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oist cultivation

원한은 사람보다 오래 산다 – 300년의 복수, 태상감응편, 그리고 원한의 생리학

원한은 사람보다 오래 산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다. 도교의 인과 이야기들을 들여다보면, 원한이라는 것이 한 사람의 수명 안에서 끝나지 않는 경우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풀리지 않은 원한은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에 남아서 기회를 기다린다.

청나라 강희 연간에 가선(嘉善)이라는 곳에 성이 지(支)씨인 수재가 있었다. 글재주로 이름이 나 있던 사람이다. 어느 해 과거 시험을 치르러 가는데, 대낮에 갑자기 쓰러졌다. 입에서는 본인 것이 아닌 목소리가 나왔다. 북방 사투리였다. 지씨의 친구가 고승을 불러 물었더니, 그 귀신이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명나라 초기, 개국 공신 서달(徐達) 휘하에 홍주(洪洙)라는 장수가 있었다. 그의 상관 성이 요(姚)씨인 자가 홍주의 아내를 탐했다. 요씨는 홍주를 사지(死地)에 보내 700명과 함께 전멸시켰고, 아내를 강점하려 했다. 아내는 목을 매 죽었다. 홍주의 원한이 시작된 것이 이때다.

그런데 홍주가 복수를 하려 해도 할 수가 없었다. 요씨가 다음 생에서 고승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 다음 생에는 대문호, 그 다음에는 계율을 엄하게 지키는 승려, 그 다음에는 큰 부자로 태어났다. 생마다 수행이나 학문이나 선행의 기운이 몸을 감싸고 있어서, 원한을 품은 귀신이 접근할 수 없었다. 300년 동안, 다섯 번의 생을 거치는 동안 홍주는 손도 대지 못했다.

그러다가 틈이 생겼다. 요씨의 다섯 번째 생, 즉 지씨로 태어난 이번 생에서 그가 남의 소송을 대리하다가 차 장수 네 사람을 죽게 만든 것이다. 그 순간 복(福)이 깎였다. 방패가 무너졌다. 홍주가 비로소 들어올 수 있었다.

고승이 홍주를 달래 법사(法事)로 원한을 풀어주자, 홍주는 떠났다. 그런데 며칠 뒤 지씨가 다시 쓰러졌다. 홍주가 다시 나타나 말했다. 나는 이미 떠나려 한다. 다만 그 네 명의 차 장수가 새로 죽은 원귀(冤鬼)로서 원한이 뜨거워 도저히 조정이 안 된다. 내 일이 아니니 알려주러 온 것뿐이다. 홍주는 떠났고, 지씨는 이틀을 넘기지 못했다.

이 이야기의 구조가 흥미로운 것은, 300년 묵은 원한은 풀렸는데 새 원한에 의해 결국 죽었다는 점이다. 오래된 빚은 협상이 되었지만, 갓 생긴 빚은 협상이 안 되었다. 시간이 원한을 무디게 만들 수 있지만, 새 원한은 날이 서 있다.

도교에는 태상감응편(太上感應篇)이라는 경전이 있다. 도교의 인과를 가장 체계적으로 정리한 텍스트로, 송나라 이후 민간에서 가장 널리 읽힌 도교 권선서 중 하나다. 핵심 구절 하나가 이렇다. 禍福無門 惟人自召. 화와 복에는 문이 없다. 오직 사람이 스스로 불러들일 뿐이다. 재앙이 어디선가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행위가 재앙을 끌어당긴다는 뜻이다.

태상감응편의 논리 구조는 단순하다. 선을 행하면 복이 쌓이고, 악을 행하면 화가 쌓인다. 복이 충분히 쌓이면 몸에 빛이 감싸서 사귀(邪鬼)가 접근하지 못한다. 그런데 악을 하나라도 지으면 그 빛에 금이 간다. 금이 깊어지면 방패가 무너지고, 그동안 접근하지 못했던 것들이 한꺼번에 들어온다. 지씨의 이야기가 정확히 이 구조다. 네 생에 걸쳐 쌓은 수행과 선행이 방패가 되었지만, 다섯 번째 생에서 남의 목숨을 해치는 일에 가담하자 방패가 깨졌다.

이것을 현대적으로 읽으면, 원한의 생리학과 만나는 지점이 있다.

호프 대학교(Hope College)의 심리학자 샬럿 위블리엣(Charlotte vanOyen Witvliet)이 2001년 Psychological Science에 발표한 연구가 있다. 71명의 참가자에게 실제로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떠올리게 했다. 한 조건에서는 그 상처를 되새기며 원한을 품게 했고, 다른 조건에서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공감하고 용서를 떠올리게 했다. 결과는 명확했다. 원한을 품는 동안 심박수, 혈압, 피부전도도, 안면 근긴장이 모두 올라갔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원한 조건이 끝난 뒤에도 심박수와 피부전도도가 쉽게 내려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몸이 원한을 기억하고 있었다. 반면 용서를 떠올린 조건에서는 자기 통제감이 높아지고, 몸의 반응이 빠르게 안정되었다.

원한을 품으면 몸이 반응한다. 한 번의 실험에서도 이 정도인데, 이것이 수년, 수십 년 지속되면 어떻게 되는가. 위블리엣은 후속 논문에서 만성적인 원한 상태가 교감신경계의 지속적 활성화를 통해 심혈관 질환, 면역 기능 저하, 수면 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원한을 안고 사는 것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매일 자발적으로 분비하는 것과 같다.

도교의 인과론으로 돌아가면, 태상감응편이 말하는 것도 결국 비슷한 구조다. 원한을 품으면 자기 몸의 기(氣)가 탁해진다. 탁한 기운이 쌓이면 밝은 기운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 방패가 약해지는 것이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무너지는 것이다. 남을 해치는 행위가 자기 복을 깎는 이유를, 태상감응편은 하늘의 뜻이라 설명하고, 위블리엣의 연구는 교감신경계의 과활성화라 설명한다. 언어가 다를 뿐 가리키는 곳이 같다.

이야기로 돌아가면, 홍주가 300년을 기다린 것도 주목할 만하다. 원한이 그를 300년 동안 붙잡아둔 것이다. 복수를 이루지 못한 채 300년을 떠돌았다면, 그 300년 동안 홍주 자신은 평화로웠을까. 복수하려는 쪽도, 복수당하는 쪽도, 원한의 고리 안에 있는 한 자유롭지 못하다. 고승이 홍주에게 법사를 해주겠다고 했을 때 홍주가 수락한 것은, 300년간의 집착에서 풀려나고 싶었기 때문일 수 있다. 원한이 상대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가두는 것이라는 점을, 홍주도 300년쯤 되니 알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차 장수 네 명. 이 사람들은 갓 죽었다. 원한이 뜨겁고 날카롭다. 협상이 안 된다. 홍주처럼 300년이 지나면 무뎌질 수도 있지만, 지금은 불가능하다. 새 원한은 오래된 원한보다 위험하다.

태상감응편의 마지막 부분에 이런 구절이 있다. 其有曾行惡事 後自改悔 諸惡莫作 眾善奉行 久久必獲吉慶. 일찍이 나쁜 일을 행한 적이 있더라도 뒤에 스스로 뉘우치고 고쳐서, 모든 악을 짓지 않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면, 오래지 않아 반드시 좋은 일을 얻을 것이다. 도교는 과거의 잘못이 돌이킬 수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고치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말한다. 그리고 고치는 동안에도 이전의 빚이 남아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지씨가 죽은 것은, 네 생에 걸친 수행이 무의미해서가 아니다. 다섯 번째 생에서 스스로 구멍을 낸 것이다. 남을 해치는 일에 가담한 그 한 번이, 300년간 지켜준 방패를 무너뜨렸다. 오래 쌓은 것이 한 번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이 이야기가 전하려는 것일 수 있다.

원한이 진짜로 생을 넘어 이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이런 이야기를 통해 행위의 무게를 가르치려 한 것인지, 그 경계는 아마 확인할 수 없는 영역에 속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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