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로봇 시대의 인간 존재 의미
일론 머스크가 최근 보편적 고소득(Universal High Income)을 이야기했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모든 것을 대체하면 사람들은 일하지 않아도 되고, 상품 가격은 거의 무료에 가까워지며, 모든 필요가 충족되는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이 80% 확률로 실현될 것이라 했고, 20년 안에 대부분의 일자리가 선택 사항이 될 것이라 했다.

흥미로운 예측이다. 그런데 머스크 본인도 인정한 부분이 있다. 그 미래에서 진짜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의미(meaning)라고. 컴퓨터와 로봇이 당신보다 모든 것을 더 잘한다면, 당신의 삶에 의미가 있는가? 그게 진짜 질문이 될 것이라고.
여기서 신경과학이 말해주는 불편한 사실이 있다. 인간의 뇌에서 도파민은 보상을 받을 때가 아니라 보상을 기대할 때 분비된다. 스탠퍼드의 로버트 사폴스키 교수가 수행한 실험에서, 원숭이가 신호를 보고 보상을 기다리는 순간에 도파민이 치솟았다. 정작 음식을 받는 순간에는 도파민 수치가 이미 내려가 있었다. 더 흥미로운 것은, 보상의 확률이 50%일 때 도파민 분비가 가장 높았다는 점이다. 확실한 보상보다 불확실한 보상이 더 강렬한 쾌감을 만든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해보라. 당신이 갖고 싶은 것이 있다. 돈을 모으고, 고민하고, 마침내 산다. 사는 순간은 기쁘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면, 혹은 몇 달이 지나면, 그것은 그냥 거기 있는 물건이 된다. 휴대폰이든, 자동차든, 심지어 연인이든, 소유하는 순간 그 대상은 더 이상 도파민의 원천이 아니다. 뇌의 보상 시스템은 획득이 아니라 추구에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게임을 예로 들어보자. 당신에게 무한한 돈과 무한한 생명이 주어진다. 처음 몇 시간은 재미있을 것이다. 그 다음은? 게임의 본질적 쾌감은 적절한 난이도의 도전을 돌파하는 순간에 있다. 도전이 없으면 돌파도 없고, 돌파가 없으면 쾌감도 없다. 모든 것을 쉽게 얻을 수 있다면, 보상 시스템은 작동을 멈추거나, 도대체 왜 기뻐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에 빠진다. 이것을 신경과학에서는 무쾌감증(anhedonia)이라 부른다.
직업의 문제는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다. 심리학자 마리 야호다는 1930년대 대공황 시기에 오스트리아의 한 마을을 연구했다. 실업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경제적 궁핍만이 아니었다. 일은 시간 구조를 제공하고, 가족 바깥의 사회적 관계를 만들고, 개인을 초월하는 목표에 연결시키고, 지위와 정체성의 핵심 요소를 정의한다. 실업의 심리적 손상은 수입 감소보다 이런 잠재적 기능의 상실에서 온다.
미국심리학회의 연구에 따르면, 일을 잃은 사람들은 혈압 상승, 면역세포 감소, 심장질환 증상 악화를 경험한다. 이것은 재정적 스트레스와 별개로 나타난다. 직업이 주는 것은 월급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적 지위, 하루의 구조, 타인과의 연결, 삶의 목적과 의미. 영국 리버풀 대학의 피터 킨더만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고용은 자기 이미지의 강력한 부분이며, 그 정체성의 상실은 압도적이라고.
의사, 변호사, 교사, 엔지니어. 당신이 무슨 일을 하든, 그 역할을 수행하기에 가치감과 존재감이 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에, 거짓이라 해도 답을 준다. 나는 가치 있다는 안정감을 준다. 나는 언제 무엇을 해야 한다는 목표를 준다. 사람들은 바쁠 때 쉬고 싶어 한다. 그런데 6개월만 쉬어보라. 많은 사람들이 폐인처럼 된다. 목표 없음이 주는 고통은 과로가 주는 고통과 질적으로 다르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시기, 수천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대공황 시기부터 알고 있던 것을 다시 확인했다. 비자발적 실업은 무력감, 자기의심, 불안, 우울, 낮은 자존감을 유발한다. 이것은 단순히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존재의 의미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공짜가 된다고 가정해보자. 집, 음식, 의료, 교통, 원하는 모든 것. 머스크의 말대로 지속 가능한 풍요의 시대. 그런데 당신은 무엇을 하는가? 아침에 왜 일어나는가? 누군가를 만났을 때 자기소개를 어떻게 하는가? 예전에는 저는 무슨 일을 합니다라고 했다. 이제는? 저는 아무것도 안 합니다?
노력할 필요가 없다면, 도전이 없다면, 추구할 목표가 없다면, 인간의 보상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는다. 쾌감이 없다. 의미가 없다. 오히려 초조하고 공허해진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상황에서도 괜찮은가.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 자체에서 기쁨을 찾는 사람들이다. 수행자라면, 더 나은 자기라는 방향이 있기에 길을 잃지 않는다. 그게 아니라면, 풍요가 반드시 복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