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oist cultivation

빠르게 강해지는 법, 강자와 자주 부딪쳐야 하는 이유

빠르게 강해지는 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자기보다 강한 상대와 자주 부딪치는 것이다. 사람의 능력에는 천장이 있고, 그 천장은 대부분 자기보다 높은 곳에 있는 누군가에 의해 깨진다. 혼자 수련하는 것만으로는 어떤 지점 이상을 넘기 어렵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강함이란 무엇인지를 정리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흔히 착각하는 것이 있다. 강해진다는 것이 더 복잡해지는 것이라는 오해다. 실제로는 정반대다. 진짜 강한 사람은 오히려 단순해 보인다. 복잡한 문제 앞에서 핵심을 꿰뚫어 보는 눈이 있기 때문이다. 얽힌 실타래에서 풀어야 할 한 가닥을 정확히 집어내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다.

이것은 투자의 세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시장에는 매일 수천 개의 뉴스가 쏟아지고, 수백 개의 지표가 움직인다. 초보 투자자는 이 모든 것을 다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온갖 보조지표를 화면에 띄워놓고, 유튜브에서 추천하는 종목을 따라다니고, 남의 포트폴리오를 훔쳐본다. 그런데 25년 넘게 시장을 관찰하면서 만나본 진짜 고수들은 하나같이 단순했다. 자기만의 원칙이 있고, 그 원칙 밖의 소음에는 아예 귀를 닫는다. 워런 버핏이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는 사업에는 투자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온 것이 대표적이다. 버핏이 닷컴 버블 때 IT 주식에 투자하지 않아 한동안 시대에 뒤처졌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버블이 붕괴하자 그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강한 사람이 단순해 보이는 이유는, 그들이 자기가 배운 것과 경험한 것을 하나의 체계로 엮어놓았기 때문이다. 도덕경에서 노자가 말한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이라는 구절이 여기에 딱 맞는다. 만물은 도에서 나왔지만, 도 자체는 하나다. 복잡한 만물의 이치를 꿰뚫으면 결국 하나의 뿌리로 돌아간다. 수행이라는 것을 하면서 강해지는 것이고, 수행은 만물에서 3으로, 3에서 2로, 2에서 1로, 1에서 도로 돌아가는 역행의 과정이다. 수천 가지 변수가 작동하는 시장에서도, 결국 움직이는 것은 돈의 흐름과 사람의 심리라는 두 가지뿐이다. 이것을 체화한 사람에게 세상은 단순하다. 체화하지 못한 사람에게 세상은 끝없이 복잡하다.

그런데 이 체화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기서 두 번째 이야기가 시작된다. 강해지는 데에는 반드시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플로리다주립대학의 심리학자 앤더스 에릭슨(Anders Ericsson)이 1993년에 발표한 연구가 있다. 베를린 음악 아카데미의 바이올리니스트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어 추적한 결과, 최상위 그룹은 20세까지 평균 1만 시간의 의도적 수련(Deliberate Practice)을 거쳤다. 이것이 나중에 말콤 글래드웰의 책을 통해 유명해진 1만 시간 법칙의 뿌리인데, 정작 에릭슨 본인은 이 해석을 싫어했다. 그가 강조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수련의 질이었다. 그냥 반복하는 것과 자기 한계 너머를 의식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완전히 다른 행위라는 뜻이다. 에릭슨은 2016년 저서에서 이렇게 밝혔다. 골프를 30년 넘게 친 사람이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실력이 똑같은 경우는 흔하다고. 시간이 실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불편한 영역을 반복적으로 통과하는 경험이 실력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것을 동양적으로 풀면 장자의 포정해우(庖丁解牛) 이야기가 된다. 소를 잡는 백정 포정이 문혜군 앞에서 소를 해체하는데, 칼이 뼈와 살 사이를 춤추듯 지나간다. 문혜군이 감탄하자 포정이 말한다. 처음에는 소 전체가 보였고, 3년이 지나자 소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그가 본 것은 소의 결이었다. 19년간 수천 마리의 소를 잡으면서도 칼날이 무뎌지지 않은 이유는, 힘으로 자른 것이 아니라 결을 따라 움직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과정의 힘이다. 포정은 어느 날 갑자기 신기를 얻은 것이 아니라, 19년의 세월이 그의 눈과 손에 축적된 것이다.

그러니까 강해지겠다고 마음먹었으면 느리더라도 과정을 받아들여야 한다. 투자에서도 마찬가지다. 첫 해에 큰 수익을 올리는 사람이 가끔 있다. 2020년 코로나 이후 주식시장에 뛰어들어 단기간에 큰 돈을 번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그중 상당수는 2022년 금리 인상기에 그 이상을 잃었다. 시스템 없이 얻은 수익은 시스템 없이 사라진다. 한두 번의 성공은 강함이 아니다. 능력과 인식과 경험이 하나의 체계로 엮이는 시간을 거쳐야 비로소 강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운이 주는 성공과 수행으로 얻은 성공의 차이점이다.

여기서 세 번째 이야기로 넘어간다. 강해지는 것은 결코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제갈량은 융중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스스로를 관중과 악의에 비유할 만큼 뜻은 높았지만, 세상에 나서지 않는 한 그것은 그저 자기 안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207년 유비가 세 번 초려를 찾아왔을 때, 제갈량의 나이는 겨우 스물일곱이었다. 변변한 경력 하나 없는 젊은 서생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위나라 어환이 쓴 위략에 따르면 제갈량이 먼저 유비를 찾아갔다는 기록도 있다는 점이다. 누가 먼저 찾아갔느냐는 역사가들이 여전히 논쟁하는 부분이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다. 제갈량이라는 사람은 유비라는 시스템 안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천하의 기재라 해도 초려에 묻혀 있었으면 그 능력은 발휘될 수 없었다.

사람의 사고 수준은 누구와 대화하느냐에 달려 있다. 책을 읽는 것은 저자와 대화하는 것이고, 배우는 것은 선배와 대화하는 것이고, 토론하는 것은 동료와 대화하는 것이다. 이 외부 입력이 없으면 사람의 인식은 빠르게 고치(繭)가 된다. 자기 생각만 옳다고 여기는 단단한 껍질이 만들어진다.

투자에서 이 현상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자기가 산 종목에 대해 부정적인 뉴스는 무시하고 긍정적인 뉴스만 찾아보는 행동을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라 하는데, 이것은 혼자서는 거의 벗어나기 어렵다. 자기보다 경험이 풍부한 사람, 자기와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과 정기적으로 부딪쳐야 비로소 자기 판단의 사각지대가 드러난다. 거울이 없으면 자기 얼굴을 볼 수 없듯이, 상대가 없으면 자기 실력의 위치를 알 수 없다.

능력이라는 것은 흘러야 가치가 있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말이 있지만, 능력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팀이나 시장이나 환경 속에서 자기 능력을 흐르게 하지 않으면, 그 능력은 없는 것과 같다. 조동할 수 있는 자원의 크기가 곧 그 사람의 크기다. 자기가 가진 것의 크기가 아니라.

도덕경 76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人之生也柔弱 其死也堅強. 사람이 살아 있을 때는 부드럽고, 죽으면 딱딱해진다. 나무도 살아 있을 때는 유연하고, 죽으면 마른다. 딱딱하고 강한 것은 죽음의 무리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삶의 무리다. 강자와 교류한다는 것은 자기를 부드럽게 유지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자기보다 나은 사람 앞에서 기꺼이 배우겠다는 태도, 자기 한계를 인정하고 깨뜨리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그것이 가능하다. 자존심이 높은 사람은 강자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한다. 자기가 부족하다는 것이 드러나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바로 그 불편함을 통과해야만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있다.

에릭슨의 연구에서도 이 점이 확인된다. 의도적 수련의 핵심 조건 중 하나가 자기 현재 능력 바로 위의 난이도에서 훈련하는 것이다. 너무 쉬우면 성장이 없고, 너무 어려우면 좌절만 남는다. 자기보다 약간 위에 있는 상대와 반복적으로 겨루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성장 경로라는 뜻이다.

바둑에서 이것을 지도대국이라 부른다. 프로 기사가 아마추어와 두는 대국인데, 아마추어 입장에서는 이 한 판이 혼자 수백 판 두는 것보다 실력 향상에 효과적이다. 프로의 착점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교과서이기 때문이다.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 이후 바둑계에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났다. AI와 수없이 대국하면서 훈련한 젊은 기사들의 수준이 이전 세대를 압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상대의 수준이 올라가니 자기 수준도 따라 올라간 것이다.

결국 강해진다는 것은 세 가지가 동시에 작동해야 하는 일이다.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꿰뚫는 체계를 만드는 것, 그 체계가 몸에 배도록 과정을 견디는 것, 그리고 자기보다 나은 사람과 부딪치면서 끊임없이 교정하는 것.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빠지면 성장은 멈춘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볼 것이 있다. 강자와 자주 부딪치라는 말이, 강자를 찾아다니라는 뜻은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유비가 제갈량을 찾아간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제갈량이 유비를 찾아간 것일 수도 있다. 누가 먼저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강자와의 만남은 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자기가 그 만남을 감당할 수 있는 그릇을 갖추는 것이 먼저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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