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 돼지가 되어 빚을 갚다
절강성 태주 선거현에 쌍묘사라는 절이 있다. 송나라 때는 보적사라고 불렸다. 후세에는 명찰로 이름을 날렸지만, 송나라 때 막 세워진 작은 절이었으니 다른 큰 절들의 명성에는 비할 바가 못 되었다. 절이 세워진 뒤, 주지 원오 스님은 경수라는 젊은 승려에게 절 안 잡무를 맡겼다. 이른바 잡무란 의식주에 필요한 물건을 사들이는 일 따위로, 돈을 다루는 일이 잦았고 속세 사람들과 접촉할 기회도 많았다.
진갑이라는 채소 장수가 있었다. 그는 자주 절에 와서 채소를 팔았는데, 어느 날 경수에게 나쁜 마음이 생겼다. 돈을 아끼려고 몰래 진갑의 밭에 가서 밭고랑 하나 분량의 채소를 통째로 파 갔다. 진갑 집에서 따지러 왔지만, 경수는 승려답지 않게 말주변이 좋았다. 이리저리 말을 돌리며 진갑을 할 말 없게 만들어버렸다. 진갑의 아내 왕씨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하늘을 향해 맹세했다. “이 채소가 천이백 냥어치야. 네가 정말 훔쳤다면, 다음 생에 짐승이 되어서 갚아라!” 얼마 지나지 않아 경수는 상한병(한기로 인한 병)에 걸렸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말도 못 하고, 눈물만 줄줄 흘렸다. 승려들도 방법이 없었다. 그저 매일 미음을 먹여 목숨만 겨우 붙들어두었다.

이렇게 일 년쯤 누워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경수가 벌떡 침상에서 일어났다. 정신이 또렷해진 그가 다른 승려들에게 말했다. “예전에 진씨네 채소, 정말 내가 훔친 거였소. 그런데 그 집에서 저주를 걸어서, 내가 업보를 받았소. 병들어 누워 있을 때, 꿈속에서 누가 나타나더니 왕대백이 너를 부른다고 했소. 진갑의 처남 집이었소. 끌려가서 검은 옷을 뒤집어쓰고 돼지우리 안으로 몰려 들어갔는데, 안에 일곱여덟 명이 더 있었소. 소스라치게 놀란 건, 내 몸이 이미 돼지가 되어 있었다는 거요. 돌아가려 해도 돌아갈 수가 없었소. 매일 그 집에 갇혀서 쭉정이나 먹으며 살았소. 몇 달이 지나니 살이 쪄서, 왕대백이 나를 장씨 백정에게 팔았소. 딱 천이백 냥을 받았소. 장씨 백정이 나를 사더니 돼지 목에 칼을 꽂았소. 아파서 견딜 수가 없어 크게 소리쳤는데, 그 순간 꿈에서 깬 것처럼 제 몸으로 돌아왔소.”

이후로 경수의 병은 나았다. 나중에 왕대백과 장씨 백정을 찾아가 물어보니, 과연 그런 일이 있었다. 세상에 죽은 뒤에 빚을 갚는 이야기는 흔하다. 그러나 살아 있는 혼이 몸을 빠져나가 빚을 갚고 돌아온 일은 매우 드물다. 보적사의 승려들은 이 일로 두려움에 떨며, 이후로 계율을 엄히 지켰다. 절의 기풍이 바로잡히면서, 보적사는 천년 고찰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파사구(문화대혁명때 구사상, 구문화, 구풍습, 구습관을 깨부수는 운동) 시기에 헐릴 때까지.
이 이야기에서 주목할 점은 경수가 다음 생이 아니라 이 생에서, 그것도 살아 있는 동안에 빚을 갚았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업보(業報)는 세 가지로 나뉜다. 현보(現報)는 이 생에서 지은 일의 결과를 이 생에서 받는 것이고, 생보(生報)는 다음 생에서 받는 것이며, 후보(後報)는 몇 생이 지나서야 받는 것이다. 경수의 경우는 현보의 극단적 형태다. 죽어서가 아니라 살아서, 생혼(生魂)이 몸을 빠져나가 빚을 갚았다. 채소값 천이백 냥, 딱 그만큼만.
도교의 태상감응편(太上感應篇)은 선악의 보응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권선서다. 북송 말에서 남송 초에 저술된 이 책은 천인감응(天人感應)과 인과응보 사상을 바탕으로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책이 강조하는 것이 저 세상의 심판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의 즉각적 반응이라는 점이다. 선을 행하면 장생과 다복을 누리고, 악을 행하면 재앙이 따른다. 그 과보가 반드시 다음 생을 기다리지 않는다.
현대 사회에서 이 현상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연예인들의 경우를 봐라, 과거의 비행이 SNS를 통해 퍼지면, 하루 만에 방송 출연이 정지되고, 광고 계약이 해지되며, 수년에서 십수년 쌓은 명성이 무너진다. 2001년 엔론(Enron)이 분식회계 사실이 드러났을 때, 세계 최대 에너지 기업이라던 회사가 몇 주 만에 파산했다. 경영진은 형사 기소되었고, 회계법인 아서 앤더슨도 함께 무너졌다.
정보의 속도가 빨라졌다. 과거에는 나쁜 일을 해도 그것이 알려지는 데 시간이 걸렸다. 소문이 퍼지려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야 했고, 그 사이에 숨을 곳도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스마트폰 하나로 전 세계가 연결되어 있다. 누군가의 잘못이 녹화되고, 업로드되고, 공유되는 데 몇 분이면 충분하다.
송나라 때 경수는 채소를 훔치고 일 년 뒤에 업보를 받았다. 현대의 경수들은 몇 시간 만에 받는다. 정보의 속도가 업보의 속도를 결정하는 것일까, 아니면 업보의 작용 자체가 빨라진 것일까. 보적사의 승려들은 경수의 경험을 듣고 두려워하며 계율을 지켰다. 그래서 천년 고찰이 되었다. 현대인들은 매일 누군가의 몰락을 뉴스로 접한다. 그런데도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업보가 빨라졌는데도, 배움은 느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