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물은 쫓는 것이 아니라 담는 것이다 – 도덕경이 말하는 돈의 흐름
재물은 쫓는 것이 아니라 담는 것이다. 시간, 에너지, 몸, 언어, 내면세계, 생명력 자체가 이미 재물이다. 사람은 재물을 추구하는 존재가 아니라, 재물의 그릇이다.
이 말이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돈이 흘러가는 방향을 오래 관찰하면, 돈은 결국 에너지가 밀집된 곳으로 모인다. 투자 시장에서 25년 넘게 돈의 흐름을 지켜본 입장에서 말하면, 돈은 감정이 없지만 방향은 있다. 그 방향은 언제나 에너지가 응축된 쪽이다.

무언가를 깊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돈이 모이는 현상
워런 버핏(Warren Buffett)은 열한 살에 첫 주식을 샀다. 그의 순자산 중 99%는 50세 이후에 만들어졌다. 버핏이 특별히 영리해서가 아니다. 물론 영리하지만, 핵심은 그게 아니다. 그는 투자를 좋아했다. 좋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복리(Compound Interest)가 그 위에서 작동했을 뿐이다. 그가 자주 쓰는 비유가 있다. 눈덩이를 굴리려면 젖은 눈과 아주 긴 언덕이 필요하다고. 젖은 눈은 좋은 투자를, 긴 언덕은 시간을 뜻한다. 그런데 그 언덕을 끝까지 걸어가려면 좋아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50년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도덕경(道德經) 55장에 含德之厚 比於赤子라는 구절이 있다. 덕을 두텁게 품은 사람은 갓난아이와 같다는 뜻이다. 갓난아이는 뼈가 부드럽고 근육이 연하지만 무언가를 붙잡는 힘이 세다. 정기(精氣)가 지극하기 때문이다. 종일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다. 조화로움이 지극하기 때문이다. 노자가 말하는 이 상태는 결국 온전히 몰입해 있는 상태다. 계산 없이, 전략 없이, 그냥 거기에 있는 상태.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가진 에너지가 바로 이것이다. 그 에너지가 주변의 기(氣)를 끌어당긴다.
좋아하는 것이 없는 사람은 생명력이 마른다. 세상과의 연결이 끊어진다. 기(氣)의 순환이 멈추면 만물은 시든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라 자연의 이치다. 봄에 새순이 돋는 건 나무가 노력해서가 아니라 기가 올라오기 때문이다. 사람도 같다. 무언가를 좋아하면 기가 돈다. 기가 돌면 에너지가 밖으로 뻗는다. 그 에너지가 사람을 모으고, 기회를 모으고, 결국 돈을 모은다.
2009년 픽사가 만든 영화 “업(Up)”의 주인공 칼 프레드릭슨은 아내를 잃고 모든 것에 무관심해진다. 집에 풍선을 달아 날아가는 장면이 유명하지만, 그 이야기의 진짜 핵심은 다시 무언가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삶이 돌아온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살아 있다는 증거이고,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재물의 토대다.
시간을 적으로 돌리는 사람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가 괴롭고 토요일과 일요일만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일주일의 71%를 적으로 돌린 셈이다. 인생의 71%를 싫어하면서 나머지 29%로 행복해지겠다는 건 산술적으로도 맞지 않는다.
도덕경 44장에서 노자는 묻는다. 名與身孰親 身與貨孰多 得與亡孰病. 명예와 몸 중 무엇이 더 소중한가. 몸과 재물 중 무엇이 더 귀한가. 얻음과 잃음 중 무엇이 더 문제인가. 과도히 애착하면 반드시 큰 댓가를 치르고, 무겁게 쌓아두면 반드시 크게 잃는다고 했다. 여기서 핵심은 “知足不辱 知止不殆”, 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것이다.
시간에 대한 태도가 곧 재물에 대한 태도다. 지금 이 순간의 시간을 미워하는 사람은 지금 손에 들어온 돈도 미워한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현재를 부정하는 에너지는 현재 가진 것도 밀어낸다. 투자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 가진 종목을 늘 불안하게 바라보는 사람은 결국 최악의 타이밍에 팔고 만다. 반대로 자기 시간과 자기 선택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시장이 흔들려도 버틴다. 버핏이 버크셔 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 포트폴리오의 일부 종목을 30년 가까이 보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시간을 친구로 삼은 것이다.
장자(莊子)는 소요유(逍遙遊)편에서 이것을 더 극단적으로 말한다. 큰 붕새가 구만리를 날아가는 것을 매미와 비둘기가 비웃는다. 매미는 나뭇가지에서 나뭇가지로 옮기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자기 시간의 크기가 곧 자기 세계의 크기다. 시간을 적으로 돌리는 것은 자기 세계를 매미 크기로 줄이는 것과 같다.
나눔이 만드는 기의 순환
가진 것을 나누면 줄어드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자기가 잘하는 것, 자기가 알게 된 것을 꾸준히 나누는 사람에게는 특이한 현상이 생긴다. 더 많은 사람이 모이고, 더 많은 기회가 열린다.
이것을 현대적으로 설명하면 “가치의 선순환(Virtuous Cycle)”이다. 콘텐츠 시대에 이 현상은 더 극명해졌다. 유튜브에서 요리를 가르치는 사람이 있다. 처음에는 아무도 보지 않는다. 그런데 100개, 200개 영상을 올리면 반드시 누군가가 모인다. 그 사람이 요리를 유난히 잘해서가 아닐 수 있다. 다만 꾸준히 나눴기 때문이다. 나눔이 쌓이면 신뢰가 되고, 신뢰가 쌓이면 권위가 된다. 이것이 결국 돈이 된다.
도덕경 81장의 마지막 구절이 이것을 정확하게 말한다. 聖人不積 既以爲人己愈有 既以與人己愈多. 성인은 쌓아두지 않는다. 남을 위할수록 자신이 더 풍족해지고, 남에게 줄수록 자신이 더 많아진다. 이것은 도덕적 교훈이 아니다. 기(氣)의 원리다. 기는 고이면 썩고, 흐르면 살아난다. 재물도 같다. 움켜쥐면 정체되고, 흘려보내면 돌아온다.
워런 버핏은 2006년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기부하겠다고 선언했고, 실제로 지금까지 1,110억 달러 이상을 내놓았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나눈 이후에도 순자산이 계속 늘었다는 점이다. 기부한 금액을 합산하면 약 2,170억 달러에 달한다. 나눔이 그를 가난하게 만들지 않았다. 물론 이것은 투자 수익률이라는 현실적 이유가 있지만, 흐름을 막지 않은 결과이기도 하다.
분야를 불문하고 자기가 아는 것을 꾸준히 나누는 사람은 결국 그 분야의 중심이 된다. 나누는 행위 자체가 자기 확신을 단단하게 만들고, 확신이 단단한 사람에게 사람들은 모인다. 완벽할 필요 없다. 정교할 필요도 없다. 다만 진짜여야 한다. 가짜는 기(氣)가 통하지 않는다.
이 세 가지를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좋아하면 기가 돌고, 기가 돌면 시간이 편해지고, 시간이 편해지면 나눌 여유가 생기고, 나누면 기가 더 크게 돈다. 순환이다. 도덕경이 말하는 도(道)의 작동 방식 그 자체다.
다만, 이것이 작동하는 전제가 있다. 이 순환은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하면 작동하지 않는다. 결과를 미리 정해놓고 원인을 조작하는 것은 무위(無爲)의 정반대다. 有爲다. 억지다. 억지로 좋아하는 척, 억지로 나누는 척은 오래가지 못한다. 기는 거짓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구별해낸다.
노자가 도법자연(道法自然)이라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도는 자연을 따른다. 자연은 꾸미지 않는다. 꾸미지 않는데도 봄이 오면 꽃이 피고, 가을이 오면 열매가 맺힌다. 재물도 그런 것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