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보, 그리고 스스로 쓰는 삶의 대본
얼마 전 한 여성이 소개를 받았다고 연락을 해왔다. 올해 어떤 남자를 만났는데, 임신을 하고 나서야 그가 이미 결혼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낙태 수술을 받았고, 그 뒤로 죄책감과 자책,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몸도 마음도 천천히 회복 중이라고 했지만, 그녀의 메일에는 아직 흔들림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도교 법사를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이런 감정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물었다.

그래서 몇 가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사람은 살면서 업을 짓는다. 선업과 악업이 있는데, 선을 행하면 선업이 쌓이고 악을 행하면 악업이 쌓인다. 문제는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 하는 점이다. 이 정의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사뭇 다르다. 명나라 때 원료범이 쓴 요범사훈(了凡四訓)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사람이 다리를 고쳐서 마을 사람들이 편하게 다니게 했는데, 그것이 과연 선인가. 그 다리로 도적들이 들어와 마을을 약탈했다면 어떻게 되는가. 또 어떤 관리가 뇌물을 받았는데, 그 뇌물로 가난한 백성들을 구제했다면 그것은 악인가. 선악의 경계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악업은 갚아야 한다. 살면서 겪는 고통스러운 일들, 그것이 바로 업채를 갚는 과정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우느냐다. 같은 일이 반복해서 일어난다면, 아직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비슷한 상황이 다시 찾아온다. 그녀에게 물었다. 혹시 이전에도 비슷한 패턴의 연애가 있었는지. 답은 명확했다. 계속 비슷한 상황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명리학적으로 어떤 사람은 이미 결혼한 남자, 혹은 적합하지 않은 상대와 인연이 닿기 쉬운 구조를 타고난다. 애정에서 누군가와 경쟁해야 하는 구조가 팔자에 새겨져 있는 경우도 있다. 그녀의 팔자가 그랬다. 이것은 그녀의 잘못이 아니다. 명리(命理)에 이미 기록된 일종의 경향성이다. 물론 이런 경험은 필수로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게 태어날때 가지고 내려온 시나리오고, 그 시나리오는 본인이 선택했을 테니까. 게다가 올해가 임신하기 쉬운 해였고, 이 흐름은 내년 후년까지 이어진다. 이것 역시 팔자에 이미 설정된 줄거리다.
도교에서는 낙태된 아이를 영령(嬰靈)이라 부른다. 영령은 원래 정해진 양수(陽壽)를 다 채우지 못했기에 왕사성(枉死城)에 머물며 정상적으로 환생하지 못한다. 정해진 수명이 다할 때까지 그곳에 머문 뒤에야 비로소 나올 수 있는데, 그때쯤이면 부모, 특히 어머니에 대한 원한이 생기기 쉽다. 이것이 어머니의 건강과 운세, 미래의 감정 관계나 자녀 인연에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그녀가 법사를 하고 싶다고 한 것은 맞는 방향이다. 다만 솔직히 말해주었다. 일반적인 천도 법사로 영령을 곧바로 좋은 곳으로 보내기는 어렵다. 할 수 있는 것은 영령을 달래고, 미안함과 축복의 마음을 전하며, 원한을 줄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마음도 가벼워진다. 이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그녀가 물었다. 어떻게 하면 본인의 이런 애정의 패턴을 바꿀 수 있는지. 좋은 질문이었다. 깨어나기 시작했다는 뜻이니까. 그러나 팔자에 새겨진 대본을 바꾸는 것, 이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일도 아니고 법사 한 번으로 되는 일도 아니다. 그 경향성은 본질적으로 업의 드러남이다. 진정으로 바꾸려면 오랜 수행이 필요하다. 업력의 축적을 줄이고, 자신의 인지를 높이는 것이다. 인지가 진정으로 높아지면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어떤 사람이 대본이 자신에게 배정한 겁(劫)인지 알아보게 된다. 그제야 맹목적으로 뛰어들지 않게 된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 않고, 누구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
더 나은 인연을 만나는 방법도 물었다. 복을 쌓는 것이다.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면 자연히 더 나은 사람과 인연이 닿는다. 여기서 말하는 나음은 사회적 지위나 돈이 아니다. 에너지장의 청정함이다. 맑고 깨끗한 상태. 참회문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된다. 도교에도 다양한 참회문이 있다. 그리고 각종 도교의 술법과 법사는 업을 줄여주고, 해결해주고, 업의 근원을 보여준다. 그러나 술법이나 법사는 어디까지나 보조 도구다. 참회는 결국 스스로 해야 한다.
명상에 대해서도 질문을 했는데. 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기운이 깨끗하지 않은 장소에서 명상하거나, 마음이 평온하지 않은 상태에서 명상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함부로 할 일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해주었다. 술법으로 업력 같은 것을 살펴볼 수는 있고 업을 줄일수 있다. 그러나 어떤 법사를 하기 전에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의 전환이다. 내면이 변하지 않으면, 다른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