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양명이 남긴 세 마디 처세 명언, 500년이 지나도 유효한 이유
왕양명이 평생에 걸쳐 남긴 세 마디가 있다. 뜻을 마음에 감추라(志藏於心), 말과 행동을 삼가라(謹言慎行), 말이 느린 자가 귀하다(言慢者貴). 500년 전 명나라 중기에 나온 이 말들은 지금 읽어도 낡지 않았다. 오히려 SNS에서 모든 것이 즉각 노출되는 시대에 더 날카롭게 다가온다.

왕양명, 본명 왕수인(王守仁, 1472~1529)은 명나라의 관료이자 사상가이자 군사 전략가였다. 그는 17세에 결혼식 당일 집을 빠져나와 도교 사원 철주궁(鐵柱宮)에서 도사와 밤새 양생설을 논하다 가족들에게 발견된 사람이다. 대나무를 7일간 쳐다보며 사물의 이치를 뚫어보겠다고 격물(格物)을 시도했다가 몸져누운 사람이기도 하다. 임협, 기사, 사장, 신선술, 불교까지 닥치는 대로 빠졌다가 결국 자신만의 체계를 세운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남긴 처세의 말이니, 서재에서 나온 이론이 아니라 삶에서 깎여 나온 뼈다.
첫째, 志藏於心. 뜻은 마음에 감춘다. 이것은 단순히 겸손하라는 뜻이 아니다. 왕양명은 35세에 환관 유근(劉瑾)의 전횡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곤장 40대를 맞고 엉덩이가 찢어지고 허벅지 뼈가 부러졌다. 기절과 의식을 반복하는 상태로 옥에 갇혔고, 그래도 살아남자 귀주(貴州) 용장(龍場)이라는 변방 오지로 유배되었다. 유배 가는 길에는 유근이 보낸 자객에게 쫓기기까지 했다. 그가 용장에서 맞닥뜨린 것은 말도 통하지 않는 이민족 사회, 풍토병, 그리고 죽음의 그림자였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서 그의 사상이 태어났다. 성인의 도란 내 마음에 충분히 갖추어져 있으며, 이전에 사물의 이치를 바깥에서 구하려 했던 것은 잘못이었다. 이것이 이른바 용장오도(龍場悟道)다. 뜻을 마음에 감추라는 것은, 그러니까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기도 했다. 뜻을 밖으로 드러내면 꺾인다. 환관의 칼에, 정적의 모함에, 세상의 무관심에. 그래서 감춘다. 감추되 잃지 않는다.
노자(老子)는 도덕경에서 大音希聲 大象無形이라 했다. 큰 소리는 들리지 않고, 큰 형상은 보이지 않는다. 왕양명이 주자학(朱子學)의 격물궁리(格物窮理) 대신 심즉리(心卽理)를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치는 바깥 사물에 있지 않고 이미 내 안에 있다. 안에 있는 것을 굳이 밖으로 꺼내 보여줄 필요가 없다. 도덕경의 致虛極 守靜篤, 비움을 극진히 하고 고요함을 돈독히 지킨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뜻을 감추는 것은 뜻이 없는 것과 다르다. 오히려 뜻이 깊을수록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요즘 말로 하면, 진짜 실력 있는 사람은 자기 PR에 힘을 쏟지 않는다. 일이 자신을 증명하게 둔다. 왕양명 자신이 그랬다. 유배에서 풀려난 후 그는 영왕(寧王) 주신호의 반란을 불과 35일 만에 진압했다. 정규군도 아닌 민병으로. 뜻을 감추고 있던 사람이 움직이면 그렇게 된다.
둘째, 謹言慎行. 말과 행동을 삼간다. 왕양명 심학(心學)의 핵심은 지행합일(知行合一)이다. 앎과 행함이 둘이 아니라는 것. 이 원리를 뒤집어 보면,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은 곧 마음이 함부로인 것이고, 행동이 경솔한 것은 앎이 얕은 것이다. 말과 행동을 삼가라는 것은 결국 마음을 바로 하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전습록(傳習錄)에 나오는 유명한 대목이 있다. 산속의 꽃을 보지 않았을 때 꽃과 내 마음은 모두 고요했다, 그런데 꽃을 보는 순간 꽃의 모습이 일시에 드러났다. 마음이 대상과 만나는 그 순간에 앎이 성립한다. 그러니 말 한마디를 내뱉기 전에, 그 말이 내 마음의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살펴야 한다. 분노에서 나오는 말인지, 양지(良知)에서 나오는 말인지. 살아보면 안다. 한마디 말이 10년 관계를 끊기도 하고, 침묵 한번이 위기를 넘기기도 한다. 투자에서도 마찬가지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퍼뜨리는 것은 말을 삼가지 않은 것이고, 시장의 소문에 즉각 반응하는 것은 행동을 삼가지 않은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때 워런 버핏(Warren Buffett)이 한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이 두려워할 때 탐욕스러워지고, 다른 사람이 탐욕스러울 때 두려워하라. 이것은 결국 謹言慎行의 투자 버전이다. 시장이 공포에 빠졌을 때 함께 소리치지 않고, 시장이 환호할 때 함께 뛰지 않는 것. 그것이 삼감이다.
셋째, 言慢者貴. 말이 느린 자가 귀하다. 노자는 輕諾必寡信 多易必多難이라 했다. 가벼이 약속하면 반드시 신의가 적어지고, 쉽게 여기면 반드시 어려움이 많아진다. 말이 빠른 것은 생각이 빠른 것이 아니라 생각이 얕은 것이다. 왕양명은 靜處體悟 事上磨鍊이라 했다. 고요한 곳에서 깨닫고, 일 위에서 갈고 닦는다. 느린 말은 고요한 마음의 바깥 표현이다. 마음이 고요해야 생각이 깊고, 생각이 깊어야 말에 무게가 실린다. 1529년, 왕양명은 광시(廣西) 토벌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강서(江西) 남안(南安)에서 숨을 거뒀다. 제자가 유언을 물었을 때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此心光明 亦復何言이었다. 이 마음이 밝으니, 또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평생 말을 삼가고 느리게 한 사람의 마지막 한마디가 그것이었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세 마디를 관통하는 것은 결국 하나다. 마음이다. 뜻을 감추는 것도 마음의 일이고, 말과 행동을 삼가는 것도 마음의 일이고, 느리게 말하는 것도 마음의 일이다. 왕양명은 마음 밖에 이치가 없다(心外無理)고 했다. 처세의 기술도 마음 밖에 있지 않다. 세상을 잘 살아내는 법은 세상을 향한 것이 아니라 자기 안을 향한 것이다. 다만 이것을 아는 것과 사는 것은 다르다. 왕양명 자신도 백번 죽을 고비와 천번의 어려움, 이른바 百死千難을 거친 끝에야 이 세 마디에 도달했다. 500년이 지난 지금, 우리 각자의 용장(龍場)이 어디인지는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