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oist cultivation

우수(雨水) 절기의 세 가지 금기, 오행으로 읽는 봄의 양생법

2026년 우수(雨水) 절기는 2월 19일, 음력으로는 정월 초이틀에 든다. 태양 황경 330도. 눈이 녹아 비가 되고, 얼음이 풀려 물이 흐르기 시작하는 때다. 옛말에 ‘우수 경칩에 대동강 물이 풀린다’고 했는데, 실제로 한반도 기준 서울의 2월 중순 평균기온은 아직 영하권을 오가는 수준이니, 24절기가 중국 화북 지방에서 비롯된 것임을 감안하면 체감과 다소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우수가 지나면 영하 10도를 밑도는 한파는 사실상 끝이고, 땅속에서는 이미 무언가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월령칠십이후집해(月令七十二候集解)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正月中 天一生水 春始屬木 然生木者必水也 故立春後繼之雨水 且東風既解凍 則散而爲雨矣.” 봄은 오행으로 목(木)에 속하고, 나무가 자라려면 반드시 물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입춘 다음에 우수가 오는 것이다. 동풍이 불어 얼음을 녹이면 그것이 흩어져 비가 된다. 이 짧은 문장 안에 오행의 상생 관계가 자연현상으로 그대로 드러나 있다. 수생목(水生木). 물이 나무를 낳는다. 절기의 배치 자체가 오행의 순환을 따른 것이니, 24절기란 결국 천지의 기운이 어떤 순서로 돌아가는지를 관찰한 기록이다.

우수의 물후(物候)는 세 가지로 나뉜다. 처음 닷새는 수달이 물고기를 잡아 늘어놓는 달제어(獺祭魚), 다음 닷새는 기러기가 북으로 돌아가는 홍안래(鴻雁來), 마지막 닷새는 초목이 싹트는 초목맹동(草木萌動)이다. 수달이 잡은 물고기를 가지런히 늘어놓는 모습이 마치 제사상을 차린 것 같다 하여 달제어라 불렀는데, 한어대사전에서는 이를 두고 ‘나중에 전거를 늘어놓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 되었다’고 풀이한다. 원래는 수달의 본능적 행동이었을 뿐인데, 사람이 거기서 의례의 형식을 읽어낸 것이다. 자연을 관찰하되 거기에 인간의 의미를 덧씌우는 것, 그것이 동양 사유의 오래된 습관이다.

기러기가 돌아가는 것은 입춘 때 ‘어양복빙(魚陟負冰)’, 물고기가 얼음을 이고 올라오는 것에 이어지는 변화다. 입춘에 물속이 먼저 깨어나고, 우수에 하늘의 새가 방향을 튼다. 그리고 마지막에 초목이 땅을 뚫고 나온다. 물 아래에서 시작된 봄이 하늘을 지나 땅 위로 도착하기까지, 한 달 남짓의 시간이 걸리는 셈이다. 두보(杜甫)의 춘야희우(春夜喜雨)에 나오는 ‘好雨知時節 當春乃發生 隨風潛入夜 潤物細無聲’이라는 구절은 바로 이 시절의 비를 읊은 것이다. 봄비는 때를 알아서 오고, 바람을 따라 몰래 밤에 스며들어, 소리 없이 만물을 적신다.

여기서 ‘발생(發生)’이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아(爾雅)에 “冬爲安寧 春爲發生”이라 했다. 겨울은 안녕이요, 봄은 발생이다. 지금은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는 뜻으로 쓰이는 ‘발생’이 본래는 싹이 트고 자라나는 것, 오직 봄의 기운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말의 쓰임이 바뀌면서 원래의 무게가 사라진 예다. 그런데 절기의 관점에서 보면 발생이란 단어가 품고 있던 최초의 의미가 우수 무렵에 가장 정확하게 실현된다. 아직 추위가 남아 있고, 풀은 ‘초색요간근각무(草色遙看近卻無)’, 멀리서 보면 있는 것 같은데 가까이 가면 없는 그 상태다. 한퇴지(韓退之)가 ‘最是一年春好處’라고 한 것이 바로 이 아슬아슬한 경계의 순간이다.

옛사람들이 우수 절기에 특별히 금기한 것이 셋 있었다. 기름지고 무거운 음식을 탐하는 것, 성을 내고 다투는 것, 그리고 옷을 서둘러 벗는 것이다. 이 셋은 각각 비위(脾胃), 간(肝), 피부와 폐(肺)에 대응한다. 오행의 관점에서 보면 봄은 목(木)의 계절이고, 간(肝)이 왕성해지는 때다. 간이 지나치게 성하면 목극토(木剋土)의 이치에 따라 비위가 눌린다. 황제내경(黃帝內經)에서 말하는 오행오장의 관계가 절기의 금기 속에 고스란히 들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당나라 약왕 손사막(孫思邈)은 천금방(千金方)에서 “春七十二日 省酸增甘 以養脾氣”라고 했다. 봄 72일 동안은 신맛을 줄이고 단맛을 늘려 비장의 기운을 북돋우라는 뜻이다. 간이 좋아하는 신맛을 줄여 간의 기세를 꺾고, 비장이 좋아하는 단맛을 더해 비장을 보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건강 상식이 아니라 하나의 사유 체계다. 금원 사대가 중 한 사람인 이동원(李東垣)은 비위론(脾胃論)에서 “內傷脾胃 百病叢生”이라 했다. 비위가 상하면 온갖 병이 따라온다. 또한 “眞氣又名元氣 乃先身生之精氣 非胃氣不能滋”라고도 했으니, 원기(元氣)라는 것도 위장의 기운이 없으면 길러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명대 의가 장경악(張景岳)은 한 걸음 더 나아가 “胃强則强 胃弱則弱 有胃則生 無胃則死”라고 단언했다. 비위가 곧 생사를 가른다. 봄에 기름진 음식을 삼가라는 것은 그저 살이 찔까 걱정해서가 아니다. 간기(肝氣)가 올라오는 시절에 비위까지 짓누르면 몸 전체의 기가 막힌다. 설 연휴 동안 이미 과식의 축적이 있는 상태에서 우수가 드니, 이 시점의 절제는 시기적으로도 정확하다.

화를 삼가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봄의 간기는 소달(疏達)을 좋아하고 억눌리는 것을 싫어한다. 도덕경 제42장에 “萬物負陰而抱陽 沖氣以爲和”라 했다. 만물은 음을 지고 양을 안으며, 충기(沖氣)로써 조화를 이룬다. 봄에 양기가 올라오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되, 그것이 분노라는 형태로 터져 나오면 조화가 깨진다. 간기가 제 갈 길을 못 찾고 울체(鬱滯)되면 간화(肝火)가 되고, 그것이 비위를 치면 소화가 안 되고, 위로 치솟으면 두통이 온다. 노자가 말한 충기이위화(沖氣以爲和)의 ‘화(和)’가 무너지는 것이다. 옛사람들이 봄에 산보를 권하고, 꽃구경을 권하고, 활 쏘기나 그네 타기를 권한 것은 유흥이 아니라 간기를 순조롭게 풀어주기 위한 양생의 방편이었다.

춘추(春捂)라는 말이 있다. 봄에는 옷을 더 껴입으라는 뜻인데, ‘춘추추동(春捂秋凍) 잡병불생(雜病不生)’이라는 속담으로 전해진다. 봄에는 껴입고 가을에는 얼려야 잡병이 생기지 않는다. 우수 무렵은 낮 기온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외투를 벗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때인데, 이때가 가장 위험하다. 낮과 밤의 기온 차이가 10도 이상 벌어지기도 하고, 이른바 도춘한(倒春寒)이 불시에 찾아온다. 1991년에는 우수 이후인 2월 하순에 서울 기온이 영하 15도까지 떨어진 기록이 있다. 양의(洋衣) 입기법이라 할 수 있는 겹겹이 얇은 옷을 포개 입는 방식이 이 시기에 적합한데, 아래는 두텁게, 위는 가볍게 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체의 보온을 중시하는 것은 신장(腎)과 하초(下焦)의 양기를 지키기 위함이고, 상체를 가볍게 하는 것은 간기의 상승을 방해하지 않기 위함이다.

정판교(鄭板橋)의 대련에 “春風放膽來梳柳 夜雨瞞人去潤花”라는 구절이 있다. 봄바람이 대담하게 와서 버드나무를 빗질하고, 밤비가 몰래 와서 꽃을 적신다. 봄바람이 ‘대담하게’ 온다는 표현이 묘한데, 아직 겨울 장군이 위세를 떨치고 있을 때 먼저 나서서 버들가지를 건드리려면 확실히 담력이 필요하다. 따뜻해진 다음에야 대추나무를 건드리는 것은 별 용기가 아니다. 먼저 깨어나는 것의 고단함과 아름다움이 그 한 구절에 있다. 옛사람들이 버드나무에 여덟 가지 덕이 있다고 한 것도 같은 이유다. 땅을 가리지 않고 자라고, 잘 번식하고, 봄에 가장 먼저 푸르러지고, 겨울이 깊어야 비로소 시든다. 가장 먼저 추위 속에서 빛깔을 내는 것, 그것이 우수 시절 버드나무의 덕이다.

남방에서는 우수를 ‘가경지후(可耕之候)’, 밭을 갈아도 되는 때라 불렀다. 농사의 시작이다. 꽃이 피면 절기를 알리고, 새가 울면 농시를 알린다는 ‘화개관절령 조명보농시(花開管節令 鳥鳴報農時)’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관측 장비 없던 시절의 기상학이었다. 사천(四川) 지역에서는 우수날 시집간 딸이 친정에 돌아와 ‘우수주(雨水酒)’를 바치고 부모에게 고기를 고아 드렸다. 자식이 부모의 한기를 걱정하여 따뜻한 국물을 올리는 것, 절기의 변화에 효도의 형식을 맞춘 것이다. 같은 사천 지역의 ‘라보보(拉保保)’ 풍속은 우수날 돌 전 아이에게 수양아비를 구해주는 것인데, 아이가 무탈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을 공동체의 인연으로 엮어낸 방식이다.

송대에 이런 시가 있다. “盡日尋春不見春 芒鞋踏遍隴頭雲 歸來笑拈梅花嗅 春在枝頭已十分.” 하루 종일 봄을 찾아 헤맸으나 보이지 않았다. 짚신이 닳도록 고갯마루 구름을 밟았다. 돌아와 웃으며 매화 한 가지를 꺾어 코에 대니, 봄은 이미 가지 끝에 한껏 와 있었다. 봄은 먼 곳에 없고 자기 뜰 안에 있었다는, 어찌 보면 흔한 깨달음이다. 그런데 이것이 우수 절기와 겹쳐 읽히면 조금 다른 느낌이 된다. 우수의 봄은 ‘초색요간근각무’의 봄이다. 있는 것 같은데 없고, 없는 것 같은데 있다. 보려 하면 보이지 않고, 찾지 않으면 이미 와 있다. 도덕경 제14장의 “視之不見名曰夷 聽之不聞名曰希 搏之不得名曰微”와 닮아 있다.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을 이(夷)라 하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것을 희(希)라 하고, 잡아도 잡히지 않는 것을 미(微)라 한다. 우수의 봄이 딱 그렇다.

이아(爾雅)에 “天地之交而爲泰”라 했다. 하늘과 땅이 사귀어 태(泰)가 된다. 봄의 물이 태(泰)인 이유는 천지가 함께 빚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주역 태괘(泰卦)의 상은 땅이 위에 있고 하늘이 아래에 있는 형상이다. 위에 있어야 할 것이 아래로 내려오고, 아래에 있어야 할 것이 위로 올라간다. 그래서 소통이 이루어진다. 우수의 비가 내리는 것도 같은 이치다. 하늘의 기운이 아래로 내려오고, 땅의 기운이 위로 올라가서 만나는 자리에 비가 생긴다. 그 비가 초목을 적시고, 초목이 싹을 틔우고, 그렇게 한 해의 발생이 시작된다. 올해 우수는 설 연휴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명절의 들뜬 기운 속에서 기름진 음식 앞에, 오래간만에 모인 가족 사이의 마찰 앞에, 따뜻해진 날씨에 서둘러 외투를 벗고 싶은 충동 앞에, 이 오래된 세 가지 금기가 조용히 서 있다.

댓글에 인색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