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sdom

집중력이라는 원자본 – 당신이 진짜 잃어버린 것은 돈이 아니다

당신이 진짜 잃어버린 것은 돈이 아니라 집중력이다. 집중력은 돈을 벌게 해주는 판단력의 원료이며, 한 번 흩어지면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데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돈은 다시 벌 수 있고, 시간은 누구에게나 같은 속도로 흐르지만, 집중력만큼은 회복에 구조적인 비용이 든다.

대부분의 사람은 돈을 최상위 자원으로 취급한다. 그런데 돈을 벌게 해주는 판단력, 그 판단력을 가동시키는 집중력에는 별 관심이 없다. 왜 열심히 일하는데 돈이 모이지 않는가, 왜 바쁘게 사는데 통장 잔고는 달라지지 않는가. 이 질문의 답은 대부분 집중력의 구조에 있다. 순서가 뒤집혀 있는 것이다.

알고리즘이 사람보다 사람을 더 잘 아는 시대에, 가장 흔하게 들리는 말이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이다. 석 달이면 경제적 자유를 이룰 수 있다는 서사가 짧은 영상 안에서 쉴 새 없이 돌아간다. 그 서사에 끌리면 사람은 눈가리개를 쓴 당나귀와 비슷한 상태가 된다. 눈앞에 매달린 당근을 향해 달리느라 자기가 원을 그리며 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일정을 빽빽하게 채우고, 새벽까지 불을 켜고, 피곤함을 성실함으로 치환한다. 그런데 새벽에 혼자 앉아 잔고를 확인하면 달라진 것이 없다. 감동적인 자기 서사와 달리, 통장은 냉정하다.

멀티태스킹이 생산성을 높인다는 믿음은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부정되어 왔다. 워싱턴대학교 보셀 캠퍼스 경영대학 교수 소피 르로이(Sophie Leroy)가 2009년 Organizational Behavior and Human Decision Processes에 발표한 논문 “Why Is It So Hard to Do My Work?”가 대표적이다. 이 논문에서 처음 제시된 개념이 주의 잔여(Attention Residue)다. 사람이 한 가지 일에서 다른 일로 넘어갈 때, 이전 일에 대한 주의가 완전히 떨어지지 않고 찌꺼기처럼 남는다는 것이다. 미완결된 과제일수록 잔여가 심해지고, 다음 일의 수행 능력이 떨어진다. 르로이의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이전 과제를 끝내지 못한 채 새 과제로 넘어갔을 때, 정보를 정확히 처리하지 못했고, 오류를 발견하지 못했으며, 최적의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뇌가 이전 과제에 아직 걸려 있으니, 지금 하는 일에 온전히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이 연구가 2009년에 나왔다는 것이 묘하다.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때다. 그 뒤로 상황은 악화만 되었다. UC어바인 정보학과 글로리아 마크(Gloria Mark)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직장인이 한 화면에서 다른 일로 넘어가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평균 47초다. 2004년에는 2분 30초였던 것이 2012년에 75초로 줄었고, 최근 5년간 평균은 47초까지 떨어졌다. 마크 교수가 2023년 출간한 저서 Attention Span에서 밝힌 또 다른 수치가 있다. 한 번 끊긴 집중을 원래 과제로 되돌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23분 15초다. 47초마다 끊기고, 회복에 23분이 걸린다. 산술적으로 보면 하루 종일 일해도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은 거의 없다. 바쁘게 움직이는데 아무것도 쌓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것을 돈에 대입하면 구조가 보인다. 부의 축적은 복리(Compound Interest)로 작동한다. 복리의 본질은 누적이다. 누적이 되려면 하나에 오래 머물러야 한다. 그런데 주의력이 47초마다 끊기는 사람에게는 누적 자체가 불가능하다. 오늘 이것을 시도하고, 내일 저것을 시도하고, 모레 다른 것을 기웃거린다. 겉으로는 부지런해 보이지만 실상은 잔여와 잔여가 겹쳐서 뇌가 항상 반쯤 딴 곳에 가 있는 상태다. 나무를 심었다가 이틀 만에 뽑아보는 사람에게 열매는 오지 않는다.

도덕경(道德經) 47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不出戶知天下 不窺牖見天道 其出彌遠 其知彌少. 문밖을 나서지 않아도 천하를 알고, 창을 엿보지 않아도 하늘의 이치를 본다. 나서면 나설수록 아는 것은 줄어든다. 노자가 이 말을 한 것은 2,500년 전인데, 지금 읽으면 오히려 더 날카롭다. 지금 사람들은 나서고 또 나선다. 정보를 수집하고, 뉴스를 확인하고, 남의 삶을 들여다보고, 트렌드를 쫓는다. 나설수록 안다고 느끼지만, 노자의 관찰은 반대다. 나설수록 안다고 착각하는 것의 양만 늘어나고, 진짜 아는 것은 줄어든다.

47장이 말하는 것은 은둔이 아니다. 집중의 원리다. 바깥으로 나가서 정보를 긁어 모으는 것보다, 안에서 고요히 하나를 깊이 보는 것이 더 많은 것을 알게 해준다는 뜻이다. 정보 과잉 시대에 정보의 양과 이해의 깊이는 비례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비례하는 경우가 많다. 책을 백 권 읽었는데 한 줄도 남지 않는 사람이 있고, 한 권을 읽었는데 삶이 달라지는 사람이 있다. 차이는 읽은 양이 아니라 읽는 동안의 밀도에 있다.

소피 르로이의 후속 연구에서 흥미로운 지점이 나온다. 르로이와 미네소타대학교의 테레사 글롬(Theresa Glomb)이 2018년 Organization Science에 발표한 논문 “Tasks Interrupted”에서, 중단된 과제로 돌아갈 때 시간 압박이 있을 것이라고 인지한 참가자들에게서 주의 잔여가 더 심하게 나타났다. 급히 돌아가서 끝내야 한다는 생각이 현재 과제에 대한 집중을 더 깎아먹은 것이다. 바쁠수록 더 흩어지고, 흩어질수록 더 바빠지는 악순환이다. 이 악순환 안에 들어간 사람은 쳇바퀴를 돌리는 햄스터와 다르지 않다. 달리는 속도는 빨라지는데 위치는 그대로다.

순서를 뒤집어야 한다. 돈을 먼저 좇는 것이 아니라 집중력을 먼저 지켜야 한다. 집중력이 보전되면 질 높은 시간이 만들어진다. 질 높은 시간이 쌓이면 거기서 성과가 나온다. 성과가 쌓이면 돈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부란 모든 것이 제대로 작동한 뒤에 나타나는 결과물이지, 출발점이 아니다. 이것이 집중력이 돈보다 먼저인 이유다.

그러려면 소음을 걸러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쓸모 있는 정보인 척 위장한 소음, 인맥이라는 이름을 단 소모적 만남, 기회라는 포장 아래 숨은 산만함. 디지털 환경에서 이런 것들을 알아보고 잘라내는 것이 지금 시대에 가장 희소한 능력일 수 있다. 차단하는 힘이 곧 집중하는 힘이다.

집중력을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자기 적성에 맞는 기술 하나를 깊이 파는 것. 복잡한 세상을 해석할 수 있는 자기만의 사고 체계를 갖추는 것. 결과가 당장 보이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안정. 이 세 가지는 겉으로는 별 효과가 없어 보인다. 화려하지도 않고, 남에게 자랑할 거리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것들이 쌓이면 다른 사람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 자리가 만들어진다.

처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의심이 올라오고, 주변에서 요령을 피우는 사람이 더 빠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어떤 지점을 넘으면 축적된 것들이 서로 연결되기 시작한다. 한 분야에 깊이 들어간 경험이 다른 분야를 읽는 눈을 만들어주고, 고요하게 앉아서 생각한 시간이 순간적인 판단의 정확도를 높여준다. 복리가 초반에는 미미하다가 어느 순간 곡선이 가파르게 꺾이듯이, 집중의 결과도 그런 식으로 나타난다.

노자가 말한 其出彌遠 其知彌少. 나가면 나갈수록 아는 것이 줄어든다. 뒤집으면 이렇다. 나가지 않을수록 아는 것이 깊어진다. 여기서 나가지 않는다는 것은 물리적 이동이 아니라 주의의 방향이다. 주의를 바깥으로 흩뿌리지 않는 것. 들어오는 자극에 반응하되 끌려다니지 않는 것. 47초마다 화면을 바꾸는 대신, 지금 하고 있는 일에 23분이라도 온전히 머무는 것.

돈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집중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집중력을 되찾으면, 돈이 문제였던 적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될 수도 있다.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은 되찾은 뒤에야 알 수 있는 일이다.

지금 이 순간, 주의가 어디에 가 있는지. 그 질문 하나가 아마 꽤 많은 것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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