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창귀 같은 친척을 멀리해야 하는 이유
설이 멀지 않았다. 즐거워야 할 설이나 추석같은 명절은 어느순간부터 피하고 싶어진다. 그 이유는
설날이면 어김없이 피가 섞였다는 이유만으로 한자리에 모이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친척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으니 만나야 하고, 만났으니 안부를 나눠야 하고, 안부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남의 속사정까지 훤히 들여다보게 된다. 문제는 그 자리에 창귀(倀鬼) 같은 사람이 끼어 있을 때 시작된다.

창귀는 동아시아 전설에 등장하는 귀신인데,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사람의 영혼이 원래 자기를 잡아먹은 호랑이에게 복수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호랑이의 앞잡이가 되어 다른 사람을 호랑이 앞으로 끌고 가는 존재다. 명나라 도목(都穆)이 쓴 청우기담(聽雨記談)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창귀는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자의 영혼으로, 감히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고 오직 호랑이의 종이 된다고. 자기가 당한 일을 다른 사람에게도 겪게 만드는 것이 창귀의 본질이다. (창귀관련해서는 네이버의 웹툰도 있었던것으로 기억하는데) 위호작창(爲虎作倀)이라는 고사성어가 여기서 나왔는데, 악인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사람을 빗대는 말이다.
사람 사이에서도 이런 구조는 그대로 되풀이된다. 자기 삶이 잘 풀리지 않는 사람이 남의 잘됨을 견디지 못하는 것, 그것이 사람 세상의 창귀다. 이 창귀의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자기가 잘 안 되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남도 잘 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합쳐지면 묘한 일이 벌어진다. 겉으로는 걱정하는 척, 안부를 묻는 척, 조언하는 척 하면서 속으로는 상대방의 약점을 찾고, 흠을 캐고, 작은 실수를 키워서 소문으로 퍼뜨린다.
2025년 말 한국의 한 여론조사 기관이 실시한 인간관계 인식조사에 따르면, 가족 관계 만족도는 85퍼센트, 친구나 지인 관계 만족도는 80퍼센트인 데 반해, 친척 관계 만족도는 65퍼센트에 그쳤다. 피를 나눈 사이임에도 내가 스스로 선택한 친구보다 만족도가 낮다는 것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같은 조사에서 인간관계 갈등이 생겼을 때 가장 많이 택하는 방법이 자연스럽게 거리를 둔다는 응답이 37퍼센트로 1위였고, 직접 대화로 해결한다는 응답은 16.8퍼센트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어떤 관계는 붙잡을수록 나를 갉아먹는다는 것을.
설날에 특히 조심해야 할 유형이 몇 가지 있다. 부부싸움을 했을 때 친척에게 달려가 하소연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부부 사이의 일은 부부 사이에서 끝나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제삼자가 끼어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정보를 얻은 쪽은 위로하는 척하면서 사실에 자기 해석을 보태고, 그 해석에 또 자기 감정을 실어서 주변에 흘린다. 작은 다툼이 큰 사건이 되고,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된다. 호랑이 앞에 먹잇감을 끌고 가는 창귀가 바로 이런 식으로 작동한다.
또 하나는 형편이 어려운 친척을 위해 나서는 경우다. 선의로 돈을 빌려주거나, 자기 인맥을 동원해 일자리를 알아봐주거나, 사업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다. 문제는 그 도움을 받은 쪽이 나중에 도와준 사람 뒤에서 깎아내리는 일이 드물지 않다는 것이다. 은혜를 갚기는커녕 그 은혜가 자기에게 빚이 되니까, 그 빚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오히려 상대를 폄하한다. 도움을 준 사람이 대단한 게 아니라 자기도 원래 그 정도는 할 수 있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뒤집는다. 도덕경 81장에 聖人不積 旣以爲人己愈有 旣以與人己愈多라는 구절이 있다. 성인은 쌓아두지 않고, 남을 위할수록 자기에게 더 많아지고, 남에게 줄수록 자기가 더 풍요로워진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것은 받는 쪽도 그 기(氣)의 순환을 이해할 때 성립하는 이치다. 받기만 하고 갚을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베풀어도 기가 돌지 않는다.
노자는 도덕경 9장에서 持而盈之 不如其已라고 했다. 그릇에 물을 가득 채우면 넘치기 마련이니, 차라리 적당한 때 멈추는 것이 낫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재물이나 권력에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가득 채우려 하면 넘치고, 넘치면 주변이 젖는다. 명절에 만난 친척 앞에서 올해 사업이 잘됐다, 아이가 좋은 대학에 갔다, 집을 새로 샀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순간 그 물은 넘쳐흐르기 시작한다. 듣는 쪽의 형편이 좋지 않을수록 그 넘친 물은 독이 된다. 실의에 빠진 사람 앞에서 자랑하지 말라는 것은 단순한 예의가 아니라 생존의 기술이다.
보건복지부가 2024년에 발표한 국민 정신건강 조사에 따르면, 심각한 스트레스를 경험한 비율이 2022년 36퍼센트에서 2024년 46.3퍼센트로 10퍼센트포인트 이상 뛰었다. 수일간 지속되는 우울감을 느낀 비율도 같은 기간 30퍼센트에서 40.2퍼센트로 급증했다. 사람들의 마음이 그만큼 여유가 없어졌다는 뜻이다. 여유가 없는 사람은 남의 좋은 소식을 축하할 심리적 공간이 없다. 그 빈자리를 시기와 질투가 채운다.
장자(莊子) 산목편에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빈 배가 떠내려와 내 배에 부딪치면 아무도 화를 내지 않는다. 그런데 그 배에 사람이 타고 있으면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한다. 배가 부딪친 것은 같은데 화의 크기가 다르다. 사람이 타고 있다는 사실 하나가 분노의 원인이 된다. 친척 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도 비슷한 구조다. 상대가 나보다 잘 산다는 사실, 그 하나가 모든 감정의 원인이 된다. 상대가 무슨 말을 했느냐, 무슨 행동을 했느냐는 사실 부차적인 문제다. 근본적으로는 나와 상대의 형편 차이가 만들어낸 감정이 모든 말과 행동에 색을 입힌다.
그렇기 때문에 명절에 친척을 만날 때는 몇 가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자기 이야기를 줄이는 것이 첫째다. 잘되고 있어도 잘되고 있다고 말할 필요가 없다. 어려워도 어렵다고 하소연할 필요가 없다. 둘째는 남의 일에 함부로 나서지 않는 것이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한 발짝 물러서서 생각해야 한다. 그 도움이 돌아왔을 때 나를 해치는 칼이 될 수 있다. 셋째는 진짜 가까운 사람이 누구인지 가려내는 것이다. 피가 섞였다고 다 가족인 것은 아니고, 남이라고 다 먼 사이인 것도 아니다.
도덕경 20장에 衆人熙熙 如享太牢 如春登臺 我獨泊兮其未兆라는 구절이 있다. 모든 사람들이 잔치를 즐기듯 들떠 있는데, 나 홀로 고요하여 아직 조짐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설날의 떠들썩한 자리에서 홀로 고요할 수 있는 사람이 결국 화를 피한다. 대부분의 친척 관계는 허(虛)한 것이다. 억지로 마음을 쏟아 유지하느니 흐름에 맡기는 편이 낫다. 그 흐름이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쪽이라면, 그것이 그 관계의 본래 자리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