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면 기운다, 달리오의 80퍼센트 버블과 주역
차오른 것은 반드시 기운다. 시장도 자연의 이 규칙 밖에 있지 않다. 레이 달리오가 2025년 말부터 거듭, 지금의 미국 증시가 1929년과 2000년 거품의 약 80퍼센트 지점에 와 있다고 말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는 19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자기 버블 지표로 시장을 재는데, 가격만 보지 않고 누가 그 자산을 들고 있는지, 빚을 얼마나 끼고 있는지를 함께 본다. 그가 보는 방아쇠는 회사 실적이 나빠지는 순간이 아니다. 사람들이 세금을 내고 빚을 갚으려 가진 것을 현금으로 바꿔야 하는 순간이다. 부를 돈으로 바꾸려는 그 줄서기가 시작되면, 그때 거품이 터진다. 달리오의 말은 AI를 사지 말라는 경고가 아니다. 기술에 대한 확신을 그 회사 주가에 대한 확신으로 착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둘은 전혀 다른 일이고, 그 사이에서 사람들이 늘 미끄러진다.

주역(周易) 풍괘(豐卦)에 이런 구절이 있다. 日中則昃 月盈則食 天地盈虛 與時消息. 해가 중천에 이르면 기울고, 달이 차면 이지러지며, 하늘과 땅의 차고 빔조차 때를 따라 사라지고 자란다는 뜻이다. 풍(豐)은 가장 가득 찬 상태를 가리키는 괘다. 그런데 그 가장 풍성한 자리에서 옛사람이 한 말이 다름 아닌 기우는 이야기였다. 정점은 끝이 아니라 방향이 바뀌는 자리라는 것. 가득 찬 순간이 곧 비워지기 시작하는 순간이라는 것. 시장의 고점에서 사람들이 가장 낙관적인 이유도, 바로 그 자리가 가장 위태로운 이유도 같은 문장 안에 들어 있다. 명리학에서도 제왕의 자리를 불길하다고 본다. 제왕은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자리인데, 내려갈 길만 남았기에 그렇게 본다.
음양(陰陽)은 무언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차고 비는 한 흐름의 두 이름이다. 양이 극에 달하면 음이 자라기 시작하고, 음이 바닥에 닿으면 양이 고개를 든다. 오행(五行)으로 옮겨도 마찬가지다. 불(火)은 타오를 대로 타오르면 결국 재가 되어 흙(土)으로 가라앉는다. 가장 뜨거운 순간이 곧 식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거품이라는 현상을 이보다 정확히 설명하는 비유를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물극필반(物極必反), 무엇이든 극에 이르면 반대로 돌아선다. 이것은 신비가 아니라 관찰이다. 수천 년 동안 같은 것을 본 사람들이 남긴 패턴이다.
문제는 그 패턴을 알면서도 매번 당한다는 데 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가 핵심이다.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인간이 변했다고 생각한다. 도구가 바뀌고, 기술이 바뀌고, 손에 쥔 화면이 바뀌었으니 사람도 달라졌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1929년 라디오 주식의 꼭대기에서 사들인 사람과, 2000년 닷컴의 정점에서 올라탄 사람과, 2025년 빚을 내어 옵션으로 반도체 한 종목을 좇는 사람은 같은 인간이다. 탐욕이 공포로 뒤집히는 지점도, 남들이 다 버니까 따라 파는 동작도 똑같다. 달리오가 거품을 “약한 손(weak hands)”이 자산을 쥐게 되는 상태라고 부른 것도 결국 같은 이야기다. 약한 손이란 빚을 끼고 들어와 첫 흔들림에 무너지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 손의 주인은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았다.
라디오 회사 RCA의 주가는 1929년 9월 114.75달러에서 1932년 5월 2.625달러까지 떨어졌다. 98퍼센트, 거의 전부가 사라진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다음이다. RCA는 망하지 않았다. 회사는 살아남아 텔레비전을 만들고 컬러 방송을 열며 1986년 제너럴 일렉트릭에 인수될 때까지 존속했다. 주가도 결국 회복했다. 다만 1929년 고점에 산 사람이 배당까지 포함해 본전을 되찾은 것은 1960년대였다. 라디오가 세상을 바꿀 기술이라는 판단은 옳았다. 가구당 라디오 보유 대수는 1925년 275만 대에서 1939년 2750만 대로 열 배 늘었다. 방향은 정확했다. 다만 그 방향을 산 시점이 틀렸을 뿐이고, 그 대가가 30년이었다.
나스닥도 같은 길을 걸었다. 2000년 3월 10일 5048.62에서 정점을 찍고, 그 자리를 다시 밟은 것이 2015년 4월 23일이다. 정확히 15년이 걸렸다. 그런데 이 숫자에는 단서가 하나 붙는다. 2015년의 회복은 명목상의 본전이었다. 그사이 물가가 올랐으니, 실질 구매력으로 따지면 2015년에 5000선을 되찾은 돈은 2000년 그 5000의 70퍼센트 남짓에 지나지 않았다. 본전을 되찾았다는 안도와, 실제로 손에 쥔 가치는 다른 이야기였다. 명목과 실질의 이 틈은 고점에 산 사람만 평생 들여다보게 된다.
여기까지는 익숙한 그림이다. 그런데 역사는 똑같이 반복되지 않는다. 매번 한 군데가 비틀려 있다. 영국의 1840년대 철도 광풍을 보자. 흔히 “철도에 일찍 뛰어든 사람들이 다 망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반대다. 광풍 이전, 1830년에 개통한 리버풀-맨체스터 철도 같은 초기 노선은 실제로 돈을 벌었고 안정적으로 배당을 냈다. 망한 것은 1845년 전후 광풍에 뒤늦게 올라탄 후발 추격 매수자들이다. 당시 투자자들은 주식값의 10퍼센트만 먼저 내고 나머지는 회사가 “청구”할 때 나눠 내기로 하고 들어갔다. 일종의 분할 약정이자 숨은 빚이었다. 1846년 영란은행이 금리를 올리자 주가가 무너졌고, 회사들이 미납입금을 청구하기 시작했다. 떨어진 주식을 떠안은 채 남은 90퍼센트까지 토해내야 했던 중산층 가구가 줄줄이 파탄났다. 첫 투자자가 아니라 마지막 투자자가 쓸려나간 것이다. 같은 철도, 같은 혁신인데 누가 살아남고 누가 무너지는지는 정반대였다. 비틀림은 늘 디테일에 숨어 있고, 그 디테일이 생사를 가른다.
흔히 마크 트웨인의 말로 인용되지만 출처는 분명치 않은 한 문장이 있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운율을 맞춘다. 운율을 맞춘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같은 음이 아니라 비슷한 음, 약간 어긋난 채로 돌아오는 음이다. 라디오라는 이름만 붙이면 주가가 뛰던 시절이 있었고, 닷컴이라는 꼬리표가 그 역할을 한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그 자리에 다른 두 글자가 들어가 있을 뿐이다. 곡조는 같고 가사만 바뀐다.
여러 번의 순환을 직접 통과해보면서 확인한 것이 있다. 차트의 모양은 매번 다른데 그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얼굴은 늘 같다는 것이다. 닷컴이 그랬고, 2008년이 그랬고, 2020년 이후의 회복 국면이 그랬다. 오를 때는 이번만큼은 다르다고 하고, 꺾이고 나면 그럴 줄 알았다고 한다. 변하는 것은 종목 이름과 기술의 외피이고, 변하지 않는 것은 그것을 사고파는 손이다. 자연이 차고 비우기를 멈추지 않듯, 사람도 탐하고 두려워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점은 어떻게 오는가. 풍괘가 말하는 일중즉측의 그 순간, 양이 음으로 돌아서는 그 자리에는 늘 변곡점이 있다. 달리오가 말한 변곡점은 분명하다. 실적이 꺾여서가 아니라, 누군가 현금이 급해져서 팔아야 하는 순간이다. 철도 광풍에서 그것은 미납입금 청구였고, 1929년과 2000년에는 금리 긴축이었다. 부를 돈으로 바꾸려는 줄이 길어지는 그 지점이 차오름이 기울음으로 뒤집히는 마디다. 지금 우리가 그 곡선의 80퍼센트 지점에 있다는 달리오의 말이 맞다면, 남은 20퍼센트는 가장 뜨겁고 가장 낙관적인 구간일 것이다. 풍괘가 가장 가득 찬 자리에서 기우는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거기 있다.
이번 순환에서 약한 손은 누구일까. 그리고 비틀림은 이번에 어디에 숨어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