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tune

천명을 거스를 수 없는 이유

운명이란 무엇인가. 정해진 수를 거스를 수 없다는 말은 예로부터 있었다. 흥하면 쇠하고, 차면 기우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규칙을 꿰뚫어 보았다 한들 그 규칙을 깨뜨릴 수는 없고, 인과를 깨달았다 한들 그 인과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천지는 용광로요, 조화는 대장장이며, 뭇 생명은 그 안에서 달궈지는 쇳덩이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 거대한 화로 속에서 구르고 녹아내리면서도, 정작 그 불을 다루는 자가 누구인지, 그 의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옛이야기가 하나 있다. 중국에는 사도인이라는 존재가 전해 내려온다. 이들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칼을 외상으로 맡기고 떠나는데, 칼값을 받으러 오는 시점은 몇 년 뒤, 혹은 몇십 년 뒤다. 그리고 그 시점에는 반드시 세상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쌀값이 폭등하거나, 전쟁이 나거나, 왕조가 바뀌거나. 사도인은 그 변화를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정확히 그때 나타나 칼값을 받아간다. 사람들은 그래서 사도인을 미래를 아는 자, 혹은 하늘의 뜻을 읽는 자라고 여겼다.

그런 사도인이 어느 절을 찾아가 노승에게 칼을 하나 맡기겠다고 했다. 노승은 평생 계율을 지켜온 몸이라 피가 묻는 물건은 받지 않겠다고 거절했다. 사도인이 말했다. 이 칼은 사람을 죽이라고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라고 주는 것이다. 사 년 뒤 몽골 대군이 남하하면 송나라의 기운은 다할 것이고, 백성들이 떠돌 때 칼이 있어야 제 몸을 지킬 수 있다고. 노승이 물었다. 그것을 어찌 아느냐고. 사도인이 답했다. 천상이 이미 변했으니 인간사는 알 수 있다고. 노승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칼을 받았다. 그것도 자비라면 자비라고.

판 안에 있으면서 판을 알기는 어렵다. 판의 전모를 알았을 때는 이미 제 몸이 판 안에 깊이 들어와 있다. 빠져나오려 하면 인과가 제 발목을 붙잡고, 입을 열어 말하려 하면 이미 수많은 이들이 바둑판 위에 놓인 돌이 되어 있다. 조정이든 민간이든, 높은 자리든 낮은 자리든, 각자의 계산과 욕심이 소용돌이치지만 결국 모두 누군가의 말에 불과하다.

인과를 안다는 것과 인과를 바꾼다는 것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다. 사람들은 인과를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으로는 믿지 못한다. 내 삶에 정말 그런 법칙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설령 믿는다 해도 그것을 어떻게 바꾸는지 알지 못한다. 세상에는 운명을 바꾼다는 방법론이 수없이 많다. 어떤 것을 하라, 어떤 것을 피하라, 이렇게 살면 좋아진다. 사람들은 그중 몇 가지를 시도해 본다. 그런데 효과가 없다. 여기서 갈림길이 나타난다. 왜 효과가 없는지를 파고드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은 그냥 안 되는구나, 하고 멈춘다. 방법이 틀렸는지, 내가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더 근본적인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인지 묻지 않는다. 그래서 운명은 바뀌지 않는다.

지구라는 이름의 게임은 사실 여러 힌트를 준다. 큰 흐름이 바뀔 때마다 징조가 나타나고,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경고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믿는다 해도 무엇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바꾸려 해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인지, 아니면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정말 모르기 때문인지.

그래서 이것을 운명이라 부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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