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sdom

인과응보의 진리: 선과 악이 가져오는 결과

어느 사당 입구에 이런 글귀가 있었다. “이승에서 선을 쌓든 악을 짓든 네 마음이지만, 저승의 벌은 누구 하나 피해간 적 없다.” 읽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태상감응편에 이런 구절이 있다. 화와 복에는 정해진 문이 없고, 오직 사람이 스스로 부를 뿐이다. 선악의 갚음은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듯 한다. 마음에 선한 생각이 일어나면 아직 행하지 않았어도 길신이 이미 따르고, 마음에 악한 생각이 일어나면 아직 행하지 않았어도 흉신이 이미 따른다. 인과응보는 하늘과 땅의 이치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착한 사람이 고생하고 악한 사람이 잘 사는 경우를 흔히 본다. 이건 어떻게 된 일인가. 하늘이 졸고 있는 건가.

아니다. 우리가 보는 건 겉모습일 뿐이다.

갚음이 없어 보이는 건 너무 가까이서 보기 때문이다. 원인에서 결과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나지만, 뿌린 날 바로 거두는 법은 없다. 1997년 외환위기 때 부도난 기업들 중에는 1980년대에 심은 씨앗이 15년 만에 터진 경우가 수두룩했다. 대우그룹의 무리한 차입경영은 호황기에는 성장동력이었지만, 결국 그 빚이 그룹 전체를 집어삼켰다.

갚음이 없어 보이는 건 너무 좁게 보기 때문이다. 사람은 혼자 사는 게 아니다. 내가 원한을 사면 그 화살이 내 부모나 자식에게 날아갈 수 있고, 내가 베푼 은혜가 내 가족에게 돌아오기도 한다. 주역에서 말하는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 적불선지가 필유여앙(積不善之家 必有餘殃)이 바로 이것이다. 조선시대 명문가들이 대를 이어 번성한 것도, 어느 날 갑자기 몰락한 것도 한 세대의 일이 아니었다.

갚음이 없어 보이는 건 너무 단순하게 보기 때문이다. 세상에 순수한 선인도 순수한 악인도 없다. 모든 사람이 선과 악을 섞어가며 살고, 그 결과도 뒤섞여 나타난다. 저울이 어느 쪽으로 기우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갚음이 없어 보이는 건 너무 얕게 보기 때문이다. 선한 마음은 열려 있고 따뜻하고 바르다. 악한 마음은 닫혀 있고 차갑고 비틀려 있다. 떳떳한 사람은 한밤중에 문 두드리는 소리에도 놀라지 않는다. 선한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편안하고 관계가 따뜻하다. 악한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의심 속에서 불안하게 산다. 삶의 질이 이미 다르다. 수명이나 재산으로만 갚음을 따질 일이 아니다.

덕(德)은 수양이라기보다 지혜다. 선(善)은 품성이라기보다 영리함이다. 쌓은 덕은 사람이 몰라도 하늘이 안다. 선악에는 숨기가 없다.

노자 79장에 이런 말이 있다. 천도무친 상여선인(天道無親 常與善人). 하늘의 도는 친함이 없으나 늘 선한 사람과 함께한다. 하늘이 만물을 차별 없이 대하기 때문에, 그 넓은 도에 맞는 것은 결국 선뿐이라는 뜻이다.

맹자는 말했다. 득도다조 실도과조(得道多助 失道寡助). 도를 얻으면 돕는 이가 많고, 도를 잃으면 돕는 이가 적다. 여기서 도는 덕이고 선이고 인의다. 이런 사람은 마음이 넓고 기운이 평온하고 행동이 바르다. 사람들이 믿고 따르는 건 당연한 일이다.

관중도 비슷한 말을 했다. 선인자 인역선지(善人者 人亦善之). 남을 선하게 대하면 남도 나를 선하게 대한다. 사람 마음은 거울과 같아서, 내가 먼저 비추는 대로 돌아온다.

그래서 군자의 으뜸은 남과 더불어 선해지는 것이라 했다. 여인위선(與人爲善). 이것이 군자다. 복잡할 것 없다.

한 가지 더 생각할 것이 있다. 선한 원인을 쌓으면 선한 결과를 얻는다. 그래서 행선(行善)은 늘 적덕(積德)과 붙어 다닌다. 눈앞의 이익만 보는 사람과 멀리 보는 사람의 차이가 여기서 갈린다.

눈이 좁으면 길이 좁아지고, 눈이 넓으면 길이 넓어진다. 크고 작음이 한 생각에 달려 있고, 어디로 갈지는 무엇을 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복이 아직 오지 않았더라도 화는 이미 멀어졌다. 복은 늦게 올수록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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