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oist cultivation

얻는 것, 잃는 것

나이가 들수록 한 가지 생각이 선명해진다. 무언가를 손에 쥐는 순간, 다른 무언가는 손에서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2011년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났을 때, 사람들은 그가 가진 것들을 열거했다. 혁신의 아이콘, 세계 최고 기업의 창업자, 수백억 달러의 자산. 그러나 그의 딸 리사 브레넌 잡스가 쓴 회고록을 보면 다른 풍경이 드러난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던 기억, 함께 보내지 못한 시간들, 복잡하게 얽힌 가족 관계. 잡스 본인도 말년에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자신이 가장 후회하는 것은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이라고. 그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무언가를 지불했고, 그 대가가 무엇이었는지 나중에야 깨달았다.

도가에서 말하는 도법자연은 이런 이치를 담고 있다. 자연은 스스로 균형을 찾아간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세상의 모든 것은 평형을 향해 움직인다. 한쪽이 지나치게 높아지면 다른 쪽이 낮아지고, 한쪽이 채워지면 다른 쪽이 비워진다. 이것은 축복도 저주도 아닌, 그저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이다.

문제는 얻는 것만 보고 잃는 것을 보지 못하는 데서 시작된다. 승진을 축하받을 때 줄어든 가족과의 저녁 식사를 세어보는 사람은 드물다. 큰 계약을 성사시키고 건배할 때 닳아가는 건강을 돌아보는 사람도 많지 않다. 얻음에 취해 있을 때 잃음은 소리 없이 진행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직장을 잃은 한 미국인 프로그래머가 있었다. 실업 기간 동안 그는 어쩔 수 없이 집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고, 우연히 비트코인 초기 커뮤니티에 참여하게 됐다. 당시에는 그저 무료했던 시간을 때우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가 잃은 직장이 준 빈 시간은 나중에 전혀 다른 것으로 돌아왔다. 물론 모든 실직이 이런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잃음 속에 숨어 있는 얻음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느냐의 문제다.

사람이 망하는 패턴을 관찰해보면 공통점이 있다. 전부 가지려 한다. 돈도 명예도 건강도 인간관계도 취미도 전부 최고 수준으로 유지하려 한다. 이것이 가능할 것 같은 시기가 있다. 체력이 넘치는 젊은 날, 운이 따르는 시절에는 정말 모든 것을 손에 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세상은 결국 장부를 맞춘다. 잠을 줄여가며 일했던 시간은 나중에 건강의 청구서로 돌아오고, 관계에 소홀했던 대가는 어느 순간 텅 빈 주소록으로 나타난다.

흥미로운 것은 배우자를 찾는 일에서도 같은 원리가 작동한다는 점이다. 조건을 체크리스트처럼 나열하는 사람들이 있다. 외모, 학벌, 직업, 집안, 성격, 취미까지 모든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사람을 찾으려 한다. 그런 완벽한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 사람 역시 체크리스트를 들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조건만큼이나 높은 기준으로 상대를 평가하고 있을 것이다. 다 가진 사람을 원하면서 정작 자신은 무엇을 내어줄 수 있는가를 묻지 않는 모순. 이 모순 속에서 많은 인연이 스쳐 지나간다.

얻었을 때 무엇을 잃었나 생각하는 습관. 잃었을 때 무엇을 얻었나 생각하는 습관. 이것은 비관도 낙관도 아니다. 그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노력이다. 균형은 깨뜨리려 해도 결국 제자리를 찾아간다. 높이 올라간 것은 내려오게 되어 있고, 깊이 내려간 것은 올라오게 되어 있다. 노자가 말한 대로, 曲則全 왜곡되어야 온전해지고, 枉則直 굽어야 곧아진다.

왜 전부 가질 수 없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이 이 세계의 문법이라고밖에 답할 수 없다. 숨을 들이쉬면 내쉬어야 하고, 낮이 지나면 밤이 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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