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양기
환율이 1480원을 넘었다. 경상수지는 흑자다. 무역수지도 흑자다. 숫자만 보면 돈이 들어오고 있는데, 정작 원화는 바닥을 기고 있다. 경제학 교과서가 말하는 공식이 작동하지 않는다. 흑자면 통화가 강해져야 하는데, 현실은 정반대다.
시장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한국인들이 번 달러를 한국에 두지 않는다. 서학개미라 불리는 개인 투자자들이 연간 수백억 달러를 미국 주식에 넣는다. 국민연금도 해외 자산을 늘린다. 기업들은 수출로 번 돈을 국내에 환전하지 않고 그대로 해외에 재투자한다. 돈은 벌지만 그 돈이 한국 땅에 머물지 않는다.

왜 그런가. 두려움 때문이다.
도교에서는 인간의 양기(陽氣)가 두려움에 의해 소진된다고 본다. 공포는 신장의 기운을 손상시키고, 신장이 약해지면 온몸의 양기가 뿌리를 잃는다.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고 약을 먹어도 마음속에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으면 기운이 새어나간다. 밑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다.
국가도 다르지 않다. 한국이라는 경제체의 양기가 새고 있다. 경상수지 흑자는 몸에 영양분이 들어오는 것과 같은데, 그 영양분이 피가 되어 온몸을 돌기 전에 밖으로 빠져나간다. 사람들이 이 나라의 미래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는 불안하고, 정책은 수시로 바뀌고, 다음에 무슨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돈이 들어와도 머물지 않고 떠난다.
외환위기 때는 달러가 없어서 문제였다. 지금은 달러가 들어오는데도 머물지 않아서 문제다. 본질적으로 다른 종류의 위기다. 1997년에는 외부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해서 쓰러졌다면, 지금은 내부에서 번 돈이 스스로 도망가고 있다. 남에게 버림받은 것과 스스로를 버리는 것은 다르다.
서학개미라는 말이 있다. 한국 개인 투자자들이 미국 주식에 몰리는 현상을 부르는 이름이다. 왜 한국 사람들이 한국 주식을 사지 않고 미국 주식을 사는가. 애국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한국 주식시장에서는 장기 투자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 시장은 널뛴다. 오늘 급등하고 내일 급락한다. 뉴스 하나에 패닉이 오고, 루머 하나에 폭등한다. 투자가 아니라 투기판이다. 미국에서는 좋은 기업 주식을 사서 10년을 묻어두면 복리로 자산이 불어난다. 한국에서 같은 짓을 하면 반토막이 나거나, 운이 좋아야 본전이다. 사람들이 바보가 아니다. 돈이 불어나는 곳에 돈을 넣는다.
국민연금도 마찬가지다. 국민연금 기금은 이제 천조 원을 넘었다. 이 거대한 돈덩어리가 한국 주식시장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가. 시장이 감당을 못 한다. 한국 주식시장의 전체 시가총액이 약 2000조 원 남짓이다. 국민연금이 조금만 사도 주가가 뛴다. 조금만 팔아도 주가가 곤두박질친다. 자기가 사면 비싸지고, 자기가 팔면 싸진다. 물리기 딱 좋은 구조다. 덩치가 커질수록 한국 시장에서 움직이기 어려워진다. 그러니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다. 미국 시장은 시가총액이 경이적이다. 국민연금이 수십조를 넣어도 시장이 꿈쩍하지 않는다. 조용히 들어가서 조용히 나올 수 있다.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다.
결국 한국의 돈이 한국에 머물 수 없는 구조다. 개인도 기관도 마찬가지다. 시장이 작고, 변동성이 크고, 예측이 안 된다. 돈은 안정을 찾아 흐른다. 한국은 안정적이지 않다.
신뢰의 문제는 여기서 더 복잡해진다. 한국인들에게는 당연한 것이 외국인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된다. 한국에는 민심이라는 것이 있다. 국민 정서가 움직이면 법도 바뀌고 정책도 뒤집힌다. 한국인들은 이것을 민주주의의 역동성이라 생각한다. 거리에 촛불이 켜지면 대통령도 물러난다. 여론이 들끓으면 멀쩡히 진행되던 사업도 중단된다. 한국인들에게 이것은 정상이다. 권력이 국민 위에 군림하지 못하게 하는 안전장치다.
그런데 국제 자본의 눈에는 이것이 전혀 다르게 보인다. 론스타 사태를 기억하는가. 2003년 외환은행을 인수한 론스타는 2012년 매각 차익을 거두려 했다. 그런데 한국 법원이 매각을 불허했다. 검찰이 수사에 나섰고, 여론은 먹튀 자본이라며 들끓었다. 결국 론스타는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 중재를 신청했고, 2022년 한국은 패소해 수조 원을 배상해야 했다. 한국인들 입장에서 론스타는 헐값에 은행을 사서 비싸게 팔아먹으려 한 탐욕스러운 외국 자본이었다. 분노할 만했다. 그러나 국제 투자자들이 본 것은 달랐다. 계약대로 했는데 여론이 바뀌니까 약속이 뒤집히는 나라. 법보다 민심이 우선하는 나라. 투자했다가 돈을 벌면 빼앗기는 나라.
비슷한 일은 계속 반복된다. 제주 영리병원 사업은 허가가 났다가 여론이 악화되자 취소됐다. 원전 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180도 뒤집힌다. 탈원전을 선언했다가 다시 원전 강국을 외친다. 규제는 예고 없이 생겼다가 사라진다. 한국인들에게 이것은 민주적 의사결정의 과정이다. 정권이 바뀌면 정책이 바뀌는 것은 당연하다. 국민이 원하면 방향을 수정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10년 단위로 투자를 계획하는 외국 자본에게 이것은 악몽이다. 오늘 합법인 것이 내일 불법이 될 수 있다. 지금 환영받는 투자가 내년에는 규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계약서에 사인을 받아도 그것이 지켜질지 알 수 없다. 민심이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뀌기 때문이다. 예측이 불가능하다. 예측이 불가능하면 투자할 수 없다.
한국인들이 느끼는 정당한 분노와 국제 자본이 느끼는 불안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있다. 한국인들은 외국 자본이 돈만 벌어가려 한다고 생각한다. 외국 자본은 한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둘 다 자기 입장에서는 맞는 말이다. 문제는 이 간극이 좁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좁혀질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한의학에서 허증(虛症)을 치료할 때 단순히 보약을 쓰지 않는다. 먼저 새는 구멍을 막아야 한다. 아무리 기운을 보충해도 새는 곳이 있으면 소용없다. 지금 한국 경제에 필요한 것은 금리 조정이나 외환 스와프 같은 기술적 처방이 아니다. 사람들이 왜 두려워하는지, 왜 이 나라에 돈을 두기 싫어하는지를 봐야 한다.
두려움의 근원은 신뢰의 부재다.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것. 규칙이 언제 바뀔지 모른다는 것. 지킬 것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 사람의 몸에서 양기가 빠지는 것도 결국 마음이 안정되지 못해서다. 마음이 흔들리면 기운이 모이지 않고 흩어진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숫자는 나쁘지 않다. 수출도 하고, 흑자도 낸다. 그런데 그 숫자들이 힘이 되지 못한다. 흑자를 내는 나라의 통화가 왜 이렇게 약한가. 답은 이미 시장이 말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