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물을 구하는 순서, 먼저 깨닫고 나중에 구한다
돈을 좇는 사람은 대체로 순서를 거꾸로 잡는다. 결과를 먼저 손에 넣으려 하고, 그 결과를 만들어내는 자기 자신은 나중으로 미룬다. 방법과 기술은 열심히 배우면서, 재물이 움직이는 밑바닥 원리는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래서 유행하는 종목을 따라다니고, 남이 돈 벌었다는 사업을 흉내 내고, 지름길이라는 말에 번번이 걸려든다. 오래 시장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안다. 이렇게 모은 돈은 대부분 왔던 길로 되돌아간다. 운으로 번 돈은 실력으로 잃는다는 말이 시장에서 격언으로 굳어진 데는 이유가 있다.

재물의 첫 번째 원리는 단순하다. 오래가는 돈은 빼앗아 온 것이 아니라 교환으로 들어온 것이다. 내가 누군가의 문제를 풀어주고, 그 대가로 받는 것이 돈이다. 그러니 돈의 크기는 결국 내가 풀어준 문제의 크기와 비례한다. 계산에 밝은 사람은 이 지점에서 자꾸 걸린다. 손해 보지 않으려 하고, 먼저 내주지 않으려 하고, 적게 주고 많이 받으려 한다. 거래 한 번으로 보면 이기는 것 같지만, 거래가 반복되면 상대가 먼저 안다. 그리고 떠난다. 길이 좁아지는 것은 그다음이다.
도덕경 7장은 이 구조를 이상할 만큼 정확하게 짚는다. 天長地久. 天地所以能長且久者 以其不自生 故能長生. 하늘과 땅이 오래가는 것은 스스로를 위해 살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구절이 핵심이다. 非以其無私邪 故能成其私. 사사로움이 없기에 오히려 사사로움을 이룬다. 자기 몫을 먼저 챙기지 않는 자가 결국 자기 몫을 얻는다는 역설인데, 이것을 도덕 교과서의 훈계로 읽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이것은 훈계가 아니라 관찰이다. 남에게 쓸모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 자기 몫을 확보하는 가장 확실한 경로라는, 교환이라는 구조 자체에 대한 관찰이다. 성인이 자기 몸을 뒤로 물리는데 오히려 앞서게 된다는 앞 구절도 같은 이야기다. 순서를 뒤집으면 결과가 뒤집힌다.
두 번째 원리는 시간이다. 가난의 뿌리는 게으름보다 조급함에 가깝다. 석 달 해보고 성과가 없으면 접고, 반년 붙들다가 다른 곳으로 옮기고, 평생 얕게 파다가 끝나는 경우가 많다. 재물은 삼 분짜리 열정에는 반응하지 않고, 지루함을 견디는 사람 쪽으로 천천히 기운다. 워런 버핏의 숫자가 이것을 보여준다. 그는 90세 생일을 앞두고 월스트리트저널과 한 인터뷰에서 자기 재산의 90퍼센트를 65세 이후에 벌었다고 말했다. 12세에 투자를 시작해 반세기 넘게 같은 원칙을 반복한 사람에게, 재산의 대부분은 인생의 마지막 사분의 일에 몰려서 들어왔다. 연평균 수익률로만 보면 그보다 뛰어난 투자자도 있었다. 하지만 순자산으로 보면 비교가 되지 않는다. 차이를 만든 것은 재능의 크기가 아니라 굴린 시간의 길이였다. 복리(compound interest)라는 말은 다들 알지만, 복리의 진짜 조건이 수익률이 아니라 기다림이라는 사실은 대체로 뒤늦게 안다. 마음이 고요하지 않으면 길이 열리지 않고, 뜻이 가라앉지 않으면 돈이 고이지 않는다.
세 번째 원리는 그릇이다. 작은 돈은 부지런함과 기술로 벌 수 있다. 그러나 큰돈이 들어오면 그때부터는 담는 쪽의 문제가 된다. 인지가 버는 돈의 상한을 정하고, 심성이 지키는 돈의 상한을 정한다. 조금 벌리면 오만해지고, 조금 불어나면 욕심이 커지고, 이익 앞에서 신용을 버리는 사람은 설령 한 번 크게 벌어도 오래 담지 못한다. 담을 자리가 없는 곳에 물을 부으면 넘치는 것이 당연하다. 명리에서도 재물이 아무리 강하게 들어와도 일간(日干)이 그것을 감당할 힘이 없으면 재다신약(財多身弱)이라 하여 오히려 재물 때문에 몸이 상한다고 본다. 들어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감당하는 것이 문제라는 관점은, 표현만 다를 뿐 어디에나 있다.
그래서 순서가 남는다. 먼저 깨닫고, 나중에 구한다. 가치를 이해하면 내주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되고, 시간을 이해하면 기다림이 초조하지 않게 되고, 사람을 이해하면 계산이 줄어든다. 이 순서를 밟은 사람은 어느 시점부터 돈 버는 일에 안달하지 않는다. 자기 일을 깊게 파고, 남의 문제를 풀고, 그릇을 넓히는 데 시간을 쓴다. 재물은 그 뒤를 따라오거나, 따라오지 않는다. 다만 따라오지 않더라도 그 사람에게는 이미 다른 것이 남아 있다. 하늘과 땅이 오래가는 이유가 스스로를 위해 살지 않기 때문이라면, 우리가 그토록 자기를 위해 애쓰는 시간들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