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sdom

비판 능력과 행복의 관계

비판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어디를 가든 문제가 보인다. 회의실에 들어가면 비효율적인 의사결정 구조가 눈에 들어오고, 프로젝트를 맡으면 허술한 기획이 거슬린다. 남들이 그냥 넘기는 것들이 이들에게는 날카로운 가시처럼 찔린다. 그래서 불평이 많아진다. 틀린 말을 하는 게 아니라 맞는 말을 하는데, 그게 문제다. 맞는 말이니까 스스로도 납득이 되고, 납득이 되니까 불만이 정당하게 느껴진다.


재밌는 건, 이런 사람들이 정작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 비슷한 불만을 또 갖게 된다는 점이다. 새 직장도 별로고, 새 환경도 마음에 안 든다. 비판의 눈은 어디서든 작동하니까.

게다가 이런 비판과 불평을 이야기하면, 주변인들도 동조하게 된다. 어딘가 불만족했는데, 누가 꼭 찍어서 이야기하니까, 동조를 하다보면, 부정적 기운이 확산되게 된다. 그럼 회사는 그 불평불만을 하는 존재를 제거하고 싶어진다.


내가 한때 다니던 회사가 있었다. 시스템이랄 게 없었다. 자유도가 높다고 하면 듣기 좋고, 솔직히 말하면 정글이었다. 덕분에 성장은 빨랐다. 알아서 해야 하니까 알아서 하게 되고, 막아주는 게 없으니까 뚫리는 데까지 뚫렸다. 동료들은 거칠고 사나웠다. 회의에서 고성이 오가는 건 일상이었고, 뒤끝 없이 싸우고 뒤끝 없이 술 마시는 문화였다. 불만이 많았다. 왜 이렇게 체계가 없나, 왜 이렇게 야만적인가. 물론 그런 문화였기에, 역대급 속도로 정장했던 회사였다.


그만두고 간 회사는 달랐다. 사람들이 선비처럼 다녔다. 말투가 정중하고, 복장이 단정하고, 이메일 한 통에도 격식이 있었다. 시스템이 정교했다. 뭘 하려면 품의를 올리고, 승인을 받고, 기록을 남겼다. 리스크 관리가 철저해서 실수가 나도 손실이 제한됐다. 처음엔 좋았다. 문명 세계에 온 것 같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그게 또 답답했다. 사내 정치가 있었다. 정중한 말투 아래 칼이 숨어 있었고, 체계적인 시스템 속에 관료적 경직이 있었다. 빠르게 치고 나가고 싶은데 절차가 발목을 잡았다. 기회들은 잡지 못하고, 보고서 잘 만든 인간들이 기획한 안되는 일들은 또 진행이 된다.


그제야 이전 회사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 거친 문화 속에 솔직함이 있었고, 시스템 없음 속에 속도가 있었다. 물론 그래서 망하는 사람도 있었고, 다치는 사람도 있었다. 반대로 정교한 시스템을 갖춘 회사는 느렸지만 오래 갔고, 화려하진 않았지만 꾸준히 버텼다. 누가 옳은지는 모르겠다. 다만 오래 지켜보면 장기적 승자가 누구인지는 보인다.
몇 번 더 자리를 옮기고, 여러 기업들과 일하면서 알게 된 게 있다. 어떤 조직이든 장단점이 있고, 그 장단점은 대개 동전의 양면이다. 빠른 곳은 허술하고, 꼼꼼한 곳은 느리다. 자유로운 곳은 혼란스럽고, 체계적인 곳은 답답하다. 이걸 모를 때는 단점만 보인다. 알고 나면 그냥 그런 거다.


시야가 좁으면 지금 있는 곳의 문제만 크게 보인다. 시야가 넓어지면 그 문제가 상대적으로 작아진다. 없어지는 게 아니라 비율이 달라지는 거다. 열 개 중 세 개가 불만이면 삼십 퍼센트지만, 백 개 중 세 개가 불만이면 삼 퍼센트다. 불만의 절대량은 같은데 체감이 다르다. 비판적 시각을 가진 사람은 스스로 뭐가 문제인가 생각하기 보다는 경험치를 다양하게 쌓아봐라, 그럼 저절로 해소된다.


옛사람들이 독서와 여행을 강조한 데는 이유가 있다. 둘 다 시야를 넓히는 일이다. 직접 경험할 수 없는 것을 책으로 대리하고, 책으로 안 되는 것을 발로 채운다. 그렇게 세상이 넓다는 걸 알면 지금 서 있는 자리가 달리 느껴진다. 천하를 유람한 사람이 동네 골목 하나에 목숨 걸지 않는 것처럼.


비판능력 자체는 좋은 것이다. 문제를 보는 눈이 있어야 고칠 수도 있으니까. 다만 그 능력이 불행의 원천이 될 필요는 없다. 보는 눈의 범위를 넓히면 된다.​​​​​​​​​​​​​​​​ 다양한 경험을 하면 된다. 그것을 할 수 있을때 하는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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