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운이 빠졌을 때 산에 가야 하는 이유 – 도교 수행과 산림욕의 과학
기운이 빠졌을 때, 산에 가야 하는 이유가 있다. 도교에서 말하는 인법지 지법천(人法地 地法天), 즉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는다는 말은 단순한 철학적 수사가 아니라, 몸과 마음이 천지와 연결되어야 비로소 제 기능을 한다는 뜻이다. 현대 과학이 이것을 뒤늦게 증명하고 있다. 일본에서 1982년 농림수산성이 공식적으로 제안한 산림욕(Shinrin-yoku)은 2019년 International Journal of Biometeorology에 발표된 체계적 문헌 고찰에 따르면, 포함된 22개 연구 중 20개에서 숲 환경에 노출된 집단의 코르티솔 수치가 도시 환경 대조군에 비해 유의미하게 낮았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줄어든 것이다. 맥박도 내려가고, 혈압도 내려가고, 부교감신경 활성이 올라갔다. 일본 전역 24개 숲에서 28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현장 실험의 결과다.

나무가 내뿜는 피톤치드(Phytoncide)라는 물질이 있다. 알파피넨, 베타피넨 같은 휘발성 유기 화합물인데, 숲에서 한 시간만 지내도 혈중 피넨 농도가 6배가량 올라간다. 일본 의과대학 이칭(Li Qing)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이 피톤치드는 인체의 자연살해세포(NK Cell) 활성을 유의미하게 높인다. 자연살해세포는 암세포나 바이러스 감염 세포를 제거하는 면역세포다. 주목할 점은 이 효과가 숲을 떠난 뒤에도 7일 이상 지속되었다는 것이다. 도시 관광에서는 이런 변화가 관찰되지 않았다. 나무에서 나오는 기운이 사람의 몸 안에 들어가 면역체계를 바꾼다. 도덕경 제25장의 인법지(人法地)가 혈액검사 수치로 나타난 셈이다.
한국 사람들은 이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서울 관악산은 연간 약 700만 명이 찾는 산이다. 해발 632미터, 경기 5악의 하나로 경복궁에서 바라보면 불꽃 모양이라 하여 풍수에서는 화산(火山)으로 불렸다. 그런데 이 산의 진짜 이야기는 평일 오전에 있다. 주말이면 등산복 차림의 가족 단위 등산객으로 붐비지만, 평일 아침 이른 시간에 관악산 등산로에 서면 풍경이 다르다. 혼자 오르는 중년 남성들이 유독 많다. 실직했거나, 사업이 무너졌거나, 어딘가에서 밀려난 사람들이다. 갈 곳이 없으니 산에 간다. 집에 있으면 미칠 것 같고, 카페에 앉아 있으면 돈이 나가고, 도서관은 눈치가 보인다. 그런데 산은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입장료도 없고, 자격도 필요 없다. 그냥 올라가면 된다. 관악구청은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관악산 산림치유센터를 운영하면서 감정노동자, 경력단절 여성, 나 홀로 등산객을 위한 숲 치유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행정이 뒤늦게 따라간 것이지,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힘들면 산에 가야 한다는 것을.
한국의 명산에서 수도한다는 전통도 같은 맥락이다. 지리산, 계룡산, 태백산 같은 곳에는 예로부터 도를 닦겠다며 들어간 수행자들이 있었다. 그중 상당수는 세상에서 크게 실패하거나 상처받은 사람들이었다. 산에 들어가 수도한다는 말이 때로는 좀 과장되게 들리기도 하지만, 그 핵심은 단순하다. 세상의 소음에서 벗어나 자기 안의 고요를 회복하는 것. 도교 수행에서 이것을 심재(心齋)라 한다. 장자 인간세편에 나오는 말인데, 마음을 비우는 재계다.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으며, 마음으로도 듣지 말고 기(氣)로 들으라는 것이다. 산은 그 심재를 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다. 도시의 소리, 사람들의 시선, 끊임없는 비교와 평가로부터 물리적으로 차단되기 때문이다.
중국 작가 츠쯔젠(迟子建)의 이야기도 비슷하다. 1964년 중국 최북단 헤이룽장성 모허에서 태어난 그녀는 2002년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었다. 아버지도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녀는 고향 다싱안링 원시림 근처로 돌아갔다. 거기서 어원커족 사람들의 삶을 관찰하고, 그들의 슬픔과 기쁨을 들었다. 구름이 모였다 흩어지는 걸 보고, 강물이 멈추지 않고 흐르는 걸 보았다. 꽃이 피었다 지고, 풀이 푸르렀다 마르는 것. 장자가 말한 방생방사 방사방생(方生方死 方死方生), 막 태어나는 것이 곧 죽어가는 것이고 죽어가는 것이 곧 태어나는 것이라는 그 이치를, 숲이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2005년 발표된 소설 어얼구나허 요우안(額爾古納河右岸)은 제7회 마오둔문학상을 수상했다. 개인의 비극을 천지의 순환 속에 놓았을 때, 그것은 더 이상 비극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가 되었다.
도교에서는 이것을 기(氣)의 순환으로 설명한다. 포박자(抱朴子)의 갈홍은 산에 들어가 수련하는 것을 입산(入山)이라 했고, 그것은 단순히 경치를 즐기러 가는 것이 아니라 천지의 기운을 빌려 자신의 기운을 회복하는 행위였다. 현대 한의학에서 말하는 소간리기(疏肝理氣)도 같은 맥락이다. 간은 오행에서 목(木)에 해당하고, 나무의 기운과 통한다. 도시에서 쌓인 울화와 억눌린 감정이 간기(肝氣)를 막으면 온몸이 답답해진다. 숲에 들어가 나무의 기운을 쐬는 것은 막힌 간기를 트는 것과 같다. 실제로 2024년 Frontiers in Psychology에 발표된 연구에서, 29명의 참가자가 이틀간 숲에서 지낸 뒤 부교감신경 활성이 유의미하게 증가하고 코르티솔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몸이 이완되면 막혀 있던 것들이 풀린다. 그래서 숲에 가면 이유 없이 울음이 나오는 사람이 있다. 울어야 할 때 울지 못했던 것들이, 나무 아래서 비로소 터져 나오는 것이다.
꼭 이름난 명산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관악산처럼 지하철역에서 걸어갈 수 있는 산이면 된다. 집 근처 공원의 오래된 나무 한 그루, 아무도 찾지 않는 작은 숲길, 그것이면 된다. 도덕경 제32장에서 노자는 도(道)를 설명하면서 골짜기의 물이 강과 바다로 흐르는 것에 비유했다. 큰 강이든 작은 시내든, 물은 결국 같은 곳으로 간다. 중요한 것은 규모가 아니라 그곳에서 잠시 멈추는 행위 그 자체다. 도교 수행에서 좌망(坐忘)이라는 것이 있다. 장자 대종사편에 나오는 말인데, 앉아서 모든 것을 잊는 것이다. 몸을 떨어뜨리고, 총명함을 버리고, 형체를 떠나 지식을 내려놓아 대도와 하나가 된다. 산에서 하는 일이 결국 그것이다. 도시에서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증명해야 하고, 무너지면 안 되고,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그 갑옷을 벗을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 관악산 정상 연주대(戀主臺)의 이름부터가 그렇다. 고려가 망한 뒤 조선을 받아들이지 못한 유신들이 그곳에 올라 지난 시절을 그리워했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잃어버린 것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안고 산에 오른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있었다.
일본 농림수산성이 산림욕이라는 개념을 만든 것이 1982년이고, 2004년부터는 숲의 치유 효과에 대한 본격적인 과학적 검증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축적된 데이터가 말하는 것은 간단하다. 숲에 가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줄고, 면역력이 올라가고, 마음이 안정된다. 도교의 수행자들이 수천 년 전부터 산에 들어간 이유를, 현대 의학이 코르티솔 수치와 NK세포 활성도라는 숫자로 확인해주고 있는 것이다. 산에 신선이 살아서 가는것이 아니다. 아무도 대신 고통을 받아주지 않는다. 그러나 산은 한 가지를 허락한다.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기 안에 남아 있는 힘을 다시 느끼게 해주는 것. 장자 양생주편의 연진(緣督)이라는 말이 있다. 가운데를 따라 간다는 뜻인데,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고 자연의 흐름을 따르면 몸을 보존하고 삶을 온전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숲은 그 가운데로 돌아가는 길을 알려준다. 그 길 끝에 서 있는 것은 신선도 아니고 깨달음도 아니다. 그냥 자기 자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