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드리면 안되는 존재

살다 보면 가끔 이런 사람을 만난다. 겉으로는 별 특징이 없다. 목소리가 큰 것도 아니고, 자기 주장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오히려 한 발 물러서는 쪽이다. 양보하고, 참고, 넘어간다. 그래서 만만해 보인다. 건드려도 될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그 사람을 함부로 대한 쪽에서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천천히가 아니라, 생각보다 빠르게. 그것도 아주 정확하게.
나는 이런 케이스를 여러 번 봤다. 직접 본 것도 있고, 상담하면서 들은 것도 있다. 처음엔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니까, 우연으로 치부하기엔 뭔가 석연치 않았다.
동양학에서는 이런 사람을 두고 원력(願力)을 갖고 태어났다고 표현한다. 쉽게 말하면, 그냥 자기 인생 잘 살려고 온 게 아니라는 뜻이다. 어떤 역할이 있다.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삶은 처음부터 가볍지 않다.
이런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어린 시절이 편하지 않았다. 또래보다 일찍 무거운 것을 졌다. 가정 문제든, 경제 문제든, 관계의 짐이든. 철이 들 나이가 아닌데 이미 철이 들어 있었다. 참는 법을 먼저 배웠다.
그리고 이들은 싸우지 않는다. 정확히는, 싸움을 피한다. 자존심 세워서 이기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착각한다. 호락호락한 줄 안다. 밀어붙이면 밀릴 줄 안다.
그런데 선을 넘는 순간, 이 사람들은 싸우는 게 아니라 그냥 떠난다. 관계를 끊는다. 조용히, 완전하게. 미련도 없고 복수도 없다. 다만 그 사람을 위해 감당해주던 몫을 더 이상 짊어지지 않을 뿐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떠나버린 사람을 함부로 대했던 쪽에서 일들이 어긋나기 시작한다. 본인은 인과관계를 모른다. 그냥 운이 안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만히 시점을 짚어보면, 그 사람을 잃은 이후부터다.
도교에서는 이걸 반좌(反坐)라고 한다. 행위가 되돌아온다는 뜻이다. 인과응보와 비슷하지만 뉘앙스가 다르다. 응보는 심판의 느낌이 있고, 반좌는 그냥 물리법칙에 가깝다. 던진 게 돌아오는 것. 거기에 선악의 판단 같은 건 없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런 사람을 알아보라는 뜻이 아니다. 솔직히 알아보기 어렵다. 겉으로 티가 나지 않으니까. 다만 한 가지는 말할 수 있다. 누군가가 참아주고 있다면, 그게 당연한 게 아니라는 것. 물러서고 있다면, 그게 약해서가 아니라는 것.
참는 사람이 계속 참을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리고 그 사람이 더 이상 참지 않기로 했을 때, 돌아오는 건 그 사람의 분노가 아니다. 그동안 그 사람이 막아주고 있던 것들이다.
세상에는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이 있다. 힘이 세서가 아니다. 그 사람이 감당하고 있는 것의 무게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