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풍이 바르지 못하면 명절은 전쟁이 된다
가풍이 바르지 못하면 명절마다 싸운다. 해마다 명절이 돌아올 때마다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지만, 어떤 집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어떤 집은 고성이 끊이지 않는다. 그 차이는 돈이 아니라 가풍(家風)에 있다. 가풍이란 한 집안에 흐르는 기(氣)의 방향과 같다. 그것이 바르면 사소한 일에도 서로 양보하고, 그것이 어긋나면 밥 한 끼에도 칼을 세운다.

설날이나 추석이 되면 어김없이 뉴스에 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며느리가 명절 음식 준비에 불만을 토하고, 시어머니가 살림 타령을 하고, 남편은 중간에서 터져나간다. 2014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가족 갈등과 대응방안 연구에 따르면, 한국 가정의 갈등 요인 가운데 부부 역할에 대한 견해 차이와 세대 간 소통 단절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돈이 없어서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로의 처지를 헤아리지 않아서 싸우는 것이다.
가풍이 무너진 집의 풍경
어느 집에서 설날 전날, 남편이 사 온 명절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아내가 불만을 터뜨렸다. 친정에서 사람이 오는데 이 정도밖에 준비 못 하느냐는 것이다. 남편은 먹을 수 있으면 됐지 뭐가 문제냐며 받아쳤다. 여기서 끝나면 좋으련만, 시어머니가 나서서 요즘 젊은 사람들은 돈 쓸 줄만 안다고 한마디 얹었고, 며느리는 앞치마를 벗어던지며 그 돈으로 산 것 다 드시면서 무슨 말씀이시냐고 쏘아붙였다. 시아버지까지 가세해서 처음부터 이 결혼을 반대했다고 쐐기를 박았다.
이런 집에는 공통점이 있다. 누구도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모두가 자기 감정을 쏟아내는 데만 급급하다. 이기고 지는 것에만 몰두한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날카로운 말을 한다. 부산광역시교육청 조사에서 2007년부터 집계된 부산 지역 학생 자살 원인 가운데 가정 불화가 30.8%로 1위를 차지한 것은, 이런 가정의 기(氣)가 얼마나 파괴적인지를 숫자로 보여준다.
道德經이 말하는 가정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 18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六親不和 有孝慈 (육친이 화목하지 못하면 비로소 효도와 자애가 나타난다)
이 말은 언뜻 역설처럼 들린다. 가족이 화목하지 않아야 효도가 생긴다니. 그러나 노자의 뜻은 다른 곳에 있다. 진정으로 화목한 집에서는 효도라는 개념 자체가 필요 없다는 것이다. 서로 자연스럽게 배려하고 있으니, 굳이 효도라는 이름을 붙일 이유가 없다. 효도와 자애라는 말이 등장하는 순간, 이미 그 집안은 무너지고 있다는 뜻이다.
도교에서 말하는 무위(無爲)의 이치가 여기에 있다. 억지로 화목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서로의 자리를 존중하는 것. 그것이 바른 가풍이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나뭇잎이 흔들리지 않듯, 가풍이 바른 집에서는 일부러 참거나 일부러 양보할 필요가 없다. 그냥 그렇게 흘러간다.
이어지는 것
문제는 이런 가풍이 대를 이어 전해진다는 데 있다. 심리상담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현상이 있다. 아동기에 부모로부터 정서적 학대를 받은 사람이 부모가 되었을 때, 자기 자녀에게 같은 방식을 재현한다는 것이다. 본인은 절대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상처가 깊을수록 그 패턴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장자(莊子)의 제물론(齊物論)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원숭이에게 도토리를 아침에 셋, 저녁에 넷을 주겠다고 하자 화를 냈고, 아침에 넷, 저녁에 셋을 주겠다고 하자 기뻐했다. 결과는 같은데 순서만 달라졌을 뿐이다. 명절에 싸우는 가족들도 비슷하다. 누가 더 고생했느냐, 누가 더 돈을 썼느냐, 누가 더 양보했느냐. 따지고 보면 모두 한솥밥을 먹는 사이인데, 순서와 체면에 목숨을 건다.
명리학(命理學)에서는 가정의 기운을 볼 때 인성(印星)과 비겁(比劫)의 배치를 본다. 인성이 바르게 자리 잡은 사주는 가정에서 받는 보살핌의 기운이 안정적이라는 뜻이고, 비겁이 과하게 몰린 사주는 형제나 가족 간의 경쟁과 갈등이 두드러진다는 의미다. 물론 사주가 정해져 있다고 해서 운명이 고정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어떤 기(氣)를 물려받았는지를 읽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가풍이라는 것은 사주에도 흔적을 남긴다.
말 한마디의 무게
도덕경(道德經) 81장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信言不美 美言不信 (믿음직한 말은 꾸미지 않고, 꾸민 말은 믿음직하지 않다)
가풍이 바른 집에서 오가는 말은 화려하지 않다. 밥 먹어라, 몸 조심해라, 고생했다. 이런 말들이 전부다. 그런데 가풍이 무너진 집에서는 말이 무기가 된다. 돈도 못 벌면서, 시집을 잘못 왔다, 너 같은 자식은 필요 없다. 한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고, 생긴 상처는 세월이 지나도 흔적을 남긴다.
제주일보에 실린 한 일화가 있다. 갓 시집온 며느리가 밥을 태워 울고 있었다. 남편이 와서 보더니, 내가 물을 적게 길어와서 그렇다며 자기 잘못이라고 했다. 시어머니도 나서서, 내가 늙어서 밥 냄새를 못 맡았으니 내 잘못이라고 감쌌다. 이 이야기에서 누구 하나 상대방을 탓하는 사람이 없다. 잘못을 자기 쪽으로 가져가는 것, 그것이 가풍이 바른 집의 모습이다.
반대로 잘못을 상대에게 떠넘기는 것이 습관이 된 집에서는, 밥 한 그릇이 전쟁의 도화선이 된다.
남겨진 질문
명절은 일 년 중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몇 안 되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결국 그 집안이 어떤 기(氣)를 품고 있느냐의 문제다. 돈이 많으면 싸우지 않을까. 꼭 그렇지도 않다. 재벌가의 형제 분쟁은 수십 년째 법정을 오가고, 가난해도 웃음이 끊이지 않는 집은 있다.
도덕경(道德經) 33장은 이렇게 말한다.
知足者富 (만족할 줄 아는 자가 부유하다)
가풍이라는 것은 결국, 이 집안이 무엇을 부유하다고 여기느냐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