고객이 품은 망설임을 알아듣고, 신뢰를 쌓아 거래를 맺는 능력은 사람을 따라 움직인다. 조회수는 그 글 안에 남는다. 하지만 진짜 문제를 찾아내고, 무엇을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지 가늠하고, 반응을 받아 고쳐 나가는 능력은 다음 일로 함께 넘어간다.
노자는 도덕경(道德經) 28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樸散則爲器. 통나무가 흩어지면 그릇이 된다. 여기서 박(樸)은 아직 아무것도 되지 않은 통나무, 깎이기 전의 재질이다. 그것이 쪼개지고 다듬어져 구체적인 그릇, 곧 기(器)가 된다. 자리와 직함은 기(器)다. 이미 하나의 모양으로 굳어버린 형태다. 하나의 그릇은 하나의 쓰임밖에 갖지 못한다. 그래서 그 그릇이 깨지면 사람은 자기 전부가 깨진 것처럼 느낀다. 그러나 같은 장에서 노자가 먼저 해둔 말이 있다. 常德不離. 늘 그러한 덕(德)은 떠나지 않는다. 영화로움과 욕됨을 다 겪고도 復歸於樸, 통나무로 돌아간다. 자리를 잃는 것은 그릇 하나를 잃는 것이지 통나무를 잃는 것이 아니다. 통나무가 남아 있는 사람은 다시 어떤 그릇으로도 빚어질 수 있다. 노자는 그런 사람을 두고 聖人用之則爲官長, 성인은 이 이치를 써서 우두머리가 된다고 했고, 끝에 大制不割이라 못박았다. 크게 마름질하는 자는 자기를 하나로 잘라내지 않는다.
이력서에 적는 소통 능력, 학습 능력, 실행력 같은 명사는 통나무가 아니다. 회사를 바꾸고, 플랫폼을 바꾸고, 심지어 업종을 바꾸고도 다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 그것만이 사람을 따라가는 능력이다. 진짜 내 것은 내가 한때 무엇을 가졌었느냐가 아니라, 원래의 조건을 떠난 뒤에도 그것을 다시 얻어낼 수 있느냐다.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인터넷에서 로켓과 자동차로 옮겨갔다. 전문 지식은 확실히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그러나 그는 진짜 신인이 아니었다. 자금을 끌어모으고, 사람을 뽑고, 자원을 조직하고, 얽힌 문제를 풀어내는 능력을 통째로 새 영역에 가지고 들어갔다. 라비칸트가 바로 그를 예로 들며, 머스크는 자격이 없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제프 베이조스(Jeff Bezos)의 경우는 더 노골적이다. 1994년, 서른 살의 그는 헤지펀드 디이쇼(D.E. Shaw)의 수석부사장이었다. 웹 사용량이 한 해 2,300%씩 늘어난다는 보고서를 보고 회사를 떠나 아마존을 세우기로 했을 때, 상사는 이렇게 말했다. 좋은 생각이긴 한데, 이미 좋은 직장을 가지지 않은 사람에게 더 좋은 생각일 거라고. 이것이 자리에 매인 사람의 딜레마를 정확히 찌른다. 이미 높이 올라온 사람일수록 통나무보다 그릇을 아까워한다. 베이조스가 가지고 나온 것은 금융이라는 업종이 아니라, 기회를 판별하고 아무것도 없는 데서 조직을 세우는 방식이었다. 그것은 책을 파는 데도, 클라우드를 파는 데도, 로켓을 쏘는 데도 다시 쓰였다.
고수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은 남들보다 용감해서만은 아니다. 그들은 자리를 잃되, 자리를 다시 세우는 능력을 가지고 나가기 때문이다.
이미 산기슭으로 떠밀려 내려온 사람이 가장 먼저 할 일은 과거를 서둘러 부정하는 것도, 요즘 뜨는 기술을 급하게 쫓는 것도 아니다. 지나온 경험을 한 번 다시 번역하는 것이다. 나는 십 년간 부동산을 했다는 한 줄로 자기를 요약해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쓸모 있는 재고 조사는 실제로 해낸 일에서 증거를 찾는 데서 시작한다. 그때 어떤 난제가 있었고, 어떤 결정적 행동을 했고, 결국 무엇이 남았는가. 그런 다음 물어야 한다. 원래 업종 말고, 지금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은 또 누구인가.
부동산 영업이 진짜 가지고 나올 수 있는 것은 집을 팔아봤다는 사실이 아니다. 몇 달에 걸친 결정 과정 안에서 한 가정의 진짜 결정권자를 찾아내고, 가격과 대출과 위험에 대한 불안을 다루고, 여러 관계를 조율해 단가 높은 거래 하나를 성사시킨 능력이다. 이 능력이 모든 업종에 저절로 통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단가가 크고, 결정이 오래 걸리고, 신뢰가 무거운 일 앞에서는 다시 꺼내 쓸 수 있다. 한 사람이 진짜 가지고 나오는 것은 업종의 이름이 아니라, 결과로 이미 증명된 문제 해결 방식이다.
아직 산 위에 남아 있는 사람이라면, 할 일은 아무 부업이나 붙잡거나 불안을 달래려 유행하는 기술을 하나 더 배우는 것이 아니다. 더 쓸모 있는 준비는, 자기 것이라 믿는 능력 하나를 골라, 지금의 직위와 회사 이름과 내부 자원을 잠시 떼어내고, 낯선 환경에서 작지만 진짜인 결과를 한 번 더 낼 수 있는지 시험하는 것이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은 작은 제품 하나의 사용자를 혼자 힘으로 찾아내 그 가치를 설명해볼 수 있다. 관리를 해온 사람은 직위의 권한 없이 작은 협업을 조직해 결과물을 마무리해볼 수 있다. 영업을 해온 사람은 다른 상품을 들고 낯선 고객 앞에서 신뢰를 처음부터 다시 쌓을 수 있는지 확인해볼 수 있다. 결과는 클 필요가 없다. 다만 그 일이 원래의 플랫폼에 주로 기대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그리고 증거가 남아야 한다. 실제로 성사된 한 건, 완성된 작품 하나, 앞뒤를 비교할 수 있는 숫자, 혹은 다시 찾아오는 고객 한 명. 어떤 능력이 원래의 환경을 떠나서도 다시 쓰이고 다시 증명될 때, 비로소 그것은 진짜 내 것이 되기 시작한다.
물론 다시 시작에는 시간과 저축과 가족의 뒷받침과 기회가 필요하다. 옮겨갈 수 있는 능력이 재시작의 대가를 없애주지는 않는다. 다만 산기슭으로 돌아온 사람이 정말로 빈손이 되지는 않게 해준다. 갈수록 불확실해지는 시대에 진짜 안정은 결코 변하지 않을 길 하나를 찾아내는 데 있지 않다. 길이 어떻게 바뀌어도 다시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에 있다.
산기슭으로 돌아오는 일은 물론 아프다. 그러나 3분의 2를 걸어 올라가 본 사람은 처음 그 자리에 섰던 그 사람이 이미 아니다. 그가 잃은 것이 깨진 그릇인지, 아니면 아직 손대지 않은 통나무인지. 어쩌면 물어볼 값어치가 있는 질문은 그것 하나뿐이다.
요약
한 길은 0으로 돌아갈 수 있어도 한 사람은 0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자리에 묶인 것(직위, 인맥, 조회수)과 사람을 따라 움직이는 능력을 구분하는 것이 핵심이다. 도덕경 28장은 자리와 직함을 기(器), 곧 굳어버린 그릇으로, 다시 빚어질 수 있는 재질을 박(樸), 곧 통나무로 나눈다. 그릇 하나가 깨지는 것과 통나무를 잃는 것은 다르다. 나발 라비칸트의 산 비유, 인터넷에서 로켓으로 옮겨간 일론 머스크, 헤지펀드 수석부사장 자리를 버리고 아마존을 세운 제프 베이조스가 모두 같은 이치를 보여준다. 옮겨갈 수 있는 능력은 원래 환경을 떠나 다시 결과를 낼 때 비로소 증명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