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oist cultivation

약 없이 불안감을 다스리는 사람들 – 동양 고전이 말하는 불안 해소법

약 없이 불안감을 다스리는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한국의 불안장애 환자는 2017년 65만 명에서 2021년 86만 명으로 5년 만에 32.3% 증가했고, 20대의 증가율은 86.8%에 달한다. 그런데 이 숫자에 잡히지 않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병원에 가지 않는 사람들. 약을 먹지 않는 사람들. 혼자서, 또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불안을 견뎌내고 있는 사람들.

새벽 3시에 눈이 떠진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런데 가슴이 뛴다. 내일 프레젠테이션이 걱정되는 건지, 지난달 실수가 떠오르는 건지, 아니면 그냥 막연한 공포인지 구분이 안 된다. 핸드폰을 집어 들면 끝없이 스크롤을 내린다. 경기침체 뉴스, 전쟁 속보, 부동산 폭락 전망. 보면 볼수록 불안해지는데 손이 멈추지 않는다. 이것을 요즘은 둠스크롤링(Doomscrolling)이라 부른다.

직장인 김모 씨(34세)는 매일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심장이 벌렁거린다. 회사에서 잘리면 어쩌나. 대출은 갚을 수 있을까. 승진에서 밀리면.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병원에 갔더니 범불안장애 초기라고 했다. 약을 처방받았지만 한 번 먹기 시작하면 단약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약 봉지를 서랍에 넣어두고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대학원생 박모 씨(28세)는 논문 마감이 다가올 때마다 손톱을 물어뜯는다. 어깨가 돌처럼 굳어 있고, 위장이 뒤틀리며, 집중력은 바닥이다. 잠을 자도 개운하지 않다. 친구들에게 말하면 “다 그래” “좀 쉬어”라는 말만 돌아온다. 쉬어서 낫는 거라면 진작 나았을 것이다.

육아를 하는 이모 씨(39세)는 아이가 잠든 뒤에 공허함이 밀려온다. 내가 좋은 엄마인지, 커리어를 포기한 게 맞는지, 이 선택이 10년 뒤에도 괜찮을지. 남편은 “뭐가 그렇게 걱정이냐”고 한다. 설명할 수가 없다. 구체적인 무엇이 불안한 게 아니라, 존재 자체가 불안한 것이다.

이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불안의 대상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위협이 있다면 대응이라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은 대응할 곳이 없다. 주먹을 휘둘러도 허공만 맞힌다.

동양 고전에서는 이 현상을 오래전부터 관찰해왔다. 도덕경(道德經) 16장에 나오는 구절이 있다. 歸根曰靜 靜曰復命. 뿌리로 돌아가는 것을 고요함이라 하고, 고요해지는 것을 본래의 흐름으로 되돌아감이라 한다. 노자(老子)는 불안의 원인을 밖에서 찾지 않았다. 뿌리를 잃어버린 상태, 본래 자리에서 벗어난 상태가 곧 불안이라고 보았다.

명리학(命理學)에서도 불안의 구조를 설명하는 체계가 있다. 사주(四柱) 구조에서 일주(日柱)가 약한데 관살(官殺)이 강하면 외부 압력에 짓눌리는 구조가 된다. 칠살(七殺)이 공격하면 매일 전쟁터에 서 있는 것 같은 공포가 생긴다. 효신탈식(梟神奪食)의 운에 들면 창의력과 즐거움이 막혀버려 우울과 불안이 동시에 찾아온다. 물론 모든 사람이 명리학을 믿을 필요는 없지만, 이 체계가 수천 년간 관찰해온 것은 결국 에너지의 흐름이다. 막히면 불안하고, 흐르면 편안하다. 이것은 현대 심리학이 말하는 자율신경계의 교감-부교감 균형과 닮아 있다.

장자(莊子) 제물론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大知閑閑 小知間間 大言炎炎 小言詹詹. 큰 앎은 여유롭고, 작은 앎은 쪼잔하다. 큰 말은 담백하고, 작은 말은 수다스럽다. 불안한 사람의 머릿속은 쉴 새 없이 떠든다. “이러면 어쩌지” “저러면 어쩌지” “그때 왜 그랬을까.” 이 끊임없는 내면의 수다가 에너지를 소진시킨다. 장자가 말한 소지간간(小知間間)이 바로 이것이다.

그렇다면 약 없이 불안을 다스리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첫 번째는 몸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있다. 움직이라는 말이 격렬한 운동을 하라는 뜻이 아니다. 도교 전통에서는 오히려 땀이 줄줄 흐르는 격렬한 운동이 양기(陽氣)를 손상시킨다고 본다. 움직이라는 것은 활동을 하라는 뜻이고, 활동을 하라는 것은 멈춰 있지 말라는 뜻이다. 2020년 PNAS(미국국립과학원회보)에 실린 USC David Raichlen 교수팀의 연구가 이것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한다. 연구팀은 탄자니아의 하드자(Hadza) 수렵채집인을 조사했다. 놀라운 사실이 발견되었다. 하드자족의 하루 비활동 시간은 평균 9.9시간으로, 현대 산업화 사회의 직장인들과 거의 같았다. 그런데 하드자족에게는 심혈관 질환이나 대사 질환의 지표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비결은 앉는 방식에 있었다. 현대인은 의자에 깊이 파묻혀 앉는다. 이때 하체 근육 활동은 걷기 대비 약 5%에 불과하다. 반면 하드자족은 쪼그려 앉거나 무릎을 꿇는다. 이 자세에서는 걷기 대비 20~40%의 근육 활동이 유지된다. 의자에 앉는 것과 비교하면 4~8배 차이다. 하체 근육이 수시로 낮은 수준의 자극을 받으면서 지방을 연료로 태우고, 기의 흐름이 유지된다. 연구팀은 이것을 비활동 불일치 가설(Inactivity Mismatch Hypothesis)이라 명명했다. 인간의 몸은 하루 종일 일정한 근육 활동이 유지되도록 진화했는데, 의자라는 비교적 최근의 발명품이 이 흐름을 끊어버렸다는 것이다. 도인술(導引術)이라는 것이 있다. 기를 이끌어 순환시킨다는 뜻이다. 고대 마왕퇴(馬王堆) 한묘에서 출토된 도인도(導引圖)에는 44가지 동작이 그려져 있는데, 기원전 168년 이전의 유물이다. 2천 년 전 사람들도 같은 문제를 겪고 있었다는 뜻이다. 도인술의 핵심도 격렬함이 아니라 끊임없는 순환이다. 현대에 와서는 태극권, 기공, 산책이 이 전통을 잇고 있다. 한 시간에 한 번 일어나서 몇 분간 걷거나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는 것만으로도, 하드자족의 쪼그려 앉기와 비슷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요점은 단순하다. 멈추지 않는 것이다.

두 번째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다. 일기든, 메모든, 아무렇게나 적는 것이든. 머릿속의 소음을 밖으로 꺼내는 행위 자체가 치료가 된다. 도덕경 33장에 知人者智 自知者明이라는 구절이 있다. 남을 아는 것은 지혜이고, 자기를 아는 것은 밝음이다. 불안한 사람들 대부분은 자기 안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다. 막연하게 “불안하다”고만 느낀다. 그런데 종이에 적기 시작하면 불안의 실체가 드러난다. “나는 지금 3개월 뒤 계약 만료가 걱정이다.” “나는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 두렵다.” 이렇게 이름을 붙이는 순간, 불안은 크기가 줄어든다. 이름 없는 괴물이 가장 무섭다.

세 번째는 자연과 접촉하는 사람들이다. 이것은 낭만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 산림청이 2004년부터 추진한 산림욕(Shinrin-yoku) 연구에서 숲에서 20분만 걸어도 코르티솔(Cortisol) 수치가 유의미하게 떨어진다는 결과가 나왔다. 동양의 전통에서 산(山)은 양기(陽氣)가 모이는 곳이다. 물이 흐르는 계곡은 기가 순환하는 통로다. 현대인이 콘크리트 건물 안에서 형광등 아래 하루를 보내는 것은, 기의 관점에서 보면 막힌 방에 갇혀 있는 것과 같다.

네 번째로 명상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짚어야 할 것이 있다.

명상이 만능이 아니다. 최근 연구들이 이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2025년 Clinical Psychological Science에 발표된 멜버른대학교 Nicholas Van Dam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 성인 명상 수행자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조사에서 상당수가 부작용을 경험했다. 공황발작, 트라우마 재경험, 이인증(Depersonalization), 해리(Dissociation) 같은 증상이 보고되었다. 2021년 Brown대학 Willoughby Britton의 연구에서는 8주 마음챙김 프로그램 참가자 96명 중 83%가 하나 이상의 명상 관련 부작용을 경험했고, 37%는 일상 기능에 영향을 받았으며, 6~14%는 지속적인 나쁜 영향을 보고했다.

쓰레드(Threads)나 각종 커뮤니티를 보면 명상 예찬론자들이 넘쳐난다. “명상하면 인생이 바뀐다” “하루 30분이면 불안이 사라진다” 같은 글이 수천 개의 좋아요를 받는다. 이 사람들의 경험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다만, 명상을 단순히 눈 감고 호흡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위험할 수 있다.

도교 전통에서는 정좌(靜坐) 수행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심성(心性)을 먼저 닦으라고 가르친다. 마음이 탁하고 어두운 상태에서 깊은 명상에 들어가면, 맑은 물이 아니라 탁한 물이 올라온다. 억눌러왔던 트라우마, 해결하지 못한 감정, 무의식의 어두운 면이 통제 없이 튀어나온다. 이것을 전통적으로 주화입마(走火入魔)라 부른다. 중국은 1989년부터 기공편차(氣功偏差) 증후군을 정신질환 분류체계에 공식 등재했다. 미신이 아니라 의학적으로 인정된 현상이다.

태을금화종지(太乙金華宗旨)에는 이런 경고가 있다. 백일간 일관된 수행이 이루어진 후에야 비로소 빛이 진정하며, 그제서야 신화(神火) 작업을 시작할 수 있다고. 기초가 없는 상태에서 깊은 수행에 들어가면 내부의 에너지가 역류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명상을 하고 싶다면 이렇게 접근하는 것이 안전하다. 먼저, 맑고 투명한 마음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다. 명상 전에 자기 안의 분노, 원망, 집착을 어느 정도 정리해야 한다. 상담이든, 글쓰기든, 운동이든 먼저 감정의 쓰레기를 비워내야 한다. 특히 욕망, 비교 이런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명상은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 물론 누군가는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 명상하는 거 아닌가요? 묻겠지만,

그래서 하는 이야기가, 관련 지식을 어느 정도 갖춘 후에 시작하는 것이 좋다.

명상이 무엇인지, 어떤 반응이 일어날 수 있는지, 위험 신호는 무엇인지를 알고 들어가야 한다. 겁을 주려는게 아니라, 무지한 사람들이 타인을 해치는 것을 너무 많이 봤다. 명상을 시작할때는, 시간은 하루 5분 정도로 시작하는 것이 현명하다. 유튜브에서 본 대로 처음부터 30분, 1시간씩 앉아 있는 것은 운전면허도 없이 고속도로에 올라가는 것과 같다. 5분 동안 편안한 자세로 앉아 호흡을 관찰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것이 익숙해지면 10분, 15분으로 늘려가면 된다.

도교의 수행 전통에서 강조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수행의 여섯 단계 중 첫 번째는 몸이 편안해지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의식이 가라앉는 것이다. 가부좌를 틀어야 한다거나 특정 자세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몸이 불편하면 마음이 고요해질 수 없다. 의자에 편안하게 앉는 것으로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자세가 아니라 마음이다.

왕양명(王陽明)은 전습록(傳習錄)에서 山中賊易破 心中賊難破라고 했다. 산속의 도적은 깨뜨리기 쉬우나 마음속의 도적은 깨뜨리기 어렵다. 불안이라는 도적은 밖에 있지 않다. 안에 있다. 밖을 아무리 정비해도, 안의 도적을 잡지 않으면 평안은 오지 않는다. 그런데 왕양명이 이 말을 한 맥락이 흥미롭다. 그는 실제로 전장에서 반란군을 진압하면서 이 깨달음을 얻었다. 수만 명의 반란군보다 자기 마음 하나를 다스리는 것이 더 어려웠다는 고백이다.

결국 불안을 다스리는 것은 하나의 거창한 해결책이 아니라, 작은 것들의 누적이다. 몸을 움직이는 것. 머릿속의 소음을 밖으로 꺼내는 것. 자연의 기를 빌리는 것. 그리고 충분한 준비 위에서 조용히 앉아보는 것. 이것들이 쌓이면 어느 순간 불안의 크기가 줄어들어 있음을 발견한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다만 감당할 수 있는 크기가 된다.

도덕경 76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堅強者死之徒 柔弱者生之徒. 딱딱하고 강한 것은 죽음의 무리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삶의 무리다. 불안과 정면으로 맞서 이기려는 사람은 오히려 부러진다. 불안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부드럽게 흘려보내는 사람이 살아남는다.

약을 먹어야 하는 사람은 약을 먹어야 한다.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다만, 약 외에도 길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에는 꽤 큰 차이가 있다. 2천 년 전 사람들도 불안했고, 지금 우리도 불안하다. 달라진 것은 불안의 대상이지, 불안 그 자체가 아니다.

장자는 말했다. 至人之用心若鏡 不將不迎 應而不藏. 경지에 이른 사람의 마음 씀은 거울과 같아서, 보내지도 맞이하지도 않으며, 응하되 간직하지 않는다. 불안이 올 때 움켜쥐지 않고, 갈 때 붙잡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이 약 없이 불안을 다스리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도달한 어떤 자리일지도 모른다.


댓글에 인색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