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모르면 수행도 없다 – 더닝-크루거 효과, 도덕경, 그리고 거울의 필요성
자기를 아는 것이 수행의 시작이다. 이것은 도덕이 아니라 순서의 문제다. 고장 난 곳을 모르면 고칠 수 없고, 병명을 모르면 약을 쓸 수 없다. 수행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모르면,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도 모른다.
도덕경(道德經) 33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知人者智 自知者明. 남을 아는 것은 지혜이고, 자기를 아는 것은 밝음이다. 노자가 왜 남을 아는 것과 자기를 아는 것을 구분해서 말했는가. 남을 아는 능력과 자기를 아는 능력은 다른 근육을 쓰기 때문이다. 남을 관찰하는 것은 비교적 쉽다. 거리가 있으니까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자기를 보려면 거울이 필요하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이 거울 없이 자기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눈으로 자기 얼굴을 직접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없다. 항상 거울이나 사진을 통해서 본다. 마음도 같다. 자기 마음을 직접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1999년 코넬대학교 심리학과의 데이비드 더닝(David Dunning)과 저스틴 크루거(Justin Kruger)가 발표한 연구가 있다. 유머, 문법, 논리적 추론 네 가지 영역에서 사람들의 실제 능력과 스스로 평가한 능력을 비교한 것이다. 결과는 이랬다. 하위 25%에 속하는 사람들은 자기 점수가 상위 38%쯤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 자기 위치는 12번째 백분위인데, 62번째 백분위라고 추정한 것이다. 반대로, 실력이 높은 사람들은 자기를 약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것이 더닝-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다. 능력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자기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현상. 더닝과 크루거는 이것을 이중 부담이라 불렀다. 실력이 부족할 뿐 아니라, 실력이 부족하다는 사실 자체를 알아채는 능력마저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 연구가 말해주는 것은 불편하다. 사람은 자기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잘 모른다. 그리고 잘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자기에게 후한 것이 인간의 기본 세팅이다.
두 달 가까이 하루 서너 시간만 자면서 사주 간명 시스템을 만들었다. 25년 넘게 쌓아온 명리학 이론 체계의 95% 이상을 집어넣었다. 처음에는 70% 정도만 넣었다. 그런데 실제 사람들의 사주로 검증을 하면, 이 이론이 빠지면 이 사람의 해석이 안 된다는 경우가 계속 나왔다. 넣고, 또 넣고, 또 넣었다. 더 이상 넣을 이론이 없는 지점에 도달할 때까지.
이 시스템을 왜 만들었는가. 이유는 단순하다. 사람은 자기를 모른다. 본인이 가면을 얼마나 쓰고 사는지, 본인이 얼마나 각박한지, 본인이 어떤 패턴으로 관계를 맺고 무너뜨리는지. 스스로는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더닝-크루거 효과가 말해주듯이, 정확하게 아는 경우는 드물다. 보통은 자기에게 후하다. 나쁜 짓을 하면서도 나름의 이유를 만들어내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도 이번에는 다르다고 믿는다.
명리학(命理學)이라는 체계가 유용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주는 거울이다. 태어난 시간의 기운 배치를 읽으면, 그 사람의 기본 세팅이 드러난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반응이 나오는지, 어디에서 에너지가 새는지, 무엇에 끌리고 무엇을 피하는지. 이것은 점(占)이 아니다. 기운의 배치도이고, 작동 설명서에 가깝다.
문제는 이 체계가 극도로 복잡하다는 점이다. 배우고 싶다는 사람이 수없이 많았지만, 거절해왔다. 내 이론 체계를 전부 전달하려면 매일 세 시간씩 강의해도 십 년이 걸린다. 실제로 몇 명에게 가르쳐 본 적이 있다. 엄청 똑똑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기초의 삼분의 일도 못 끝내고 너무 어렵다고 했다. 머리가 문제가 아니었다. 체계 자체가 인간의 처리 용량을 넘어서는 것이다. 세상에는 6개월짜리 사주 과정이 넘쳐나지만, 그건 다른 세계 이야기다.
이 체계의 특징이 있다. 촉이 아니라 순수 이론으로 풀어낸다. 그런데 그 이론이 수십 개에서 수백 개의 계산을 동시에 요구한다. 문과적 감각과 이과적 논리가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 인간의 머리로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인간이 사용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체계라는 결론에 일찍 도달했고, 6-7년 전부터 소프트웨어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개발자가 명리학 이론을 이해하게 만드는 것이 이론 자체보다 더 어려웠다. 기초 부분만 겨우 적용시킬 수 있었고, 중급 이상은 엄두를 못 냈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나오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개발자가 2년 걸려서 만들 것을 1주일 만에 해냈다. 이 체계는 극도로 논리적이지만 극도로 복잡해서, 약간의 오차도 없이 돌아가야 한다. 컴퓨터가 하는 것이 인간이 하는 것보다 효율적인 영역이다.
사실 이 시스템에는 인생설계도라는 기능도 있다. 사람들은 이것에 관심이 많다. 내 인생 전체를 한눈에 펼쳐 보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인생설계도에도 쓸모가 있지만, 한계가 뚜렷하다. 명리학 이론 체계가 너무 방대하기 때문이다. 몇 마디를 출력하기 위해 그 배후에서 주입되어야 하는 계산과 맥락의 양이 어마어마하다. 현재의 컴퓨팅 능력으로는 그 모든 것을 동시에 처리하면서 구체적인 디테일까지 담아내기가 어렵다. 넓게 보여주는 데는 괜찮지만, 깊이 들어가면 흐려진다.
반면 인생질문은 다르다. 특정 부분만 집중해서 계산한다. 범위를 좁히는 대신 수많은 구체적 디테일을 넣을 수 있다. 전체를 얕게 훑는 것과 핵심을 깊이 파는 것의 차이다. 그래서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이 인생질문이다. 사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올해 운세가 아니다. 자기가 어떤 세팅으로 존재하는지를 아는 것이다. 수행이라는 것도 결국 자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인데, 자기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면 해결이 불가능하다. 의사가 진단 없이 치료를 시작하면 환자를 죽인다.
노자가 말한 자지자명(自知者明)이 왜 중요한가. 자기를 아는 것이 단순히 자기 성격을 파악하는 데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의 기본 세팅을 안다는 것은, 자기가 어디에서 무너지는지를 안다는 뜻이다. 어디에서 화가 나는지, 어디에서 욕심이 올라오는지, 어디에서 판단이 흐려지는지. 이것을 모르면 수행은 막연한 노력이 되고, 알면 정확한 수리가 된다.
그런데 자기를 제대로 직면할 용기를 가진 사람이 많지 않다. 거울이 보여주는 얼굴이 내가 생각한 얼굴과 다를 때, 사람은 거울을 탓한다. 사주를 봐도 마찬가지다. 자기에게 불리한 해석이 나오면 그 해석을 부정한다. 내가 아는 나와 사주가 보여주는 나 사이에 간극이 있을 때, 대부분은 사주를 무시한다. 자기 판단이 더 정확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1999년 더닝과 크루거가 발견한 것도 이 구조와 같다. 실력이 부족할수록 자기 실력을 높이 평가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같은 연구에서, 사람들에게 논리적 추론 훈련을 시킨 뒤 다시 자기 평가를 하게 했더니, 자기 인식의 정확도가 올라갔다. 실력이 올라가니까 자기를 정확하게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자기를 아는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라는 뜻이다.
수행의 구조도 이것과 닮아 있다. 처음에는 자기를 모른다. 수행을 시작하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보이기 시작하면 불편해진다. 그 불편함을 견디는 사람만 한 단계 더 들어간다. 자기를 안다는 것은 편안한 과정이 아니다. 자기가 생각한 자기와 실제 자기 사이의 간극을 마주하는 일이다. 그 간극이 클수록 충격도 크다.
그래서 거울이 필요하다. 혼자서는 자기 얼굴을 볼 수 없듯이, 혼자서는 자기 패턴을 볼 수 없다. 거울의 형태는 다양하다. 스승일 수도 있고, 경전일 수도 있고, 가까운 사람의 솔직한 한마디일 수도 있다. 사주도 하나의 거울이다. 다만 거울은 보여줄 뿐이지, 바꿔주지는 않는다. 바꾸는 것은 전적으로 본인의 몫이다.
자기를 아는 것이 수행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면, 그 시작조차 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각자가 판단할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