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념과 악념은 한끗차이
회서(淮西) 지방에 섭제량(葉諸梁)이라는 수재가 있었다. 집안이 가난하여 서당 훈장으로 생계를 이었는데, 마씨 성을 가진 부호의 집에서 두 아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성품이 활달했던 그는 주인의 총애를 받아 매년 백 냥의 학비와 후한 예물을 받았고, 마씨 부호는 그에게 돈까지 빌려주며 생계를 도왔다.

몇 년이 흐르자 섭제량은 천금을 모아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이즈음 마씨 부호가 군수 부직을 맡다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마씨의 두 아들은 사치에 물들어 있었고, 가산을 거침없이 탕진했다. 그 재물과 전답은 하나둘 섭제량의 손으로 넘어갔다.
섭제량은 심혈을 기울여 마씨 가문의 모든 재산을 취했다. 스승에게 배웠던 두 아들은 빈궁에 빠져 의지할 곳 없이 굶주렸고, 뼈가 드러날 만큼 야위어 처참한 지경에 이르렀다.
어느 날 밤, 섭제량은 꿈에서 음조지부(陰曹地府)에 끌려갔다. 대당 위에 앉은 명관이 그의 죄목을 낱낱이 읊었다. 망은부의(忘恩負義), 은혜를 잊고 의리를 저버린 죄였다. 명관이 크게 노하여 그를 소의 몸으로 환생시키겠다고 했다. 섭제량은 거듭 용서를 빌며 돌아가면 마씨 재산을 돌려주고 두 아들을 돌보겠다고 맹세했다.
명관이 말했다. 회과지심(悔過之心)이 있으니 잠시 돌려보내겠다. 그러나 약속을 어기면 영원히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꿈에서 깬 섭제량은 아내에게 말했다. 우리가 누리는 영화가 모두 마씨 집안 것이다. 전부 돌려줘도 우리는 여전히 부자다. 굳이 귀신과 원수를 맺을 이유가 있겠는가.
다음 날 그는 마씨 두 아들을 찾아갔다. 허름한 판잣집에서 사방이 텅 빈 채 살고 있었다. 옛 스승을 본 그들이 통곡했고, 섭제량도 그들의 손을 잡고 울었다. 그는 두 사람을 집으로 데려와 의복과 백 냥을 주어 당장의 어려움을 덜게 했다. 몇 달 뒤에는 마씨 가문에서 가져왔던 모든 재산을 돌려주고, 한 사람에게는 전당포를, 다른 한 사람에게는 장사를 시작하게 해주었다.
고난을 겪은 마씨 두 아들은 세상의 냉혹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들은 사람이 달라졌다. 몇 년 만에 큰 재산을 일궜고, 섭제량이 돌려준 재물을 다시 되돌려주려 했다. 그러나 섭제량은 단호히 거절했다.
나도 예전에는 가난했소. 당신들 아버지의 은덕으로 오늘이 있는 것이오. 섭섭해 하지 마시오. 이것은 나와 당신들 아버지 사이의 정이오. 훗날 저승에서 당신들 아버지를 만나면, 서로 마주 보며 웃을 수 있을 것이오.
중추절 밤, 섭제량은 달을 보며 술에 취해 창가에서 잠이 들었다. 몽롱한 가운데 마씨 부호가 나타나 감사를 전했다.
선생께서 예전에 하신 일은 옳지 않았소. 그러나 내 두 아들은 어려서부터 사치에 젖어 있어, 가산을 물려줘도 탕진할 운명이었소. 다행히 선생이 대신 재산을 관리해주었고, 두 아들이 고초를 겪은 뒤에야 뉘우치고 새사람이 되었소. 선생이 우리 집안 재산을 지켜주고, 내 아들들을 성취하게 해주었소. 이 은덕을 음부의 여러 명관에게 알렸고, 상제께 전해 올렸소. 선생은 앞으로 복덕이 면면히 이어질 것이오. 이를 알리러 왔소.
마씨 부호는 거듭 감사를 표하고 떠났다.
이후 섭제량의 사업은 순탄하게 흘러 이전에 마씨 가문에서 취했던 재산의 몇 배를 얻었다. 그의 네 아들은 모두 학문에 정진했고, 마씨 가문 역시 대대로 책을 읽는 집안이자 벼슬아치를 배출하는 명문가가 되었다.
선악은 한 생각의 차이다. 그 한 생각이 바뀌면 운명도 따라 바뀐다. 섭제량이 꿈에서 깨어난 뒤 내린 결단은 단순한 재물의 반환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걸어온 길의 방향을 완전히 틀어버린 것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마씨 부호의 말이다. 두 아들에게 가산을 그대로 물려줬어도 어차피 탕진했을 것이라고 했다. 결국 섭제량의 탐욕이, 의도치 않게 그 두 사람을 바닥까지 떨어뜨렸고, 바닥에서 그들은 비로소 눈을 떴다.
악행이 선한 결과를 낳고, 탐욕이 교훈을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처음의 악행은 정말 악행이었는가. 아니면 더 큰 그림 속의 한 획이었는가.
음사(陰司)의 명관은 섭제량에게 소의 몸으로 환생시키겠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회과지심, 뉘우치는 마음 하나로 그 형벌은 유예되었다. 결국 저승의 심판도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 행위를 대하는 마음을 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한 번의 잘못으로 모든 것을 잃는 사람이 있고, 수십 번의 잘못 끝에 기회를 얻는 사람이 있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