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40 넘으면 가족과의 인과 얽힘을 멈춰야 하는 이유
나이 마흔을 넘기면, 가족과의 인과 얽힘을 멈춰야 한다. 이것은 냉정한 말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따뜻한 깨달음에 가깝다. 도덕경(道德經)에 道常無爲而無不爲라는 구절이 있다. 도는 늘 억지로 하지 않되, 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가족 사이의 관계도 이와 다르지 않다. 억지로 끌고 가려 하면 오히려 모든 것이 어긋나고, 자연스러움에 맡기면 제자리를 찾는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마흔이 되어서도, 쉰이 되어서도, 이 단순한 이치를 몸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4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45세에서 64세 사이 중년 가운데 12.5%가 가족 돌봄 부담과 노후 미준비라는 이중 과제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40대 중후반에서 이 비율이 가장 높았다. 부모를 모시면서 자녀를 뒷바라지하고, 정작 자신의 노후는 손도 대지 못하는 세대. 이른바 샌드위치 세대(Sandwich Generation)라 불리는 이들의 실상이다. 신중년 조사에서는 40%가 소득 부족으로, 29.7%가 가족 부양으로 노후 준비를 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자녀에게 학비를 대주고, 성인이 된 자녀의 생활비까지 보조하면서, 동시에 연로한 부모의 병원비를 감당한다. 그러면서도 본인의 노후에 자녀가 경제적으로 부양해야 한다는 물음에는 고작 12.8%만 동의했다. 자기는 끝까지 퍼주면서 자기 차례가 오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것이 사랑인가, 아니면 일종의 집착인가.
동양 철학에서 말하는 기(氣)의 흐름을 생각해보면, 모든 관계에는 고유한 순환이 있다. 부모에게는 부모의 기운이 흐르고, 자녀에게는 자녀의 기운이 흐른다.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다른 사람의 기운을 대신 돌려줄 수는 없다. 명리학(命理學)에서 보면,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이미 자기만의 사주(四柱)를 갖고 온다. 부모의 팔자가 자녀의 팔자를 결정하지 않고, 자녀의 팔자가 부모의 팔자를 바꾸지도 않는다. 각자 타고난 그릇이 있고, 그 그릇에 담기는 물의 양도 정해져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내 자식이 고생하면 내가 대신 짊어지겠다고 나선다. 부모가 아프면 내 건강을 갈아 넣어서라도 낫게 하겠다고 덤빈다. 그 마음이야 누가 모르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해서 실제로 달라지는 것은 거의 없다. 대신 자기 자신만 소진된다.
파이낸셜뉴스가 2025년 보도한 기사를 보면, 미혼 35세에서 39세 가운데 41.8%가 여전히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25세에서 29세는 57%다. X세대 부모들은 자녀를 위해 자신의 노후를 담보로 잡았다는 표현이 나온다. 끝까지 도와야 할까, 아니면 지속 가능하게 도와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에 선뜻 답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부모는 이미 답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놓아야 한다는 것을. 다만 손이 떨어지지 않을 뿐이다.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에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크기가 몇 천 리인지 알 수 없는 물고기 곤(鯤)이 변하여 새 붕(鵬)이 된다. 붕은 구만리 하늘을 날아오른다. 그때 땅 위의 매미와 비둘기가 비웃는다. 우리는 나무 위까지만 날아도 충분한데, 저 새는 왜 그렇게 높이 올라가느냐고. 장자가 말하고자 한 것은 단순하다. 각자의 세계가 다르다는 것이다. 매미는 매미의 세계가 있고, 붕은 붕의 세계가 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아무리 자녀의 삶을 설계해줘도, 결국 자녀는 자기 크기만큼의 하늘을 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자녀가 부모의 노년을 아무리 편하게 만들어줘도, 부모는 자기 몫의 쇠락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슬픈 이야기가 아니다. 그냥 그런 것이다.
일본에서는 8050문제라는 용어가 있다. 80대 부모가 50대 자녀를 부양하는 현상을 말한다. 일본 내각부 조사에 따르면,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가운데 40대 이상이 61만명을 넘겼다. 이들의 부모는 대부분 70대에서 80대다. 부모가 죽으면 이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아무도 답하지 못한다. 한국도 이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다. 캥거루족 자녀가 있는 신중년이 39.1%에 달한다는 통계가 이미 나와 있다. 부모가 무한정 자녀를 품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어쩌면 서로를 가두는 감옥이 될 수도 있다.
도덕경 제10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낳되 소유하지 않고, 이루되 기대지 않으며, 기르되 다스리지 않는다. 2500년 전 노자가 말한 이 구절이, 지금 이 시대의 중년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 아닐까 싶다. 자녀를 낳았다고 해서 소유한 것이 아니고, 부모를 모신다고 해서 그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적당히 돕되 대신 짊어지지 않는 것. 곁에 있되 끌려 다니지 않는 것. 이것이 정(情)을 끊는 것이 아니라 정을 온전하게 지키는 방법이다.
사실 이 문제는 돈의 문제이기도 하다. 2024년 국민노후보장패널조사에 따르면, 50세 이상이 생각하는 부부 기준 적정 노후 생활비는 월 298만원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 금액을 안정적으로 확보한 중년은 소수에 불과하다. 가족 돌봄 부담이 있으면서 노후 준비가 안 된 사람의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소득 하위 계층과 실업 상태에 있는 40대였다. 자기 밥그릇도 채우지 못하면서 남의 밥그릇까지 채우려 하면, 결국 모두가 굶는다. 이것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산수의 문제다.
억지로 짊어진 짐은 결국 무너진다. 내가 무너지면 내가 지키려 했던 사람들까지 함께 무너진다. 그러니 마흔이 넘었으면, 이제 슬슬 각자의 몫을 돌려줄 때가 되었다. 부모에게는 부모의 인과가 있고, 자녀에게는 자녀의 인과가 있다. 내 것이 아닌 인과를 끌어안고 반평생을 보내는 것은 헌신이 아니라 월권이다. 도(道)는 만물을 기르되 다스리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의 사랑도, 어쩌면 그것과 같은 모양일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