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발 라비칸트의 두 마디 – 앱이 사라지고 애플이 기우는 방향
앱이 사라지는 방향으로 자본이 움직이고 있다. 나발 라비칸트(Naval Ravikant)가 2026년 봄에 자기 팟캐스트에서 한 두 마디가 그 신호 중 하나다. 순수 소프트웨어는 더 이상 투자할 가치가 없고, 아이폰의 우위는 끝의 시작에 들어섰다. 같은 시기, 오픈AI는 화면이 없는 첫 디바이스의 출시 시점을 2026년 하반기에서 2027년 2월 이후로 미뤘다. 두 사건은 표면적으로 따로 떨어져 있지만, 같은 흐름의 다른 지점에서 솟아오른 신호다.
나발은 앤젤리스트(AngelList) 공동창업자이고, 트위터, 우버, 노션의 초기 투자자였다. 그가 평생 한 일은 무엇이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 가려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무엇이 가치가 없는지를 가려내는 일도 같이 한다. 2026년 4월 말, 나발 팟캐스트에 올라간 한 회차에서 그는 매일 두 시간 이상씩 인공지능 코딩 에이전트에게 자연어로 지시해 앱을 만들고 배포하는 작업을 한다고 말했다. 그가 바이브 코딩(Vibe Coding)이라고 부르는 활동이다. 비디오 게임보다 더 몰입되고, 도파민 소비보다 더 건설적이라고 했다. 흥미로운 자기 기록의 차원이지만, 이 회차의 진짜 무게는 다른 데 있다.
같은 자리에서 그는 자기가 3월 23일에 X에 올렸던 한 줄을 다시 꺼냈다. 인공지능 코딩 에이전트가 이제 휴대폰으로 곧장 일회성 맞춤 앱을 만들어 보낼 수 있다. 아이폰 우위의 끝의 시작이다. 그는 자기 아이폰 안에서 작동하는 개인용 앱스토어를 직접 만들어서 보여줬다. 자연어로 요청하면 에이전트가 그 자리에서 앱을 만들어 디바이스로 보낸다. 사용자는 검색해서 다운로드하지 않는다. 그냥 말로 부른다. 그것이 끝이다. 그가 보는 미래에서, 앱스토어와 앱 디자인 가이드라인과 생태계 잠금이라는 애플의 30년 짜리 해자는 인터페이스 자체가 실시간으로 생성되는 순간 의미를 잃는다.
이 주장에는 무리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 앱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는 없다. 카메라가 한 예다. 안경 형태의 입출력 장치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기 전까지는 사진을 찍고 영상을 남기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내는 일을 위해 사람들은 여전히 카메라가 달린 직사각형 화면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닐 것이다. 음악, 운전 내비게이션, 결제처럼 이미 동선과 근육 기억으로 굳어진 흐름들도 마찬가지다. 모바일이 데스크톱을 대체했다는 말이 기술적으로 정확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데스크톱은 다른 자리로 옮겨갔을 뿐이다. 같은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더 크다. 다만 흐름의 방향은 분명하다. 인터페이스의 가운데를 차지하던 앱이라는 단위가, 인공지능이 즉석에서 빚어내는 임시 인터페이스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

그 이동의 양 끝에 있는 두 회사가 정확하게 거꾸로 가고 있다는 점이 더 흥미롭다. 한쪽은 화면을 더 정교하게 다듬는다. 다른 한쪽은 화면을 없애려 한다. 후자가 오픈AI다. 2025년 5월, 오픈AI는 조니 아이브(Jony Ive)가 공동 창업한 io라는 하드웨어 스타트업을 65억 달러에 전부 주식으로 인수했다. 아이브는 아이맥,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의 디자인을 이끈 사람이다. 인수와 함께 합류한 인원이 약 55명. 아이폰과 아이패드와 맥북의 핵심을 만든 전직 애플 엔지니어, 디자이너, 제조 전문가들이다. 디자인 책임자 에반스 행키(Evans Hankey), 제품 책임자 탕 탄(Tang Tan)을 포함한 그 팀이 지금 만들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화면이 없는 디바이스다.
알려진 윤곽은 이렇다. 손바닥 크기. 화면 없음. 마이크와 카메라와 스피커. 항상 켜진 상태로 주변을 듣고 본다. 호주머니에 넣거나 책상 위에 올려둔다. 자연어 음성 대화가 주된 입출력이다. 사용자는 더 이상 앱을 열지 않는다. 호출하지도 않는다. 디바이스가 맥락을 알아서 잡고, 필요할 때 응답한다. 샘 알트먼(Sam Altman)이 2025년 11월에 이 시제품을 자기 집에서 써보고 한 말이 알려져 있다. 세상이 본 것 중 가장 멋진 기술이다. 칭찬 자체보다 그가 그 자리에서 무엇을 본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30년 동안 사람과 컴퓨터 사이를 메워온 화면이라는 매체가 빠진 자리에 남는 무언가다.
그 무언가는 아직 매끄럽지 않다. 같은 프로젝트에 드러난 기술적 한계가 시점을 두 번 미뤘다. 첫째 문제는 컴퓨팅 파워다. 챗GPT의 수요만으로도 오픈AI의 서버는 이미 한계 직전이다. 항상 켜져 있는 디바이스 수천만 대가 동시에 음성과 영상을 흘려보내는 부하를 감당할 인프라가 아직 없다. 아마존은 알렉사를 위해, 구글은 네스트를 위해 각각 수년 동안 쌓아온 클라우드 자원이 있다. 오픈AI는 그 단계에서 한참 못 미친다는 게 아이브 측 관계자가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에 한 말이다. 둘째 문제는 디바이스의 인격이다. 언제 듣고 언제 말할 것인가. 무엇에 끼어들고 무엇에 침묵할 것인가. 이건 코드의 문제가 아니라 디자인의 문제다. 휴메인 AI 핀(Humane AI Pin)이 정확히 이 문턱에서 무너졌다. 항상 듣는 디바이스가 적절한 순간에만 말하게 만드는 일은, 알고리즘만으로는 풀리지 않는다. 셋째 문제는 사생활이다. 호주머니 안에 마이크와 카메라가 항상 켜져 있는 것을 사람들이 받아들일지에 대한 답을 아무도 모른다.
2026년 2월의 법원 문서에서, 오픈AI는 자사 첫 하드웨어 디바이스가 2027년 2월 이전에 출하되지 않을 것이라고 명시했다. 1년 가까운 추가 시간을 산 셈이다. 같은 달에 io라는 이름도 상표권 분쟁 끝에 포기했다. 디바이스의 이름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무엇이 어떤 형태로 나올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그 팀 안에서도 손에 꼽힌다. 다만 방향은 한 줄로 요약된다. 화면 없는 동반자(companion). 알트먼이 표현한 그대로다.
여기서 조금 떨어져서 보면, 30년 가까이 한 산업의 중심에 있던 두 거대 회사의 위치가 거꾸로 뒤집혀 있다. 애플은 화면을 가장 정교하게 만든 회사로 사람의 손과 눈에 가장 밀착한 디바이스의 시대를 열었다. 그 회사가 만든 인터페이스 위에서 천만 개가 넘는 앱이 자랐다. 인공지능 시대의 한 갈래는 그 결과물의 정반대 방향, 즉 화면도 없고 앱도 없고 호출도 없는 디바이스로 향한다. 그 방향을 만들고 있는 손이 다름 아닌 애플의 전 디자인 책임자와 그의 옛 동료 55명이다. 자기가 만든 시대를 자기가 끝내려 하는 풍경. 산업사에서 흔치 않은 장면이다.
도덕경(道德經) 40장에 이런 한 줄이 있다. 反者道之動 弱者道之用 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 되돌아감이 도(道)의 움직임이고, 부드러움이 도의 작용이다. 천하 만물은 유(有)에서 나오지만, 유는 무(無)에서 나온다. 노자가 본 것은 모든 형태가 결국 형태 없는 것으로 되돌아가는 결이었다. 가장 정교하게 다듬어진 사물이 다 이루어진 자리에서, 그 사물의 정반대인 비어 있음으로 흐름이 한 번 꺾인다. 나무가 가장 무성할 때 잎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것처럼. 인터페이스가 가장 정밀해진 시점에 인터페이스 자체를 지우려는 시도가 등장한 것은, 어쩌면 같은 결의 일이다. 화면이 사람의 시야를 가장 깊이 차지한 그 자리에서, 화면을 없애는 디바이스가 만들어지고 있다.
다만 이 모든 흐름이 나발이 말한 속도로 펼쳐질지는 다른 문제다. 18개월 안에 SaaS의 절반이 무너지고, 24개월 안에 앱스토어가 의미를 잃을 것이라는 그의 시간 축은 명백히 공격적이다. 기업 소프트웨어의 교체 주기는 길고, 사람들의 손가락이 이미 익힌 동작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휴메인이 보여줬듯, 화면을 없앤 디바이스가 시장에서 그 자리를 받아내기까지는 한 번 이상의 실패가 더 필요할 것이다. 메타(Meta)의 레이밴 스마트 안경이 비슷한 카테고리에서 75에서 80퍼센트 점유율을 가져갔다는 사실은, 시장이 이미 다른 형태의 항상 켜진 디바이스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어느 형태가 결국 자리를 잡을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25년 넘게 시장의 변곡점을 들여다보면서 반복적으로 본 패턴이 있다. 한 시대의 가장 견고한 해자가 무너지는 순간은 늘 두 가지가 겹친다. 첫째, 그 해자를 만든 회사가 자기 우위에 안주한다. 둘째, 그 해자를 만든 사람들 일부가 회사를 떠나서 다음 시대의 회사로 옮겨간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우위가 무너지는 신호도 그렇게 시작됐다. 노키아의 휴대폰 우위가 끝나는 신호도 그렇게 시작됐다. 같은 패턴이 지금 다시 보인다. 애플이 자체 인공지능 모델 개발에서 분명히 뒤처져 있는 동안, 그 회사를 만든 디자이너들이 정반대편에서 다른 형태의 디바이스를 만들고 있다.
이것이 곧 애플의 끝이라는 결론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회사는 시대를 한 번 놓쳐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 자본도 두텁고, 생태계도 깊다. 다만 시대의 정의를 다시 쓸 수 있는 자리에서는 한 번 비켜서면 다시 돌아오기 어렵다는 것이, 산업사의 거의 모든 사례에서 반복된 결이다. 나발이 본 것은 그 자리의 이동이고, 오픈AI와 아이브의 팀이 만들고 있는 것은 그 이동의 한 가능한 형태다. 그것이 형태 그대로 이루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사람과 기계 사이를 잇는 인터페이스가 한 번 더 크게 휘려는 중이라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휘어 있는 그 끝의 어느 자리에 무엇이 들어설지를 우리는 아직 모른다. 화면일지, 안경일지, 손바닥에 올려둔 무엇일지, 아니면 호명조차 필요 없는 어떤 동반자일지. 지금까지 우리가 사물이라고 부른 무언가에 들어가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그 자리가 비워지기 시작했다는 것만큼은, 자본의 움직임과 사람의 이동이 동시에 가리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