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sdom

음덕: 숨겨진 선행의 진정한 가치


음덕(陰德)이라는 말이 있다. 남에게 드러내지 않고 쌓는 덕을 말한다. 20세기 중국에서 유불도 삼교를 회통한 학자로 평가받는 남회근(南懷瑾) 선생은 이 음덕을 평생 강조했다. 그는 대만과 홍콩을 거쳐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고, 장자와 노자, 논어 강의로 중화권에서 큰 영향력을 가졌던 인물이다.

그가 남긴 말 중에 이런 게 있다. 선(善)은 양(陽)을 대표하고, 악과 근심은 음(陰)을 대표한다고. 위선최락(爲善最樂)이라는 말이 있는데, 선을 행하면 가장 즐겁다는 뜻이다. 남회근 선생은 이게 단순한 도덕적 권유가 아니라 실제 현상이라고 했다. 선한 생각과 행위는 양기(陽氣)를 일으키고, 양기가 충만하면 생기가 돈다. 반대로 나쁜 일을 하거나 근심과 분노에 빠지면 음기가 쌓인다. 남이 모르는 악행도 마찬가지다. 본인 마음이 닫히고 불편해진다. 몸과 마음이 그렇게 반응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조건이 붙는다. 선행의 효과가 나타나려면 그 선행이 순수해야 한다. 유심위선 수선불상(有心爲善 雖善不賞), 무심위악 수악불벌(無心爲惡 雖惡不罰). 일부러 선을 행하면 선이라도 상을 받지 못하고, 본의 아니게 악을 저질렀으면 악이라도 벌받지 않는다. 청나라 소설 요재지이(聊齋志異) 첫 편 고성황(考城隍)에 나오는 구절이다. 주인공이 꿈에서 과거시험을 보는데, 주관이 관우(關羽)다. 관우가 이 두 구절을 보고 바로 합격시켰다. 포송령이 이 이야기를 첫 편에 배치한 건 우연이 아니다. 중국 전통 도덕관의 핵심을 압축해 놓은 셈이다.

선행에 의도가 붙는 순간, 그건 양기를 일으키는 순수한 선이 아니게 된다. 남한테 보여주려고 한 선행, 칭찬받으려고 한 선행은 이미 계산이 섞인 거다. 계산이 섞이면 마음이 열리는 게 아니라 닫힌다. 잘했는데 왜 알아주지 않지, 이런 생각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음덕을 강조했다. 했으면 한 거고, 안 했으면 안 한 거다. 누가 물어도 굳이 인정하지 않았다.

옛날 중국에서는 여름이면 집집마다 큰 솥에 차를 끓여 길가에 내놓았다고 한다. 지나가는 사람 누구나 마실 수 있게. 돈도 안 받고, 이름도 안 남기고. 남회근 선생 본인도 어릴 때 그걸 직접 봤다고 했다. 집에서 매일 큰 솥에 차를 끓여서 몇 리마다 한 통씩 갖다 놓았다고. 다리를 놓고 길을 닦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공을 내세우지 않았다. 그게 당시 사람들이 생각한 적음덕어자손(積陰德於子孫), 음덕을 쌓아 자손에게 남긴다는 개념이었다.

도가에서만 이렇게 말한 게 아니다. 불가에서 말하는 보시(布施)도 같은 구조다. 삼륜체공(三輪體空)이라 해서, 주는 자, 받는 자, 주는 것 세 가지가 모두 비어야 진짜 보시라고 한다. 주고 나서 잊어버려야 한다. 내가 저 사람한테 잘해줬으니 저 사람도 나한테 잘해야지,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그건 보시가 아니라 거래가 된다. 시은불망보(施恩不望報), 은혜를 베풀되 보답을 바라지 말라. 반대로 수혜불망덕(受惠不忘德), 은혜를 받으면 잊지 말라. 주는 쪽과 받는 쪽의 태도가 달라야 한다.

남회근 선생은 이걸 회향(回向)의 원리로 설명했다. 우주 만물은 순환한다. 시작이 곧 끝이고, 끝이 곧 시작이다. 인과(因果)가 그렇게 작동한다. 베푼 것은 돌아온다. 다만 역설이 있다. 돌아오길 바라면서 베풀면 오히려 돌아오지 않는다. 회수할 생각을 품으면 회향이 안 된다. 바라지 않으면 자연히 돌아온다. 무심(無心)해야 회향이 이루어진다는 거다.

요즘은 선행도 콘텐츠가 되는 시대다. 기부하면 인증하고, 봉사하면 사진 찍는다. 그게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안 하는 것보단 낫다. 다만 그렇게 하면 효과가 달라진다. 앞서 말한 대로, 선행이 양기를 일으키려면 순수해야 한다. 의도가 섞이면 마음이 열리는 대신 계산이 시작된다. 보여주기 위한 선행은 양기를 충만하게 하는 그 작용이 반감될 수밖에 없다.

남회근 선생은 진짜 덕은 자손에게 전해진다고 했다. 그런데 물려주는 건 재산이 아니다. 태도다. 드러내지 않고 행하는 습관, 했으면 한 거고 안 했으면 안 한 거라는 담담함, 그게 교육이 되어 전해진다. 적음덕어자손이라는 말의 실제 의미가 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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