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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론의 함정과 체험으로서의 인생

역술인들이 운명을 설명할 때 자주 쓰는 비유가 있다. 사주는 자동차이고 대운은 도로라는 식이다. 초보자에게는 직관적으로 이해가 쉬운 설명이지만, 실제 운명의 작동 방식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특히 인간이 삶을 체감하는 각도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명리학에서 용신(用神), 기신(忌神) 같은 개념들을 가르치지만, 그 실제 작용은 훨씬 복잡하다. 인생에 완전히 좋기만 한 것이 존재하는가. 무언가 좋은 것이 있으면 그로 인한 반작용이 반드시 존재한다. 부작용도 따라온다.

큰 재물을 얻으면 그것을 지키는 불안이 생긴다. 높은 자리에 오르면 추락의 두려움이 커진다. 명예를 얻으면 그 명예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한다는 압박이 따른다. 좋은 것의 이면에는 언제나 그림자가 있다.

문제는 그 부작용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받아들이느냐인데, 이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같은 상황도 누군가에게는 고통이고 누군가에게는 수행의 기회가 된다.

명이 중요한가, 운이 중요한가. 이런 질문을 자주 받지만 사실 어리석은 질문에 속한다. 명이 극단적으로 좋으면 운이 무시될 수 있다. 타고난 재능이 워낙 뛰어나면 시대가 나빠도 빛을 발한다. 반대로 운이 극단적으로 좋으면 명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시대의 파도가 워낙 크면 평범한 사람도 높이 올라간다.

그러나 둘을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운조차도 명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어떤 운이 오느냐는 이미 사주 안에 씌어 있다.

운이 가면 영웅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항우가 해하(垓下)에서 패한 것은 그의 용맹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시운(時運)이 다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운이 가면 인생이 끝장인가. 그렇지는 않다.

수행을 하게 되면 중요했던 것이 사라진다. 집착이 사라진다. 그렇게 운명에서 자유로워진다.

재격(財格)인 사람은 재(財)가 너무나 중요하다. 재에 집착한다. 돈을 벌면 기쁘고 잃으면 괴롭다. 그러면서 희노애락을 경험한다. 재물이 그의 감정을 좌우한다. 그러나 수행을 하다 보면 재를 추구하되 집착하지 않게 된다. 돈을 벌되 그것에 매이지 않는다. 그러면서 오히려 더 얻을 수 있게 된다. 집착이 사라지니 판단이 명확해지고, 판단이 명확해지니 실수가 줄어든다.

관격(官格)인 사람도 마찬가지다. 지위와 권력에 집착하면 그것을 잃을까 두려워 비굴해진다. 그러나 집착을 내려놓으면 오히려 더 큰 권위를 얻는다. 두려움이 없으니 당당하고, 당당하니 사람들이 따른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공명과 이득의 각도로 인생을 심판한다면 좋은 사주와 나쁜 사주, 좋은 운과 나쁨 운이 분명 존재한다. 재물을 많이 모은 사람,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 명예를 얻은 사람을 좋은 사주라 부른다. 가난하고 낮은 자리에 머문 사람을 나쁜 사주라 부른다.

그러나 인생은 체험이다. 체험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고, 체험 과정에서 무엇을 배우느냐가 중요하다.

가난을 경험한 사람은 물질의 소중함을 안다. 실패를 경험한 사람은 겸손을 배운다. 배신을 당한 사람은 진심을 구별하는 눈을 얻는다. 고통을 겪은 사람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한다. 이런 것들은 돈으로 살 수 없고 책으로 배울 수 없다. 오직 직접 겪어야만 얻을 수 있는 지혜다.

순탄한 인생을 산 사람은 타인의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한다. 늘 성공만 한 사람은 실패자를 업신여긴다. 아픔을 모르는 사람은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 그의 사주가 아무리 좋아도 그는 인간으로서 온전하지 못하다.

각도를 바꿔서 보라는 이야기다. 그러면 어떤 인생도 살아볼 만한 인생이 된다. 좋은 사주를 타고났다면 그 복을 누리면서 교만을 경계하는 수행을 하면 된다. 나쁜 사주를 타고났다면 고난을 겪으면서 집착을 내려놓는 수행을 하면 된다.

결국 어느 쪽이든 수행의 장(場)이다. 문제는 그것을 알아차리느냐 모르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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