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sdom

운명이 주는 네 번의 기회

얼마 전 차를 불러 타고 가다가 오십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기사와 두 시간 남짓 이야기를 나눴다. 한때 사업을 했고, 집이 세 채였다고 했다. 지금은 이렇게 차를 몰며 산다. 그가 말했다. “돌이켜보면 기회가 없었던 게 아니야. 그때마다 내가 망쳐버렸지.” 술과 도박, 그리고 근거 없는 자만심. 그는 담담하게 자기 패착을 읊었다. 운을 탓하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더 씁쓸하게 들렸다.

사람 팔자를 오래 들여다보면 알게 된다. 평생 불운만 타고난 사람은 거의 없다. 삼오 년에 소운, 십 년에 대운, 누구에게나 흐름이 바뀌는 시점은 온다. 문제는 그 시점을 알아보지 못하거나, 알아봐도 잡지 못하거나, 잡아도 지키지 못하는 데 있다. 운명은 구호품을 나눠주지 않는다. 이긴 자에게만 배당금을 준다.

사람이 일생 동안 진짜 판을 뒤집을 수 있는 기회는 대략 네 번이다. 시기마다 성격이 다르고, 잡는 방식도 다르다. 지금 막막하다면 한번 따져볼 일이다. 몇 번을 썼고, 몇 번이 남았는지.

첫 번째 기회는 자란 집이 물려주는 바탕색이다. 사람들은 흔히 집안의 영향을 돈으로 환산하려 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본질은 아니다. 집안이 진짜로 새기는 건 돌발 상황에서의 본능적 반응 양식이다. 사회에서 크게 성취한 사람들 중에 부잣집 출신은 생각보다 적다. 오히려 부모가 평범한 농부였거나 소시민이었던 경우가 많다. 다만 그 집은 조용했다. 싸움이 없었고, 화투 치는 소리가 밤새 울리지 않았고, 쓸데없는 내홍이 없었다. 조용한 집에서 자란 아이는 책을 읽을 수 있다. 책을 읽는 건 누구 밑에서 부려먹히려는 게 아니다.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더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눈을 얻는 것이다. 반대로 어린 시절 내내 집안이 아수라장이었던 사람은 평생 그 불안을 치료하느라 시간을 쓴다. 기회가 와도 손이 떨린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사람에게는 타고난 결핍감이 있다. 지나친 자기비하, 혹은 과도한 방어. 그 바탕색이 기회 앞에서 주저하게 만든다. 첫 번째 고비를 넘는 법은 분명하다. 읽고, 멀리 가보고, 차원이 다른 사람을 만나 바닥부터 다시 깔아야 한다. 부모의 경험이 이 시대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걸 인정하고 자기 세계관을 따로 세울 수 있다면, 첫 판은 이긴 셈이다. 태어난 집은 출발선이지 결승선이 아니다.

두 번째 기회는 혼인이다. 속되게 말하면 자산 재편이다. 듣기 좋은 말은 아니지만 사실이 그렇다. 보통 사람에게 결혼은 인연이지만, 야심이 있는 사람에게 결혼은 계급 이동의 입장권이다. 이른바 재벌가 며느리 자리를 꿰찬 사람들, 상류 사회에 발을 들인 사람들을 보라. 연애할 때 이미 일을 하고 있다. 상대방을 최상급 고객처럼 대한다. 누군가는 답장이 늦다고 끙끙대고, 감정적 위로를 요구하며 신경전을 벌인다. 그 사이 다른 누군가는 상대방의 배경과 필요를 연구한다. 냉정한 계산에는 낭만이 빠져 있지만, 삼십 년 노동을 줄여준다.

세 번째 기회는 판을 고르는 일이다. 노력은 입장권일 뿐이다. 격차를 벌리는 건 산업의 흐름이다. 추세 앞에서 노력은 때로 아무 값도 없다. 오르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면 가만있어도 올라간다.

같은 영업직이라도, 지는 해가 비추는 업종에서는 목숨을 갈아도 연봉 몇천만 원이 한계다. 뜨는 쪽에서는 수억 원을 버는 사람이 나온다. 온라인이냐 오프라인이냐, 내수냐 수출이냐, 상대가 선진국이냐 신흥국이냐, 같은 시간 같은 에너지를 써도 프리미엄이 완전히 다르다. 사회 규칙이 뒤집히고, 권력 구도가 재편되고, 기술 혁명이 들이닥칠 때, 과거에 먹히던 길을 버릴 용기가 있느냐. 그런 시점은 대략 십 년에 한 번씩 온다. 잡으면 계층이 바뀐다. 놓치면 떠밀려 산다.

네 번째 기회는 완전한 각성이다. 대개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찾아온다.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직시하는 순간, 혹은 가난이야말로 치료법 없는 병이라는 걸 뼛속으로 깨닫는 순간, 사람은 체면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인간 본성을 연구하기 시작하고, 자존심을 꺾어 관계를 경영하고, 수단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번다. 그제서야 진짜 허물을 벗는다. 비릿한 냄새가 나지만, 보통 사람에게 이건 마지막 기회다.

운명의 톱니바퀴는 빨리 돈다. 돌 때마다 남은 횟수가 줄어든다. 젊을수록 실패해도 복구 비용이 낮고, 기회는 더 자주 온다. 쉰 살 넘어 어느 늦은 밤, 술기운에 중얼거리게 되는 말. “그때 체면 버리고 그 장사를 했으면, 덜 놀고 책을 좀 더 읽었으면, 뭐가 달라졌을까.” 그때는 이미 늦었다.

나이가 들어서야 알게 되는 게 있다. 세상에서 가장 잔혹한 말은 “난 못해”가 아니라 “할 수 있었는데”라는 것.

기회를 다 흘리고 나서야 팔자 탓을 해봐야 소용없다. 자기 자신에게 진짜로 독해질 수 있을 때, 비로소 운명을 쥔 것이다. 운명은 갑자기 터지는 행운이 아니다. 논리적으로 이어지는 인과의 사슬이다. 첫 번째 기회는 하늘이 준다. 그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나머지 세 번마저 흘렸다면, 머릿속 지도를 다시 그려야 할 때다.

세상은 요동치고 있다. 옛 항로는 사라졌다. 어제 지도를 펴들고 내일 해를 찾아 나서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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