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sdom

권력이 드러내는 것 – 쿠키 한 개가 보여주는 사람의 본성

권력은 사람을 바꾸지 않는다. 드러낼 뿐이다. 이것을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 자리가 사람을 망친다고 말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자리가 사람의 뚜껑을 여는 것이다. 뚜껑 아래에 뭐가 들어 있었는지는 본인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UC 버클리 심리학과 교수 대처 켈트너(Dacher Keltner)가 20년 넘게 수행한 권력과 행동 변화 연구 중에 쿠키 몬스터 실험(Cookie Monster Experiment)이라 불리는 것이 있다. 구조가 단순하다. 세 사람을 실험실에 데려온다. 아무런 기준 없이 한 명을 무작위로 리더로 지목한다. 당신이 책임자입니다. 이것으로 끝이다. 세 사람은 대학 정책을 작성하는 지루한 과제를 함께 수행한다. 30분쯤 지났을 때 연구진이 초콜릿칩 쿠키 다섯 개를 접시에 담아 가져다 놓는다. 세 사람이니 한 개씩 먹으면 두 개가 남는다. 여기서 실험이 시작된다.

모든 집단에서 마지막 쿠키 한 개는 접시 위에 남겨졌다. 마지막 하나를 집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네 번째 쿠키, 즉 두 번째 여분의 쿠키를 집어간 사람은 대부분 리더였다. 무작위로 지목된, 아무 실질적 권한도 없는, 방금 전까지 평범한 참가자였던 그 사람이 자기 몫 이상을 가져간 것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 다음이다. 켈트너 연구팀은 쿠키를 먹는 모습을 비디오로 촬영했다. 리더로 지목된 사람은 입을 벌리고 먹었다. 쩝쩝 소리를 내며, 과자 부스러기를 옷에 흘리면서. 다른 두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5분 전까지 같은 위치에 있던 사람이, 리더라는 한 마디에 먹는 모습까지 달라진 것이다.

켈트너는 이것을 권력의 역설(Power Paradox)이라 불렀다. 사람이 권력을 얻는 데 필요한 능력, 즉 공감(Empathy), 배려, 협력은 권력을 얻는 순간 퇴화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권력이 도파민 회로(Dopamine Circuit)를 자극하면서 자기 통제력이 느슨해지고, 타인의 시선에 대한 민감도가 떨어지고, 충동에 대한 제동이 약해진다.

이 현상은 신경과학에서도 확인되었다. 2013년 위프리드 로리에 대학교의 수크빈더 오비(Sukhvinder Obhi) 연구팀이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General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권력을 부여받은 피험자들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관찰할 때 거울 신경 반응(Motor Resonance)이 현저히 낮았다. 거울 신경 체계(Mirror Neuron System)는 타인의 행동을 보면서 마치 자신이 하는 것처럼 뇌가 반응하는 메커니즘인데, 권력을 가진 사람의 뇌에서는 이 반응이 억제된 것이다. 오비는 이 상태를 전두엽 손상 환자와 유사하다고 표현했다. 공감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 물리적으로 손상된 사람과, 권력을 조금 쥔 사람의 행동 패턴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켈트너와 동료 폴 피프(Paul Piff)는 후속 연구를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 발표하면서, 자신을 상류층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비윤리적 행동을 지지할 가능성이 더 높고, 협상에서 거짓말을 더 자주 하며, 심지어 아이들에게 주려고 놓아둔 사탕에서도 더 많이 가져간다는 결과를 보고했다. 쿠키 한 개의 문제가 아니다. 권력이 만들어내는 심리적 구조의 문제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권력이 그 사람을 바꾼 것인가, 아니면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데 드러난 것인가. 켈트너의 연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후자에 가깝다. 권력은 새로운 성격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기존에 억눌려 있던 충동의 뚜껑을 여는 것이다. 평소에 예의 바르게 행동하던 사람이 자리를 얻자마자 돌변하는 것은, 예의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예의가 원래 껍데기였다는 뜻이다. 진짜 예의는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아무런 제약이 없을 때도 유지되는 것이다. 제약이 풀리자마자 사라지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 처세다.

도덕경(道德經) 17장이 이것을 2,500년 전에 다른 결로 말해두었다. 太上 不知有之 其次 親而譽之 其次 畏之 其次 侮之. 가장 높은 경지의 지도자는 백성이 그가 있는지조차 모른다. 그 다음은 가까이하며 칭송하는 지도자다. 그 다음은 두려워하는 지도자고, 가장 낮은 것은 업신여기는 지도자다.

노자가 분류한 이 네 등급을 현대의 조직에 대입하면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다.

최고의 리더는 존재감이 희미하다. 일이 저절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이 고맙다고 말할 대상이 없다. 그 사람이 한 일은 조건을 만든 것이지, 지시를 내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이 노자가 말한 무위(無爲)의 리더십이다. 무위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현대적 표현으로는 시스템을 만든다고 한다.

두 번째 리더는 인기가 있다. 사람들이 좋아한다. 이것은 나쁜 것이 아니지만, 리더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세 번째 리더는 두려움으로 조직을 움직인다. 하위 10% 도태 제도라든지.

네 번째는 조롱과 경멸의 대상이다.

쿠키를 입 벌리고 먹는 사람은 세 번째와 네 번째 사이 어딘가에 서 있는 셈이다.

17장의 뒤에 붙은 구절이 더 날카롭다. 信不足焉 有不信焉. 믿음이 부족하니 불신이 생긴다. 이것은 리더에게 해당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에게 해당하는 말이기도 하다. 자기에 대한 믿음이 충분하지 않은 사람은 자리와 직함에서 확인을 받으려 한다. 내가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외부의 인정으로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외부에서 확인을 받을수록 내부의 불안은 커진다. 확인이 끊기면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이 구조에 갇힌 사람에게 권력이 주어지면, 억눌렸던 욕구가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 그것이 쿠키 한 개를 더 집어가는 행동으로 나타나든, 부하 직원에게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나타나든, 메커니즘은 같다.

도덕경 33장에 이런 구절도 있다. 知人者智 自知者明. 남을 아는 것은 지혜(智)이고, 자기를 아는 것은 밝음(明)이다. 勝人者有力 自勝者強. 남을 이기는 것은 힘이 있는 것이고, 자기를 이기는 것은 진짜 강한 것이다. 켈트너의 실험에서 쿠키를 더 집어간 리더는 남을 이기는 힘은 잠깐 쥐었을지 모르지만, 자기를 이기는 강함은 갖추지 못한 셈이다.

이것을 뒤집어 보면 한 가지가 보인다. 진짜 겸손한 사람과 겸손해 보이는 사람은 다르다. 겸손해 보이는 사람은 많다. 자리가 없을 때, 힘이 없을 때, 아직 올라가지 못했을 때 겸손한 것은 쉽다. 선택지가 없으니까. 먹을 수 있는 쿠키가 한 개뿐이면 한 개만 먹는 것이 겸손이 아니라 상황이다. 진짜 겸손은 다섯 개가 있는데도 한 개만 먹는 것이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때, 더 가져갈 수 있는데도 가져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보이는 모습으로 평가하는 것은 위험하다. 예의 바른 사람이 진짜 예의 바른지는 그 사람에게 권력이 주어지기 전까지 알 수 없다. 친절한 사람이 진짜 친절한지는 그 사람이 친절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야 확인된다. 대부분의 미덕은 시험을 치르기 전까지 미덕인지 처세인지 구분이 안 된다. 시험이란 것은 대개 권력, 돈, 지위의 형태로 온다.

그리고 이것은 남을 평가하는 기준인 동시에 나를 돌아보는 기준이기도 하다. 나는 바깥에서 예의 바르게 행동한다. 회사에서 존댓말을 쓰고, 식당에서 감사합니다를 말하고, 모르는 사람에게 길을 양보한다. 그런데 이것이 나의 본성인지, 아니면 타인의 시선이 만들어낸 행동 양식인지는 솔직히 구분하기 어렵다. 집에서 가족에게도 같은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같은가. 익명의 인터넷에서도 같은가. 대답이 망설여진다면, 바깥의 예의는 아직 뿌리가 깊지 않은 것이다.

쿠키 한 개의 무게는 가볍다. 그런데 그 한 개를 집어드는 손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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