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sdom

가문의 흐름을 바꾸는 사람 – 떠남, 씨앗, 그리고 자기 대본

모든 가문에는 흐름이 있다. 부모에게서 자식으로, 자식에게서 손자로 이어지는 보이지 않는 관성. 돈의 흐름, 생각의 습관, 관계를 맺는 방식, 실패를 대하는 태도. 이것들이 대물림되면서 가문의 기운이 만들어진다. 어떤 집안은 3대에 걸쳐 부를 쌓고, 어떤 집안은 3대 만에 전부 잃는다.

윌리엄스 그룹(The Williams Group)이 3,200개 부유 가정을 20년간 추적한 연구가 있다. 부유한 가문의 70%가 2세대에서 부를 잃었고, 3세대에 이르면 90%가 사라졌다. 중국에는 富不過三代라는 말이 있고, 일본에는 3대째가 집안을 망친다는 속담이 있으며, 서양에도 셔츠 소매에서 셔츠 소매로(Shirtsleeves to Shirtsleeves)라는 표현이 있다. 문화권은 달라도 관찰한 바는 같다. 부의 관성은 생각보다 짧다.

그런데 가끔 이 흐름을 끊는 사람이 나온다. 부모 세대에서 반복되던 패턴을 자기 대에서 멈추고, 방향을 틀어버리는 사람. 가문의 각성자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다. 이 사람이 등장하면 흐름 자체가 바뀐다. 이 사람의 특징 몇 가지를 관찰한 것이 있다.

첫째, 떠난다.

명리학(命理學)에서 역마(驛馬)라는 개념이 있다. 말을 갈아타는 역참의 기운. 이동, 변화, 새로운 환경으로의 전환을 뜻한다. 사주에 역마가 강한 사람은 한곳에 머물러서는 기운이 풀리지 않는다. 움직여야 열린다.

이것은 명리학적 해석이지만, 현실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관찰된다. 익숙한 환경에 머물면 사고방식이 굳는다. 부모의 습관이 내 습관이 되고, 동네의 기준이 내 기준이 된다. 심리학에서 안전지대(Comfort Zone)라 부르는 것이다. 안전지대 안에서는 불안이 없지만 성장도 없다. 플로리다 주립대학교 심리학과의 안데르스 에릭슨(Anders Ericsson) 교수가 평생에 걸쳐 연구한 결론이 이것이다. 1만 시간의 연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안전지대 바깥에서의 연습이 중요하다. 편한 곳에서 반복하면 실력은 제자리다.

가문의 흐름을 바꾸는 사람은 일단 물리적으로 떠난다. 고향을 벗어나 낯선 도시로 간다. 거기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기준에 노출된다. 환경이 바뀌면 거기에 맞춰 생존하려는 압력이 생기고, 그 압력이 변화를 만든다. 25년 넘게 시장에서 관찰한 바로는, 본거지를 떠나지 않고 큰 부를 일군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 어느 시점에서 익숙한 곳을 떠나는 선택을 했다. 떠남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떠남이 만들어내는 환경의 압력이 핵심이다.

도덕경(道德經) 76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堅強者死之徒 柔弱者生之徒. 굳고 강한 것은 죽음의 무리이고, 부드럽고 유연한 것은 삶의 무리다. 한곳에 뿌리내려 굳어지는 것이 아니라, 물처럼 흘러가면서 형태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이 살아남는다.

둘째, 첫 번째 수확을 자기에게 쓴다.

이것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가문의 각성자는 대개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강하다. 그래서 처음 돈을 벌면 본능적으로 가족에게 돌리려 한다. 고향에 집을 짓고, 동생 학비를 대고, 부모님 용돈을 올린다. 마음은 이해하지만, 시기가 문제다.

투자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 하나가 있다. 복리(Compound Interest)의 힘은 시간에 비례한다. 초기 자본이 복리 효과를 누리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첫 번째 수확을 전부 돌려버리면 복리가 작동할 원금이 사라진다. 씨앗을 심기도 전에 곡식을 나눠준 셈이다.

시장에서 오래 버틴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초기에 극도로 인색했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가 아니라, 자기 기반에 대해서다. 수입이 생기면 먼저 자기 기반을 다졌다. 꾸준한 현금 흐름을 만들 수 있는 구조를 구축하는 데 집중했다. 그래야 나중에 훨씬 큰 규모로 가족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가 아직 일할 수 있는 나이라면, 서둘러 부양하는 것이 오히려 양쪽 모두에게 좋지 않을 수 있다. 사회적 활동을 유지하는 것이 노년의 심리적, 신체적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는 차고 넘친다. 그리고 이른 시기에 과도한 지원을 하면, 주변의 기대치가 올라간다. 한 번 올라간 기대치는 내려오지 않는다. 아직 뿌리가 얕은 나무에 너무 많은 열매를 기대하면 나무가 쓰러진다.

역학(易學)에서 말하는 시(時)의 개념이 여기에 해당한다. 때가 있다. 씨앗을 뿌리는 때, 가꾸는 때, 거두는 때. 이것을 섞으면 다 엉킨다. 첫 번째 돈은 씨앗이다. 씨앗은 땅에 묻어야 한다.

셋째, 자기 삶의 대본을 쓴다.

가문의 흐름을 바꾸는 사람은 어느 시점에서 부모의 대본을 내려놓는다. 부모의 기대, 고향의 기준, 또래의 시간표. 이런 것들이 하나의 각본처럼 작동한다. 몇 살에 결혼하고, 어떤 직업을 갖고, 어디에 살아야 하는지. 이 각본을 따르면 편하다. 갈등이 줄고, 주변의 시선이 편안해진다. 그런데 이 각본이 자기 것인지 남의 것인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장자(莊子) 양생주편에 나오는 포정해우(庖丁解牛) 이야기가 있다. 소 잡는 백정 포정이 19년간 같은 칼로 소를 해체했는데, 칼날이 새것 같았다. 비결을 묻자 포정이 답한다. 처음에는 소가 보였고, 3년이 지나자 소 전체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지금은 눈으로 보지 않고 신(神)으로 본다. 감각이 멈추고 신이 하고 싶은 대로 움직인다. 뼈와 살 사이의 빈틈을 따라 칼이 저절로 흘러간다.

포정이 잘한 것은 칼질이 아니다. 소의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고, 힘을 쓰지 않아도 되는 길을 찾은 것이다. 자기 삶의 대본을 쓴다는 것도 이와 같다. 남의 틀을 억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 구조에 맞는 길을 찾아 따라가는 것이다. 그러면 힘이 덜 들고, 오래 간다.

2025년 2월 미국 국립경제연구소(NBER)에서 발표된 연구가 있다. 1850년에서 1940년 사이 미국 상위 0.1% 부유층의 자산 흐름을 추적한 것인데, 상위 0.1%에 속했던 사람들의 85%가 10년 안에 그 자리에서 밀려났다. 3세대가 되면 조부가 상위 1%였던 손자들 중 93%가 상위 1%에 남지 못했다. 연구진은 이렇게 분석했다. 극단적인 부는 예외적인 사업 능력이나 운에서 비롯되며, 이것은 세대를 넘어 전달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가문의 부는 대물림되는 것이 아니라 매 세대마다 새로 만들어져야 한다. 그리고 새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전 세대의 각본에서 벗어나야 한다. 부모의 성공 방식이 자식에게 그대로 통하지 않고, 부모의 실패 패턴이 자식에게까지 이어질 이유도 없다. 각성자는 이 사실을 자각한 사람이다.

명리학(命理學)에서 편관(偏官)이 강한 사람은 기존 체제에 도전하는 성향을 가진다. 편인(偏印)이 강한 사람은 남들과 다른 사고방식으로 움직인다. 이런 기운이 사주에 있는 사람은 기존의 질서를 그대로 따르면 오히려 막힌다. 자기만의 길을 뚫어야 열린다. 그것이 불효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긴 시간 축으로 보면 가문 전체에 새 기운을 불어넣는 행위다.

도덕경 22장에 이런 말이 있다. 曲則全. 굽으면 온전해진다. 남들이 보기에 돌아가는 것 같은 길이, 사실은 온전해지는 길인 경우가 있다. 고향을 떠나는 것, 가족에게 당장 보답하지 않는 것, 주변의 기대를 따르지 않는 것. 이 세 가지는 겉으로는 이탈이다. 하지만 안으로는 기반을 다지는 과정이다.

가문의 각성자는 영웅이 아니다. 대단한 비전을 가진 사람도 아니다. 그저 대물림되던 패턴 하나를 자기 대에서 멈추기로 결심한 사람이다. 그 결심이 얼마나 오래가는지, 그것이 정말로 가문의 흐름을 바꾸는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흐름을 바꾸려면 먼저 흐름이 있다는 사실을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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