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 이야기 – 설명할 수 없는 교통사고와 집의 기운
풍수(風水)를 믿지 않는 사람이 집을 산다. 가격이 적당하고 환경이 좋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건축 설계사가 땅의 모양에 맞춰 효율적으로 배치한 수영장, 넓은 거실, 3층짜리 별장. 세상의 합리적인 기준으로 보면 나무랄 데 없는 선택이었다. 그런데 입주한 지 1년 만에 집주인이 암에 걸리고, 그로부터 또 1년 뒤 아들이 설명할 수 없는 교통사고로 죽는다. 풍수가 뭔지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아들의 관 앞에서 비로소 풍수사를 부른다. 풍수에서 집이 나쁜 기운을 품고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 이야기는 1997년에 실제로 있었던 일로 전해진다. A씨라 불리는 인물이 새 집을 매입했는데, 3층 별장에 수영장까지 딸린 꽤 그럴듯한 물건이었다. 문제는 이 집의 터가 약간 사다리꼴 모양이었다는 점이다. 케이크를 잘라놓은 것처럼 한쪽이 좁고 한쪽이 넓은 땅. 설계사는 이 모양을 살려서 수영장을 키 모양, 그러니까 입구 쪽이 좁고 안쪽이 넓은 형태로 배치했다. 일반적인 건축 설계의 관점에서는 합리적인 판단이다. 빈 공간을 최대한 활용한 것이니까. 그런데 이 수영장의 벽이 지면보다 60센티미터쯤 높아서, 대문 앞에 서면 수영장이 마치 쐐기처럼 현관을 향해 꽂혀 있는 형상이 된다. 풍수에서 이것을 穿心殺이라 부른다. 뾰족한 형체가 집의 중심을 관통하는 기세로 향하면, 그 집에 사는 사람의 몸과 재물에 해가 미친다는 것이다.
穿心殺은 풍수의 형기론(形氣論)에서 나온 개념이다. 형기론이란 눈에 보이는 지형과 건물의 모양새가 기(氣)의 흐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따지는 방법론이다. 뾰족한 물체가 문을 향해 겨누고 있으면 살기(殺氣)가 된다는 원리는 동서양을 불문하고 비슷한 맥락이 있다. 홍콩에서는 이 원리가 초고층 빌딩에까지 적용된 유명한 사례가 있다. 1990년 완공된 중국은행 타워는 삼각형이 겹쳐진 칼날 같은 외관으로 지어졌는데, 이 칼날의 방향이 바로 옆 HSBC 본점을 향하고 있었다. 중국은행 타워가 올라간 뒤 HSBC의 실적이 하락하자, HSBC 측은 옥상에 대포 모양의 구조물을 설치해 살기를 꺾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뒤 실적이 회복되었다는 후일담까지 붙어 있다. 수십조 원의 자산을 굴리는 글로벌 은행이 건물 옥상에 대포를 올렸다는 것은, 풍수를 믿든 안 믿든 적어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는 뜻이다.
다시 A씨의 집으로 돌아가면, 문제는 穿心殺만이 아니었다. 이 집의 좌향(坐向), 그러니까 집이 앉아 있는 방위와 바라보는 방향에도 심각한 결함이 있었다. 집은 서북쪽을 등지고 동남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문제는 그 방위가 극도로 서쪽으로 치우쳐 있었다는 것이다. 나침반으로 재면 서북과 서의 경계선, 딱 그 위에 걸려 있었다. 풍수에서 이 경계선을 공망(空亡)이라 부른다. 팔방(八方)의 경계는 기운이 텅 비어 있는 자리다. 어떤 좋은 기운도 들어오지 못하고, 어떤 나쁜 기운도 막아주지 못한다. 명리학(命理學)에서 공망(空亡)은 십간(十干)과 십이지(十二支)가 짝을 이루다 남는 두 글자를 가리키는데, 풍수에서의 공망도 같은 원리다. 짝이 없는 빈자리. 기운이 머물지 않는 곳. 공망에 걸린 집은 아무리 겉이 좋아도 실속이 없고, 사는 사람에게 풍수의 도움이 전혀 미치지 않는다.
1998년, 입주 이듬해에 A씨는 장암(腸癌)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초기에 발견되어 회복했지만, A씨는 여전히 풍수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 병이 오는 것이고, 암은 유전자의 문제라고 믿었다. 합리적인 사람의 합리적인 판단이다. 그런데 1999년 4월 28일 밤 10시 반, A씨의 둘째 아들이 귀가하던 중 갑자기 핸들을 꺾어 반대편 차선으로 돌진했다. 맞은편에 서 있던 버스와 정면으로 부딪혀 목뼈가 부러지면서 그 자리에서 숨졌다. 감시 카메라에 찍힌 영상에 따르면 차량 속도는 빠르지 않았고, 음주나 약물 반응도 없었다. 정신 상태도 정상이었다. 동물을 피하려 했다는 추측, 졸음운전이라는 추측이 있었지만 어느 것도 확실한 근거가 없었다.
풍수의 눈으로 보면 이 사고에는 여러 겹의 기운이 겹쳐 있다. 우선 공망에 걸린 집은 사귀(邪鬼)나 음기(陰氣)에 취약하다고 본다. 기운이 텅 비어 있으니 밖에서 들어오는 것을 걸러내지 못한다는 논리다. 여기에 대문 앞 수영장의 穿心殺이 겹친다. 그리고 사고가 난 1999년 4월의 시점에서, 현공풍수(玄空風水)의 비성(飛星) 배치를 보면 오황살(五黃殺)이 바로 그 방위에 날아들어 있었다. 오황살은 구성(九星) 가운데 가장 흉한 별이다. 토(土)의 기운을 가진 이 별이 어느 방위에 자리 잡으면, 그 방향으로 나가거나 그 방향에서 큰 공사를 하거나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것을 극히 꺼린다. 풍수에서 오황살은 뼈를 부러뜨리는 별이라 하여 쇄골살(碎骨殺)이라는 별명까지 붙어 있다. A씨 아들의 사인이 목뼈 골절이었다는 점은, 풍수를 아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멈칫할 대목이다.
여기에 한 겹이 더 있다. 1999년은 기묘(己卯)년이다. 묘(卯)년의 삼살(三殺)은 서남, 서, 서북 세 방위에 걸린다. A씨의 집이 바로 서북과 서의 경계에 앉아 있으니, 삼살의 한가운데에 놓인 셈이다. 삼살 방위를 향해 나아가는 것은 풍수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피해야 할 일 중 하나인데, 사고 당시 A씨의 아들은 서북 방향으로 차를 몰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가장 기이한 겹침이 있다. A씨의 아들은 1970년 경술(庚戌)년생이었다. 사고가 난 날이 경술(庚戌)일이었다. 아들이 차를 몰고 가던 방향이 술(戌)의 방위였다. 경(庚)은 오행으로 금(金)이고, 술(戌) 속에도 금기(金氣)가 들어 있다. 태어난 해의 간지, 사고 당일의 간지, 이동하던 방위가 모두 같은 글자, 같은 기운으로 포개진다. 금(金)은 날카로운 것, 끊어지는 것, 부딪히는 것의 기운이다. 이 정도 겹침이 되면, 우연이라 부르기엔 너무 정교하고 필연이라 단정하기엔 증명할 길이 없다.
A씨의 사례가 특별히 극적이긴 하지만,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드문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이사 후 집안에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는 상담은 꽤 자주 들어온다. 가장 흔한 패턴이 교통사고다. 이사하고 나서 가족 중 한 명이 접촉사고를 당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식구도 사고가 나고, 그게 반복된다. 한두 번이면 재수가 없다고 넘기겠지만, 같은 집에 사는 식구들이 돌아가며 차 사고를 당하면 아무리 합리적인 사람이라도 집을 의심하게 된다. 풍수 점검을 하고, 부적을 쓰거나 법사(法事)를 진행해서 기운을 바로잡은 뒤에야 사고가 멈추는 경우들이 실제로 있다. 물론 그것이 풍수 처방 덕분인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히 해소된 것인지는 증명할 길이 없다. 다만 당사자들에게는 그 전후의 차이가 너무 뚜렷하기 때문에, 우연이라고 치부하기가 쉽지 않다. 주거만 그런 것이 아니다. 법인이 사무실을 이전한 뒤 법인장이 1년을 못 버티고 잘리는 일이 반복되는 곳도 있었다. 한 명이 나가고, 새로 온 사람도 또 나가고, 그 다음 사람도 버티지 못했다. 결국 법인장 사무실의 위치를 건물 안에서 다른 자리로 옮기고 나서야 비로소 안정이 되었다. 개인 주택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다. 이사 직후 멀쩡하던 직장에서 갑자기 잘리는 사람, 이사하고 나서부터 부부 사이가 급격히 틀어지는 집.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면 다 개별적인 사정이 있겠지만, 이사라는 공통분모가 묶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풍수에서는 사람이 머무는 공간이 바뀌면 그 사람을 감싸고 있던 기의 구조가 통째로 바뀐다고 본다. 좋은 곳으로 옮기면 기가 순해지고, 나쁜 곳으로 옮기면 기가 거슬린다. 거슬린 기는 가장 약한 고리부터 건드린다. 몸이 약한 사람은 병이 오고, 운이 약한 사람은 사고가 난다.
사실 풍수라는 학문 자체가 그런 위치에 서 있다. 증명할 수 없지만 무시하기도 어려운 영역. 과학의 언어로 설명되지 않지만 경험의 축적이 만들어낸 패턴의 체계. 도교(道敎)의 세계관에서 보면 천지만물은 기(氣)의 흐름 속에 놓여 있고, 사람이 사는 집도 그 흐름의 일부다. 집이 좋은 자리에 좋은 방향으로 앉아 있으면 기가 모이고, 나쁜 자리에 어긋난 방향으로 서 있으면 기가 흩어지거나 거꾸로 들이친다. 현대인의 시선에서 이것은 미신일 수 있다. 그러나 홍콩의 초고층 빌딩들이 여전히 풍수사의 조언을 받아 지어지고, HSBC 같은 세계적 은행이 옥상에 대포를 올리는 현실은, 적어도 돈의 흐름을 가장 예민하게 읽는 사람들이 기의 흐름 역시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A씨의 이야기에서 무엇을 읽어낼 것인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풍수를 아는 사람은 공망, 穿心殺, 오황살, 삼살, 간지의 겹침이라는 다섯 겹의 흉조를 볼 것이고, 풍수를 모르는 사람은 불운한 우연의 연속을 볼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A씨가 집을 살 때 가격과 환경만 보고 방위는 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설계사는 땅의 모양에 맞춰 효율을 극대화했고, 그 결과 수영장은 대문을 겨누는 쐐기가 되었다. 설계사의 논리와 풍수의 논리는 같은 공간을 전혀 다르게 읽는다. 하나는 쓸 수 있는 면적을 최대화하려 하고, 다른 하나는 기가 머물 수 있는 형상을 만들려 한다. 어느 쪽이 옳은지는 아무도 단정할 수 없지만, 적어도 수천 년간 동아시아의 건축과 도시 설계에 풍수가 깊이 개입해왔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하기 어렵다. 도덕경(道德經) 11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삼십폭공일곡 당기무 유차지용(三十輻共一轂 當其無 有車之用). 서른 개의 바큇살이 하나의 바퀴통에 모이는데, 비어 있는 그 가운데가 있어야 수레의 쓸모가 생긴다. 비어 있음이 쓸모를 만든다는 것은 노자의 가르침이지만, 풍수에서 말하는 공망(空亡)의 빈자리는 쓸모가 아니라 위태로움을 만든다. 같은 비어 있음이되, 어디에 비어 있느냐에 따라 그 성질이 완전히 달라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