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의 교육
2008년 아시아태평양 포럼에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한국 교육에 대해 했던 말이 있다. 한국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의 교육이 퇴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동안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 않을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17년이 지난 지금, 그의 경고는 예언이 되어가고 있다.
2025년 12월, AI의 대모로 불리는 페이페이 리 스탠포드 교수가 팀 페리스 쇼에 출연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자신이 창업한 AI 스타트업 World Labs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채용할 때 학위가 예전보다 덜 중요해졌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이제는 어떤 도구를 쓰는지, 얼마나 빨리 새로운 도구로 자신을 강화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이런 도구들을 활용하는 마인드셋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녀는 한 발 더 나아가 AI 협업 도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엔지니어는 채용하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페이페이 리는 중국 베이징 출신이다. 그녀의 부모는 인터넷도 없던 시절, 영어 한마디 못하면서 16살 딸을 데리고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지금 생각하면 다른 행성으로 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그녀는 회고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녀 부모의 교육관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성적표나 상장을 집에 걸어두는 일이 전혀 없었다. 지금도 그녀의 집과 사무실에는 그런 것들이 하나도 없다. 부모는 성적이나 수상 같은 것에 관심이 없었고, 대신 딸이 무언가를 하고 싶다면 집중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동아시아의 전형적인 타이거맘과는 거리가 먼 양육 방식이었다.
그녀가 지금 말하는 교육 철학의 핵심은 이것이다. AI가 저수준 작업을 처리하는 세상에서 기존 교육 시스템에 AI를 단순히 추가하는 것은 포인트를 놓치는 것이다. 교육 자체를 재설계해야 한다. 그녀는 학생들에게 AI가 만들어낸 B-급 답변을 보여주고 그걸 이겨보라고 도전하라는 새로운 교육 방식을 제안한다. 정답을 암기하는 대신 AI를 초월하는 창의적 사고를 기르자는 것이다.
페이페이 리가 강조하는 인간 중심 AI(Human-Centered AI)는 네 가지 기둥을 제안한다. 첫째는 공감과 소통과 협업 같은 인간 중심 능력이다. AI는 데이터를 처리하고 패턴을 인식하지만, 상대방의 감정을 읽고 맥락을 파악해서 적절한 말을 건네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다. 협상 테이블에서 상대의 표정 변화를 감지하고, 팀원의 미묘한 불만을 눈치채서 선제적으로 대화를 시도하는 것, 이런 능력은 어떤 알고리즘으로도 코딩할 수 없다. 둘째는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다. AI는 기존 데이터를 기반으로 최적의 답을 제시하지만,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는지 판단하지 못한다. 왜 이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정의할 수는 없는지, 이런 메타적 사고는 인간만이 할 수 있다. 셋째는 AI 윤리와 시민 의식이다. AI가 내린 결정이 특정 집단에 불이익을 주는지, 편향된 데이터로 학습되지는 않았는지 감시하고 판단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몫이다. 넷째는 평생 학습 태도다. 기술은 계속 변한다. 한 번 배운 것으로 평생을 버틸 수 있던 시대는 끝났다. 배우고, 배운 것을 버리고, 다시 배우는 순환이 일상이 되어야 한다. 이 네 가지는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다. AI가 도구라면 인간은 그 도구를 언제, 어디에, 어떻게 쓸지 결정하는 방향타를 잡아야 한다.
기초 학력 없이 창의성만 강조하면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과 같다는 반론이 있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그러나 질문을 바꿔보자. 현재 교육 체계가 정말로 기초 학력을 가르치고 있는가. 기초 학력이란 무엇인가. 수학 공식을 외우는 것인가, 아니면 수학적 사고방식을 체득하는 것인가. 역사적 사건의 연도를 암기하는 것인가, 아니면 역사가 왜 그렇게 흘러갔는지 인과관계를 이해하는 것인가. 현재 한국 교육은 전자에 최적화되어 있다. 시험에 나올 내용을 암기하고, 정해진 유형의 문제를 반복적으로 풀어서 점수를 높이는 훈련이다. 이것은 기초 학력이 아니라 시험 기술이다.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표면적 지식만 쌓는 것은 AI 시대에 가장 먼저 쓸모없어질 능력이다. AI가 이미 그 일을 인간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해내기 때문이다.
한국의 빠른 경제 성장이 교육열 덕분이라는 믿음도 있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는 맞는 말이었을 수 있다. 산업화 시대에는 지시를 정확히 따르고, 정해진 공정을 빠르게 반복하고, 실수 없이 업무를 처리하는 인력이 필요했다. 암기 중심 교육은 그런 인력을 대량 생산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그 시대는 끝났다. 그때의 교육열로 만들어진 인재상이 지금도 유효한지 현실을 보자.
2021년 LG전자는 26년간 운영해온 스마트폰 사업을 철수했다. 23분기 연속 적자, 누적 손실 5조 원이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남기고 시장에서 퇴장했다. LG전자가 기술이 없어서 망한 것이 아니다.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했을 때 LG전자의 휴대폰 시장 점유율은 세계 3위였다. 당시 경영진은 해외 컨설팅 업체의 기다리며 지켜보라는 조언을 받아들였다. 피처폰 사업이 잘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시장 선점의 중요성을 가볍게 여긴 대가를 치렀다. 노키아도 마찬가지다. 1996년 세계 최초 스마트폰을 출시하고, 2000년대 초반에 이미 터치스크린 태블릿을 개발한 기업이 애플보다 10년 앞서 혁신의 문 앞에 섰다가 그 문을 열지 않고 돌아섰다. 기존 피처폰 시장의 기득권을 지키려다 모든 것을 잃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지금 일어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24년부터 AI 반도체의 핵심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경쟁사 SK하이닉스에 1년 이상 기술 격차로 뒤처져 있다. 세계 AI 반도체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는 엔비디아에 HBM3E 납품을 위한 품질 테스트를 1년 넘게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과거 HBM의 수익성을 낮게 판단하고 관련 조직을 축소하며 투자를 줄인 것을 패착으로 꼽는다.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라는 타이틀에 안주하다가 AI 시대의 핵심 부품 경쟁에서 뒤처진 것이다. 2019년에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한국을 방문해 삼성전자에 HBM 공동 개발, 파운드리 기술 협력, CUDA 생태계 공동 육성이라는 세 가지 제안을 했지만 삼성 경영진은 모두 거절했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삼성은 이재용 회장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어서 장기적 의사결정이 어려웠다는 분석도 있다. 젠슨 황은 삼성에 나와 장기 사업 전략을 논의할 사람이 없다고 판단하고 곧바로 SK하이닉스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이 사례들이 보여주는 것은 명확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가진 기업들도 기존 성공 방식에 집착하고 변화의 신호를 무시하면 순식간에 무너진다. 코닥은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하고도 필름 사업을 보호하려다 2012년 파산했다. 제록스는 최초로 PC를 발명하고도 복사기 사업에 매달리다 기회를 놓쳤다. 이 기업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뛰어난 엔지니어들이 있었고, 시장 변화를 감지하고 있었고, 심지어 관련 기술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행하지 못했다. 기존 질서에서 이익을 보는 내부 조직의 저항, 새로운 시도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현재 잘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업에 대한 집착이 발목을 잡았다. 이것이 바로 암기 중심 교육이 만들어낸 인재상의 한계다. 정해진 답을 빠르게 찾는 훈련은 받았지만, 답이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훈련은 받지 못했다.
한국의 교육 현실을 보자. 고등학생들은 평균 13시간에서 15시간을 학교에서 보내고, 보통 밤 10시가 되어서야 집에 간다. 2023년 기준 사교육비 총액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학생들은 중간고사 한 달 전부터 시험 준비에 들어가고, 교사들은 민원을 피하기 위해 정답이 딱딱 떨어지는 객관식 문제만 출제한다. 창의성이나 비판적 사고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한국교육종단연구에 따르면 중고교 교육과정에서 청소년의 협동심은 저하되고 창의성은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이 시스템의 기득권자들이다. 명문대 졸업장은 여전히 취업과 결혼 시장에서 프리미엄으로 작동한다. 사교육 산업은 연간 수십조 원 규모로 성장했다. 대학들은 입시 전형권을 쥐고 있고, 고등학교들은 대학 진학률로 평가받는다. 이들에게 교육 개혁은 자신들의 밥그릇을 깨는 일이다. 시스템이 바뀌면 가장 먼저 타격받는 것은 기존 질서에서 이익을 보던 계층이다. 노키아 경영진이 스마트폰 혁신을 알면서도 피처폰 사업부의 저항을 넘지 못한 것처럼, 한국 교육 시스템도 같은 구조적 함정에 빠져 있다.
토플러가 말했듯 공교육 시스템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경제를 위한 노동력을 생산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우리는 최선의 의도로 아이들의 미래를 훔치고 있는 것이다. 21세기 문맹은 읽고 쓸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고, 배운 것을 버리고, 다시 배울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토플러는 말했다. AI 시대의 교육은 정답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어야 한다. 문제는 그 전환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 것인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