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덕의 진정한 의미와 쌓는 방법
사람들이 공덕(功德)을 쌓는다고 한다. 절에 가서 돈을 내고, 불우이웃을 돕고, 봉사활동을 한다. 그런데 정작 공덕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공(功)은 선한 행동이고, 덕(德)은 선한 마음이다. 행동과 마음이 하나가 될 때 비로소 공덕이라 부를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마음이다. 손만 움직이고 마음은 딴 데 가 있다면 그건 공덕이 아니라 그냥 노동이다.
많은 사람이 공덕을 은행 적금처럼 생각한다. 경전 몇 번 읽고, 좋은 일 몇 번 하면 그만큼 복이 쌓인다고 믿는다. 이런 건 복덕(福德)이라 부른다. 공덕과 다르다. 복덕은 돈과 같아서 쓰면 없어진다. 공덕은 수련을 통해 얻는 경험과 같아서 한번 체득하면 사라지지 않는다.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면 십 년이 지나도 몸이 기억하는 것처럼.
도덕경에 “聖人不積, 既以爲人己愈有, 既以爲人己愈多”라는 구절이 있다. 성인은 쌓아두지 않는다. 남을 위할수록 자신이 더 풍요로워지고, 남에게 줄수록 자신이 더 많아진다. 역설적이지만 이게 진짜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풀 때 오히려 더 큰 것이 돌아온다. 그리고 그 대가에 집착하지 않는 맑은 마음 자체가 공덕이다.
덕에는 양덕(陽德)과 음덕(陰德)이 있다. 양덕은 드러나는 덕이다. 좋은 일을 하고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 기부하고 신문에 나오는 것. 봉사하고 감사패 받는 것. 나쁜 건 아니지만, 이건 벌면서 바로 쓰는 것과 같다. 적금이 안 된다.
음덕은 숨겨진 덕이다. 아무도 모르게 베푸는 것. 회남자(淮南子)에 “有陰德者必有陽報, 有陰行者必有昭名”이라 했다. 음덕이 있는 자는 반드시 드러나는 보답을 받고, 숨겨진 행실이 있는 자는 반드시 빛나는 이름을 얻는다. 알리지 않아도 결국 드러난다는 뜻이다.
주역에 “積善之家, 必有餘慶”이라 했다. 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남는 경사가 있다. 여기서 “餘”라는 글자가 중요하다. 남는다는 뜻이다. 본인 대에서 끝나지 않고 자손에게까지 흘러간다. 공자 가문이 2천5백 년을 이어온 것, 범중엄(范仲淹)의 후손들이 대대로 번성한 것이 우연이 아니다. 범중엄은 북송 때 재상을 지낸 인물인데, 평생 봉록을 털어 가난한 친척과 이웃을 도왔다. 그의 가문은 이후 팔백 년간 쇠락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선행을 하고 나서 일부러 알리는 건 동기가 순수하지 않다는 증거다. 조금 좋은 일 하고 온 세상에 떠벌리면, 이름이 실제보다 커진다. 허명(虛名)이다. 이런 “양선(陽善)”은 복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화를 부른다. 빈 수레가 요란하면 사람들이 기대하고, 기대에 못 미치면 원망이 따르는 법이다.
덕을 쌓는 이치는 죄를 소멸시키는 이치와 통한다. 선행은 숨기고, 잘못은 드러내야 한다. 자기 죄를 참회하고 고백하면 죄가 쌓이지 않고 오히려 줄어든다. 서리와 이슬이 해가 뜨면 녹아 사라지듯이.
증국번(曾國藩)이 이런 말을 했다. “爲善最樂, 是不求人知. 爲惡最苦, 是惟恐人知.” 선을 행하는 가장 큰 즐거움은 남이 모르게 하는 것이고, 악을 저지르는 가장 큰 괴로움은 남이 알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좋은 일 하고 알아달라고 안달하는 사람은 진짜 선인이 아니다. 그 마음속에 진짜 기쁨이 없다.
도교의 권선서인 문창제군음즐문(文昌帝君陰騭文)에서 “음즐(陰騭)”이란 말이 나온다. 서경(尚書)의 “惟天陰騭下民”에서 온 말인데, 하늘이 몰래 백성을 보살핀다는 뜻이다. 문창제군은 사람들에게 음덕을 쌓으라고 권한다. 좋은 일을 떠벌리지 말고 조용히 하라고. 혼자 있을 때도 나쁜 짓을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신명이 복록수를 내려준다고 했다.
요즘 사회관계망 시대에 이런 말이 얼마나 통할지 모르겠다. 좋은 일 하면 사진 찍어 올리고, 기부하면 인증샷 남기는 세상이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다만 그것과 진짜 공덕은 다른 영역이라는 것이다.
손을 움직일 때 마음이 따라가는지, 아니면 마음은 이미 돌아올 칭찬을 계산하고 있는지. 그 차이가 복덕과 공덕을 가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