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를 볼 필요없는 사람

강양과 하묘는 고생을 먹고 자란 사람들이다. 강양은 귀주 농촌 출신 남자로 중학교를 마치자마자 광동으로 일하러 왔고, 하묘는 내몽고 농촌 출신 여자로 학업을 중단하고 동생 학비를 벌러 나왔다. 둘 다 동관 후가의 한 신발 공장에서 일하며 만났다.
1999년 봄이었다. 공장 노동자의 하루는 새벽 7시에 시작됐고, 작업장에는 “와라 와라, 98년에 만나자”라는 노래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갓 들어온 하묘는 즐거울 수가 없었다. 일 서투르다고 반장한테 매일 욕을 먹었다. 자존심 센 그녀는 퇴근 후 혼자 남아 울면서 연습했다. 그리고 매번 그녀가 야근할 때면 강양이 슬쩍 곁에 남아 있었다. 어떤 날은 자기도 아껴 먹던 사과를 건네고, 어떤 날은 고향 생각에 울먹이는 그녀를 보며 갑자기 앞구르기를 해 웃기기도 했다.
하묘가 말했다. “우리 둘만 남은 작업장, 꼭 교실 같네.” 고향 떠나 먹고살기 힘든 걸 겪고 나니, 둘 다 방금 떠나온 학교 시절이 그리웠다. 헐렁한 작업복이 앙상한 몸을 덮어 다른 공장 노동자들과 구분이 안 됐다. 사실 그들도 그냥 아이들이었다. 다만 삶의 무게를 억지로 짊어진 채, 운명이라는 바위 앞에서 자기 방식대로 버텨나가고 있었을 뿐이다.
강양은 말수가 적고 파고드는 성격이었다. 일한 지 얼마 안 돼서 신발 한 켤레 원가를 다 파악해버렸다. 그가 하묘에게 물었다. “신발 만드는 사람이 파는 사람보다 돈을 더 벌 수 있을까?” 하묘는 그 말을 마음에 담아뒀다가 동료들과 쇼핑할 때 시장 가격을 유심히 살폈다.
돌아와서 강양에게 말하니 그의 눈이 반짝였다. 하지만 곧 어두워졌다. “우리한테 돈이 어디 있어. 공장에서 우리한테 신발을 도매로 넘겨줄 리도 없고.” 그런데 한 달 뒤, 하묘가 신발 50켤레를 그 앞에 늘어놓았다. 고향에서 가져온 치즈와 육포를 영업 담당 공장장에게 다 갖다 바치고, 공장장 딸이랑 놀아주고, 청소까지 해줬더니 공장장이 감동해서 외상으로 50켤레를 내준 것이다. 공장장이 말했다. “못 팔면 그냥 도로 가져와.” 하지만 하묘가 대답했다. “외상으로 주신 것만 해도 큰 도움이에요. 못 팔면 제 월급으로 사서 친척들 신기겠습니다.”
이 당찬 말에 공장장도 좀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하묘는 공장장 앞에서는 큰소리쳤지만 강양 앞에서는 불안하게 물었다. “진짜 팔 수 있어?” 강양은 진짜 장사 재목이었다. 하묘 생각처럼 상업 거리에 노점을 펼친 게 아니라, 쉬는 날 자전거 타고 다른 공장 앞으로 갔다. 야근 때문에 밖에 나가 쇼핑 못 하는 노동자들에게 팔았다. 보름도 안 돼서 50켤레가 다 팔렸다.
원가 빼고 순이익 500위안. 강양 인생 첫 종잣돈이었다. 그는 한 푼도 안 쓰고 전부 하묘에게 건네며 가슴을 쳤다. “이제부터 내 것은 네 것이야.” 그때 둘의 사랑은 타향에서 떠도는 두 아이가 서로 기대는 것이었다. 연인이자 가족이었다.
하묘는 그 돈으로 광동 지도 한 장 사고, 나머지는 전부 책을 사서 공장장 딸에게 선물했다. “저는 이제 공부할 기회가 없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이 공부하는 걸 보는 게 좋아요.” 엄마인 공장장이 눈물을 글썽였다. 그 뒤로 하묘는 공장장 집에 자주 드나들었다. 고작 열여덟인데 눈치가 빨라 할 일을 알아서 찾았고 입에 꿀을 발라놨다. 유리 더러우면 닦고, 막 배운 광동어로 공장장 어머니랑 수다 떨어 웃겨드렸다.
하지만 밥때가 되면 아무리 붙잡아도 절대 안 남았다. 솔직하게 말했다. “공장장님, 저한테는 윗사람이잖아요. 같이 밥 먹으면 배가 안 차요.” 나중에 하묘가 동관을 떠나고 신발 장사도 접었지만, 매년 이 은인을 찾아뵈었다. 강양은 그때부터 알았다. 하묘가 자기보다 멀리 보고, 관계를 오래 간직하는 사람이라는 걸.
공장장과의 인연, 강양의 성실함, 그리고 그 광동 지도 한 장. 두 사람은 2년 동안 광동의 크고 작은 도시와 마을을 다 돌았다. 그 뒤로는 발길이 전국으로 뻗어나갔다. 신발만 판 게 아니라 옷도 팔고, 나중에는 소형 가전도 팔았다. 광저우와 선전에서 유행하는 생활용품을 전국 각지로 퍼뜨렸다.
나이는 어렸지만 하는 일에 원칙이 있었다. 한 곳에서 팔고 다른 곳으로 옮기는 방식이었지만, 한번 정한 가격은 절대 바꾸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남겨둔 물건은 더 비싸게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나도 넘기지 않았다. 이 악착같은 성실함과 신용으로 작은 행상에서 시작해 대리점 사장이 됐다.
2006년쯤 타오바오가 일어나 시골 마을까지 파고들 무렵, 둘은 이미 어떤 유명 과자 회사의 대리점으로 전환한 뒤였다. 이 전환은 그들 인생 최대의 도약이었고, 그 기회가 온 과정은 꽤 이야기거리가 됐다.
그날 둘은 항저우에서 시장 조사를 마치고 광저우로 돌아가려 했다. 예전에는 돈 아끼려고 화물차나 기차를 탔는데, 그날 하묘가 제안했다. “이번에 비행기 한번 타보자.” 강양은 아까웠다. 두 사람 표값이면 소형 가전 몇 개 팔아야 벌겠나. 하지만 하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돈은 천천히 벌어도 돼. 견문은 빨리 넓혀야지.”
하묘가 그렇게 비행기를 타고 싶어하니 강양도 아픈 마음을 누르고 표를 샀다. 그런데 그날 일반석이 매진이었다. 하묘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직원에게 물었다. “비즈니스석은 있어요?” 비즈니스석 표를 사고 나니 강양은 얼굴이 일그러질 지경이었다. 두 장 값이 몇 달 치 수입이었다.
하지만 하묘는 태연하게 그에게 내기를 걸었다. “비즈니스석에 화장실이 딸려 있을까, 없을까?” 비행기에 오르니 강양은 화장실 같은 거 볼 겨를이 없었다. 안전벨트 매는 것만 한참 걸렸다.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런데 옆의 하묘는 신문을 들고 태연하게 앉아 있었다. 마치 일등석이 익숙한 여성 사업가 같았다. 강양은 아무리 같이 가난에서 출발했어도 일 앞에서 저렇게 의연한 배포는 자기랑 차원이 다르다고 속으로 감탄했다.
그날 비행기가 안정 고도에 올라 겨우 진정될 때쯤, 한 노인이 갑자기 심장 발작을 일으켰다. 상황이 급박해졌다. 다행히 기내에 의사가 있어 심폐소생술을 해서 노인의 목숨을 건졌다.
비행기 안 승객들이 의사에게 박수를 보냈다. 하묘는 눈물을 글썽이며 자기 좌석을 노인에게 양보해 비즈니스석에서 편히 쉬게 했다. 그러자 기내에 다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비행기가 착륙한 뒤, 노인과 가족이 의사와 하묘에게 식사 대접을 하겠다고 고집했다. 결국 하묘는 연락처만 남기고 겨우 빠져나왔다.
그런데 일주일 뒤 노인의 아들이 정말로 전화를 해왔다. 숙소까지 찾아와서 밥을 사겠다고 했다. 자리에서 강양과 하묘가 그날 비행기 탔던 이야기를 우스갯소리로 꺼냈다. 분위기 띄우려고 한 말이었는데, 듣는 사람은 뜻밖의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즉석에서 제안했다. 자기 회사 과자의 1급 대리점을 맡아달라고.
강양과 하묘도 전국을 돌아다닌 사람들이라 1급 대리점이 뭔지 알았다. 그렇게 꿈처럼 하룻밤 사이에 강 사장, 하 사장이 됐다.
2007년, 강양과 하묘는 결혼했다. 이때 둘은 예전 공장 노동자에서 작지만 성공한 사업가로 변해 있었다. 손에 쥔 돈으로 큰 집을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하묘는 작은 원룸만 사고, 남은 돈으로 둘 다 방송통신대학에 등록했다. “여보, 예전에 우린 떠돌이 장사꾼이라 돈 셈만 잘하면 됐어. 근데 지금은 회사 대표잖아. 성장 안 하면 오래 못 가.” 공부를 시작하니 하묘는 재무 지식이 거의 없다는 걸 깨달았고, 강양은 경영 쪽이 약점이었다. 그래서 하묘는 회계를, 강양은 기업 경영을 배웠다.
하묘가 말했다. “사람은 배울수록 부족함을 느끼고, 부족함을 느낄수록 겸손해져. 안 그러면 갑자기 돈이 생겼을 때 쉽게 한눈팔게 돼.”
강양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기가 성실하게 일은 잘해도 일 처리하는 안목과 큰 그림은 아내만 못하다는 걸. 그래서 둘의 관계에는 사랑 말고도 서로에 대한 작은 존경이 있었다.
사업이 잘될수록 양가 친척들이 찾아왔다. 강양의 형수가 와서 회사에 영업직으로 넣어달라고 했다. 강양은 형수가 욕심 많고 게으르고 끈기가 없다는 걸 알았지만 차마 거절을 못 했다.
하묘가 냉정하게 악역을 맡았다. “저와 강양은 회사 세운 첫날부터 원칙을 정했어요. 친척은 안 뽑습니다.” 결국 형수는 욕을 퍼부으며 떠났고, 강양 같은 동생은 없다고 선언했다.
나중에 하묘 남동생도 대학 졸업 후 찾아와 자리를 달라고 했다. 하묘는 친동생한테도 똑같이 거절했고, 말은 더 날카로웠다. “내가 널 대학까지 보낸 게 다 커서 나한테 기대라고 그런 줄 알아? 조금이라도 자존심이 있으면 누나한테 일자리 달라고 입 벌리지 마. 손발 멀쩡하고 학력도 있잖아. 스스로 벌어먹는 법을 배워.”
“학력이 모자라서 더 공부하고 싶으면 어디까지든 대줄게. 능력이 부족한 것 같으면 내가 예전에 일하던 신발 공장에 소개해줄 테니, 누나가 학교 그만두고 걸었던 그 길을 걸어봐. 혼자 살아남을 수 있는지.”
남동생은 울면서 나갔다. 강양조차 안쓰러워서 “그래도 대졸인데, 회사에 도움이 될 수도 있잖아”라고 말렸다.
하지만 하묘는 단호했다. “대졸이 뭐? 진짜 금이면 어디서든 빛나.”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강양은 속으로 엄지를 치켜세웠다. “우리 둘 다 농촌 출신이야. 여기서 한번 뚫어주면 고향 친척들이 다 몰려올 거야. 우리 가족도 거절했는데 남들이 어떻게 입을 열겠어? 장사는 자선 사업이 아니야.”
하묘가 양쪽 친척을 차갑게 막아섰지만, 강양 형수네 아이 둘의 학비는 대줬다. 고향에 남겨진 두 아이 성적이 엉망이었는데, 하묘가 직접 시댁 고향에 가서 데려다가 광저우에서 실컷 놀려주고, 고향에서 선생님을 구해 그 집에서 먹고 자며 공부하게 했다. 일정 간격으로 선생님과 아이들 상황을 확인했다.
나중에 자기 아들딸이 태어난 뒤에도 매년 이 네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갔다. 강양과 형수가 가장 감탄한 건 하묘 자신은 영어 알파벳도 제대로 모르면서 겨울방학에 네 아이를 데리고 해외로 나간 일이었다. 매일 아이들을 다그쳐 영어로 말하게 하면서 여러 관광지를 다 돌았다.
비행기에서 내리는 아이들의 당당한 모습, 그리고 나중에 스스로 인터넷에서 영어 애니메이션 더빙하는 모습을 보며 강양은 아내의 속깊음과 먼 안목을 이해했다.
하묘는 희망이 있는 곳에만 돈을 아끼지 않았다. 이 아내에 대해 강양 마음에는 두 글자만 남았다. 신뢰.
아이가 생긴 뒤 하묘는 일선에서 물러나 전업주부가 됐다. 그런데 전업 생활은 회사 다닐 때보다 더 바빴다. 아이와 함께 춤과 그림을 배웠다. 아이는 아동반, 자기는 성인반. 제과를 배우고, 중급 다도사 자격을 따고, 국가 영양사 자격증도 땄다.
재주가 많아서 손해 볼 건 없다고 했다. 배운 것들은 평소에 마음 수양에 쓰고, 만약 인생에 무슨 일이 생기면 그걸로 먹고살 수도 있다고. 결국 사람은 나아갈 수도 있고 물러설 수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하묘의 두 아이는 사립학교에 다녔다. 그녀는 아마 전체 학부모 중 가장 수수하게 입고 가장 허름한 차를 모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첫 학부모 회의 때 부모들이 서로 연락처를 교환했는데 아무도 하묘에게 먼저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이 학교 행사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하묘에게 조언을 구하는 학부모가 점점 늘었다.
한번은 아이가 학교에서 즉석 발표를 했다. “우리 엄마 아빠”라는 주제로 재미있게 말해야 했다. 2학년 아이들이라 대부분 있는 그대로 말했고, 부모 이미지가 와장창 깨지는 현장이 됐다.
어떤 아이는 말했다. “우리 아빠는 매일 취해서 들어와요. 취하면 엄마한테 ‘여기요, 한 병 더요’라고 외쳐요.” 어떤 아이는 말했다. “우리 엄마는 자기 모습을 엄청 신경 써요. 어떤 이모가 밤에 영상통화하자고 했는데 엄마가 잠깐만 기다리래요, 중요한 전화 받는 중이라고. 근데 사실 급하게 화장하고 나서 영상통화했어요.” 심지어 어떤 아이는 말했다. “우리 엄마는 우리 집 강아지보다 코가 더 예민해요. 아빠 올 때마다 몸에서 냄새가 이상하다고 해요…”
하묘 아들 차례가 됐을 때 그가 말했다. “우리 엄마는 아이가 여덟 명이에요. 저랑 여동생은 친자식이고, 나머지 여섯은 엄마가 후원하는 산골 아이들이에요. 매일 밤 저랑 동생이랑 얘기하고, 또 그 여섯 형누나들이랑도 통화해요. 형누나들이 좋은 성적 받으면 엄마가 엄청 기뻐하고, 안 좋은 일 있으면 엄마가 속상해해요. 저는 좀 의심돼요, 그 여섯 형누나들도 친자식 아닌가.”
그날 발표 영상을 선생님이 하묘에게 보내며 한마디 했다. “훌륭한 아이 뒤에는 반드시 훌륭한 부모가 있군요. 존경하고 배웁니다.”
이 한때 고생하던 부부는 당시 수많은 공장 노동자들 사이에서 가장 잘 된 사례가 됐고, 고향 사람들 입에서 집안을 빛낸 인물로 회자됐다. 이 모든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다 하묘 덕이라고 했다. 남편 운을 타고났다, 성공한 남자 뒤의 대단한 여자라고.
하지만 하묘가 가장 좋아하는 평가는 어떤 점쟁이에게서 나왔다.
그 주말, 네 식구가 새로 문 연 식물원에 놀러 갔다. 그런데 식물원이 외진 곳이라 주변 도로 정비가 안 돼 있었다. 신호등도 없고 교통 경찰도 없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마구 길을 건너 차와 뒤엉켰고, 식물원 앞에 긴 차량 행렬이 막혀버렸다. 강양과 하묘는 차를 세우고 자발적으로 교통 정리를 했다.
순식간에 혼잡하던 도로가 질서정연해졌다. 그제야 둘은 아이들을 데리고 입구 쪽으로 걸었다.
그때 길가에 노인 한 분이 점을 보고 있어서 강양이 우리도 한번 봐보자고 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생년월일을 말하려는 순간 노인이 손을 저었다. “아까 일 다 봤소. 두 분 운명은 굳이 안 봐도 되오. 하나는 음, 하나는 양. 남편이 부하고 아내가 귀하니, 부귀가 곧 음양이오. 이런 사람들은 어딜 가든 귀인이 있고, 무슨 어려움을 만나도 좋게 풀리고, 무슨 흉한 일이 와도 길하게 바뀌오.”
노인의 말에 강양과 하묘는 감사하면서도 뭔가 깨달았다.
격동의 삼십 년, 둘은 자신들의 행운을 늘 출신을 따지지 않는 시대와 만난 사람들의 선함 덕분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노인의 말이 처음으로 자신들의 됨됨이를 다시 들여다보게 했다.
너의 선함이 곧 너의 운명이다.
그렇다, 남들 눈에 이 부부의 인생은 하늘이 도운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둘이 함께 걸어온 길을 보면 그 말이 정확하다는 걸 알게 된다.
돈 뒤에는 일이 있고, 일을 끝까지 해내면 돈은 저절로 온다. 일 뒤에는 사람이 있고, 사람을 제대로 하면 일은 가장 좋은 열매가 된다. 사람 뒤에는 운명이 있고, 삶의 바탕을 닦아놓으면 설명할 수 없는 좋은 일들이 찾아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