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sdom

좋은 인연과 나쁜 인연 구분하는 법 – 몸과 마음이 알려주는 신호

좋은 인연과 나쁜 인연을 구분하는 가장 확실한 기준은 몸과 마음의 반응이다. 함께 있을 때 편안한가, 아니면 긴장하는가. 이것 하나만으로도 대부분의 답이 나온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정서적 안전감(Emotional Safety)이라 부르고, 도가에서는 자연(自然)이라 부른다. 억지로 만들어지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상태 말이다.

좋은 인연 옆에서는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추측할 필요가 없다. 내가 한 말이 어떻게 해석될지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된다. 정신적 소모가 없다. 내적 에너지가 빠져나가지 않는다. 그냥 함께 있기만 해도 몸이 풀리고 마음이 놓인다. 이것은 노력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도덕경(道德經)에 上善若水라는 구절이 있다.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는 뜻인데,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다. 좋은 인연이 정확히 그렇다. 서로를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거나 의심하거나 추측하느라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나쁜 인연은 정반대다. 상대방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신경이 곤두선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혹시 화가 난 건 아닌지, 내가 뭘 잘못한 건 아닌지 끊임없이 해석하고 추측해야 한다. 서양 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달걀 껍데기 위를 걷는 것(Walking on Eggshells)이라 표현한다. 미국의 저명한 행동분석 전문가 조 나바로(Joe Navarro)는 심리학 저널 Psychology Today에 기고한 글에서, 이런 관계에서는 한 순간 모든 것이 괜찮다가도 아주 사소한 계기 하나로 몇 시간짜리 폭풍이 몰아친다고 서술한 바 있다. 얼음판을 걷는 느낌. 한 발 한 발이 조심스럽고, 언제 깨질지 모르는 불안감이 늘 따라다닌다. 이런 관계에서는 아무리 좋은 의도로 말해도, 아무리 조심해도, 상대방이 내 말꼬투리를 잡고 늘어진다. 어떤 행동도 부정적으로 해석된다.

연인이든 부부든 다투는 것 자체는 정상이다. 세상에 다투지 않는 사이는 없다. 장자(莊子)의 제물론(齊物論)에서는 시비(是非)란 본래 상대적인 것이라 했다. 네가 옳다 하면 내가 그르고, 내가 옳다 하면 네가 그르다. 이것은 사람 사이에서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다툰 뒤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다.

좋은 인연이라면, 다툰 뒤 서로 화해의 실마리를 만든다. 상대방의 체면이 상하지 않도록 배려하면서, 번갈아가며 먼저 고개를 숙인다. 한쪽만 항상 양보하는 게 아니라, 이번에는 내가, 다음에는 네가, 그렇게 쌓이지 않게 한다. 2024년 미국 가트맨연구소(Gottman Institute)의 연구에 따르면, 오래 지속되는 부부 관계의 핵심은 다툼의 빈도가 아니라 회복의 속도와 방식에 있다. 행복한 부부들은 다툰 뒤 평균 5시간 이내에 화해의 신호를 보내는 반면, 이혼에 이르는 부부들은 냉전이 며칠씩 지속되는 패턴을 보인다.

나쁜 인연은 다투면 과거를 끄집어낸다. 이미 끝난 일, 이미 사과받은 일, 이미 넘어간 일을 다시 꺼내서 상대방을 한 번 더 괴롭힌다. 싸운 뒤 바로 해결하지 않고 며칠이고 냉전을 이어간다. 서로 양보하지 않고, 자기 감정만 상대에게 떠넘긴다. 도덕경 81장에 聖人之道 爲而不爭이라 했다. 성인의 도는 행하되 다투지 않는다. 이것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할 것은 하되, 이기려고 하지 말라는 뜻이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할 말은 하되, 이기려고 싸우는 순간 둘 다 진다.

좋은 인연이라면 무엇이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접대 때문에 유흥업소를 가게 됐어도 그것을 솔직히 말할 수 있다. 내가 싫은 건 싫다, 좋은 건 좋다고 편하게 표현할 수 있다. 내가 어떤 식으로 말해도 상대방이 오해하거나 나쁘게 추측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이것이 관계에서의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이다.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의 에이미 에드먼슨(Amy Edmondson) 교수가 조직 연구에서 정립한 이 개념은 사실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된다. 내가 솔직해도 상대가 나를 벌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이것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좋은 인연과 나쁜 인연을 가른다.

나쁜 인연에서는 어떻게 말해도 소용이 없다. 말꼬투리를 물고 늘어지고, 어떤 행위도 부정적으로 해석된다. 좋은 뜻으로 한 말도 악의로 돌아오고, 아무리 설명해도 상대방의 의심이 풀리지 않는다. 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편에 나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안회(顏回)가 위나라로 가겠다고 하자 공자가 말린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상대방이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리 옳은 말도 화를 부를 뿐이라는 것이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나를 믿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어떤 말도 의심의 재료가 될 뿐이다.

좋은 인연은 내가 힘들 때 곁에서 도움을 줄 뿐 아니라, 내가 하는 작은 행동에도 칭찬을 해준다. 잘한 것은 잘했다고 말해주고, 부족한 것은 부드럽게 짚어준다. 그래서 그 사람 곁에 있으면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행복이 저절로 따라온다. 미국 남가주대학교(USC)의 사라 알고(Sara Algoe) 교수팀이 2012년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파트너로부터 감사와 인정을 받는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관계 만족도가 현저히 높을 뿐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자기 효능감(Self-efficacy)도 함께 상승한다. 칭찬이 단순한 기분 좋은 말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뜻이다.

나쁜 인연은 내가 성과를 거둬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운이 좋았겠지, 뒤에 누가 있었겠지, 그런 식으로 깎아내린다. 아무리 잘해줘도 뭘 잘해줬는지 모르고 당연하게 여긴다. 그런 사람과 오래 함께하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내가 쓸모없는 사람인 것 같고, 가치가 없는 것 같고, 삶의 의미를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며든다. 자기 비하에 빠진다. Psychology Today에 기고한 임상심리학자 스티븐 스토스니(Steven Stosny) 박사는 이런 관계에서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분노 조절 장애나 정서적 학대의 가해자가 될 위험이 높다고 경고한 바 있다. 나쁜 인연의 독은 한 세대에서 끝나지 않는다.

반대로 좋은 인연은 내가 불안하거나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느낄 때 용기를 준다. 넌 충분히 훌륭해, 네가 있어서 좋아, 그런 말이 진심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자신감을 되찾게 되고, 다시 일어설 힘이 생긴다. 도덕경 제17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太上 不知有之. 가장 좋은 지도자는 백성들이 그가 있는지조차 모른다. 좋은 인연도 비슷하다. 특별히 무엇을 해준 것 같지 않은데, 그 사람 곁에 있으면 나 자신이 온전해지는 느낌. 억지로 뭔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서로를 살리는 것. 이것이 무위(無爲)의 관계다.

결국 좋은 인연인지 나쁜 인연인지를 판별하는 기준은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다. 그 사람과 함께한 뒤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는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다면 좋은 인연이고, 더 작아져 있다면 나쁜 인연이다. 노자는 知人者智 自知者明이라 했다. 남을 아는 것은 지혜이고, 나를 아는 것은 밝음이다. 어떤 인연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지를 들여다보는 것. 그것이 아마도, 인연을 판별하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정확한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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