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함께 갈 사람
끝까지 나와 함께 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자신뿐이다. 이 말이 냉정하게 들릴 수 있지만, 사실 이보다 더 따뜻한 말도 없다. 배우자에게 너무 큰 기대를 걸지 말고, 혼자서도 잘 살아갈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지 마라. 하루 종일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살면서, 자기는 못하니까 상대방이 해주길 바라고, 상대방이 못하면 괴로워하고 원망한다. 기억하라. 남이 해주지 못해서 생긴 고통은 전부 자업자득이다.

사람은 받아들여야 한다. 배우자가 나를 그렇게까지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왜냐하면 나를 가장 사랑해야 할 사람은 원래부터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결혼 생활에 가장 필요한 건 평상심이다. 달콤하고 뜨거운 감정이 매일 지속될 리 없다. 마음을 평온하게, 기운을 순하게 가지면 된다. 배우자란 그저 동반자일 뿐, 있으나 없으나 당신이 통쾌하게 살고 진실되게 사는 데 방해가 되어선 안 된다. 스스로를 가두지 않으면 아무도 당신을 가둘 수 없다.
사람이 일단 타인에게 기대를 접으면 도처에서 뜻밖의 기쁨을 만나게 된다. 배우자라는 존재, 그렇게 좋지도 않고 그렇게 나쁘지도 않다. 상대방을 바꾸려 들지 마라. 너무 피곤하다. 기억하라. 누구도 당신이 상상한 모습 그대로인 사람은 없다. 상대방은 가볍게 보고, 자기 자신은 무겁게 여겨라. 결혼이란 본래 각자의 능력과 각자의 양심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장자(莊子)는 말했다. 상대편 물고기가 행복한지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 혜시에게, 나는 호수 위에서 알았다고 답했다. 이 유명한 호량지변(濠梁之辯)에서 장자가 말하고자 한 것은 단순하다. 타인의 내면은 결국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아내가, 남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진정으로 알 수 있는가. 알 수 없다. 그러니 추측하고 기대하고 실망하는 순환에서 벗어나는 편이 낫다.
2023년 미국 결혼 연구소(National Marriage Project)의 보고서에 따르면, 결혼 만족도가 높은 부부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배우자에 대한 기대 수준이 현실적이라는 점이었다. 상대방이 자신의 모든 정서적 필요를 채워줄 것이라 기대한 집단은 만족도가 현저히 낮았고, 자기 자신의 행복에 일차적 책임을 진 집단은 관계 지속률과 만족도 모두 높았다. 통계가 말해주는 바도 결국 같다. 나를 챙기는 일을 남에게 맡기면 실패한다.
명리학(命理學)에서 배우자 궁(宮)을 볼 때도 비슷한 이치가 있다. 일지(日支)가 배우자 자리인데, 이 자리에 어떤 글자가 앉았든 그것이 나의 운명 전체를 좌지우지하진 않는다. 배우자 운이 좋다 해도 내 삶이 저절로 풀리는 게 아니고, 배우자 운이 나쁘다 해도 내가 망하는 건 아니다. 결국 팔자의 주인은 일간(日干)인 나 자신이다. 배우자 자리는 그저 내 삶의 한 영역일 뿐이다.
부부란 일정 기간 함께 걷는 동반자다. 어떤 부부는 오래 걷고, 어떤 부부는 중간에 길이 갈라진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각자의 과제는 각자가 푼다. 내가 상대방의 숙제를 대신 풀어줄 수 없고, 상대방도 내 숙제를 대신 풀어줄 수 없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과제가 있다. 이것을 인정하면 관계가 한결 가벼워진다. 무거운 기대를 내려놓으면 비로소 함께 있는 시간이 편해진다.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는 확신이 있는 사람이 오히려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역설적이지만 사실이다. 의존하지 않으니 집착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니 상대방에게 숨 쉴 공간을 준다. 그 공간 안에서 상대방은 자발적으로 돌아온다. 붙잡으려 할수록 빠져나가고, 놓아줄수록 머무른다. 관계의 묘한 물리학이다.
그러니 오늘 저녁, 배우자가 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해도 크게 상심할 일이 아니다. 원래 그런 거다. 나도 상대방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을 테니까. 서로 부족한 두 사람이 같은 지붕 아래 사는 것, 그게 결혼이다. 완벽한 반쪽을 찾는 게 아니라 불완전한 둘이 각자의 삶을 살면서 때때로 교차하는 것, 그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타인에 대한 나의 기대는 접기 쉬운데,
나에 대한 타인의 기대는 정말 피곤해요.
내가 아니니 기대를 접게 하기도 어렵고
기대하지 않게 만들어도 자기 멋대로
기대하면서 불평합니다..
지긋지긋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