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oist cultivation

찰리 멍거의 삶과 수행

1924년 1월 1일부터 2023년 11월 28일까지, 99년 11개월을 산 사람이 있다. 워렌 버핏의 파트너로 알려진 찰리 멍거(Charlie Munger)다. 억만장자였지만,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수행자의 그것과 닮아 있다.

수행(修行)이란 무엇인가. 도교에서는 수심양성(修心養性), 마음을 닦고 본성을 기른다고 말한다.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본질에 집중하며,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멍거의 99년은 그 정의에 정확히 부합한다.

검소 : 무욕(無慾)의 실천

멍거는 로스앤젤레스의 오래된 집에서 평생을 살았다. 에어컨도 없었다. 순자산이 26억 달러(약 3조 5천억 원)를 넘었는데도 그랬다.

그는 말했다. “돈이 많다고 집을 바꿀 이유가 없다.”

도덕경(道德經) 제12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오색령인목맹(五色令人目盲), 오음령인이롱(五音令人耳聾). 다섯 가지 색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다섯 가지 소리는 사람의 귀를 먹게 한다. 화려함을 쫓으면 본질을 보는 눈이 흐려진다는 뜻이다.

멍거는 화려함을 쫓지 않았다. 집은 잠자고 책 읽는 공간이면 충분했다. 거기에 더 투자할 이유가 없었다. 이것은 검소함이 아니라 무욕(無慾)의 실천이다. 욕망이 없으니 더 가질 필요가 없다.

수행자들이 산속 암자에서 사는 이유도 같다. 필요한 것만 있으면 된다. 나머지는 수행을 방해할 뿐이다.

음식 : 순기자연(順其自然)

억만장자의 식단이라면 미슐랭 레스토랑을 떠올리기 쉽다. 멍거의 현실은 달랐다.

코스트코 핫도그 1.50달러. 인앤아웃 더블더블 버거. 다이어트 콜라. 건강 식단을 권유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완강했다. “맛있는 건 다 먹는다”가 철칙이었다.

손부(孫婦)가 해주는 스팸 볶음밥을 극찬했고, 마지막 배달 음식은 한국식 프라이드치킨과 김치볶음밥이었다. 99세 노인의 마지막 식사가 치킨과 김치볶음밥이라니.

언뜻 보면 수행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러나 도교의 관점에서 보면 다르다. 순기자연(順其自然), 자연스러움을 따른다는 것이다. 억지로 절제하는 것도 욕망이다. 건강해지고 싶다는 욕망, 오래 살고 싶다는 욕망.

멍거는 먹고 싶은 걸 먹었다. 그것이 그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장자(莊子)가 말한 소요유(逍遙遊), 구속 없이 노니는 경지가 음식에서 드러난다. 다이어트 콜라를 하루 종일 마시면서 “다이어트 콜라 덕분에 오래 산다”고 농담한 사람이다. 그리고 실제로 99년 11개월을 살았다.

독서 :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수행

멍거를 설명하는 가장 핵심적인 단어는 독서(讀書)다.

하루 4시간에서 8시간을 책에 할애했다. 역사, 과학, 심리학, 전기(傳記)를 가리지 않았다. 90대 후반까지 최신 논문과 기술 트렌드를 공부했다.

죽기 1~2주 전, 그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무어의 법칙(Moore’s Law)이 AI 시대에도 적용될까?”

99세 노인이 반도체 집적도의 법칙과 인공지능의 미래를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수행이다.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앎에 이른다. 유가(儒家)의 개념이지만, 도교의 수행과도 통한다. 도(道)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세상의 이치를 알아야 한다. 천지만물의 운행 원리를 이해해야 도에 가까워진다.

멍거는 이것을 “끊임없는 학습 기계(learning machine)”가 되는 것이라고 불렀다. 그의 격언이 있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배우는 것을 멈추지 말라.”

도교 수행자들이 경전을 읽고 또 읽는 것과 같다. 멍거에게 책은 경전이었다. 매일 4시간에서 8시간, 99년 동안. 이것이 수행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운동 거부 : 정공(靜功)의 선택

멍거는 운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운동은 시간 낭비”라는 게 그의 입장이었다. 대신 매일 산책하며 생각했다.

도교 수행에는 동공(動功)과 정공(靜功)이 있다. 동공은 몸을 움직여 기(氣)를 순환시키는 것이고, 정공은 고요히 앉아 마음을 닦는 것이다. 태극권(太極拳)이 동공이라면, 좌망(坐忘)이 정공이다.

멍거는 정공을 택했다. 그에게 몸을 움직이는 행위는 두뇌를 위한 것이었지, 근육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산책은 운동이 아니라 사색의 연장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소요학파(Peripatetic school)가 걸으며 가르쳤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걷는 것과 생각하는 것은 연결되어 있다. 멍거의 산책도 같은 맥락이다. 몸은 최소한만 움직이고, 정신에 에너지를 집중한다.

시간 관리 : 청정무위(清淨無爲)

멍거는 불필요한 회의나 사교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사람들과만 만났고, 나머지는 과감히 끊었다.

이것은 청정무위(清淨無爲)의 실천이다. 맑고 고요하게, 억지로 하지 않는다. 무위(無爲)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불필요한 것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멍거의 기회비용(opportunity cost) 사고방식이 여기에 해당한다. 의미 없는 만남에 쓰는 1시간은 책을 읽거나 생각할 1시간을 빼앗는다. 그래서 안 한다. 단순하다.

도덕경 제48장. 위학일익(爲學日益), 위도일손(爲道日損). 학문을 하면 날마다 늘어나고, 도를 닦으면 날마다 덜어낸다. 덜고 또 덜어서 무위(無爲)에 이른다.

멍거는 날마다 덜어냈다. 불필요한 관계, 불필요한 활동, 불필요한 소유. 남은 것은 독서, 투자,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들뿐이었다.

투자 : 허이대물(虛而待物)

2023년, 99세의 멍거는 석탄주에 집중 투자했다. 콘솔 에너지(Consol Energy)와 알파 메탈러지컬(Alpha Metallurgical Resources)이었다.

석탄은 사양산업이다. ESG 투자가 대세인 시대에 석탄이라니.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멍거의 논리는 단순했다. “사양산업이라 싸다. 에너지 수요가 폭발하면 올라간다.”

그의 사망 시점, 이 투자의 수익은 약 7,300억 원대로 추정되었다.

이것이 허이대물(虛而待物)이다. 비우고 기다려서 사물을 맞이한다. 장자 응제왕편(應帝王篇)에 나오는 개념이다. 마음을 비우면 세상의 진짜 모습이 보인다. 편견이 없으면 기회가 보인다.

남들이 석탄을 버릴 때 멍거는 석탄을 보았다. 그의 눈에는 사양산업이 아니라 저평가된 자산이 보였다. 마음을 비웠기 때문이다.

역발상(逆發想, contrarian thinking)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본질은 같다. 세상의 소음에 휩쓸리지 않고, 본질을 보는 것이다.

수면 : 양생(養生)의 기본

밤 10시에서 11시 사이에 취침하고, 아침 6시에서 7시 사이에 기상했다. 90대 후반까지 이 패턴을 유지했다.

도교 양생술(養生術)의 기본은 규칙적인 생활이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쉰다. 자연의 리듬에 맞춰 산다. 황제내경(黃帝內經)에서는 이것을 법어음양(法於陰陽), 음양의 법칙을 따른다고 표현한다.

멍거는 특별한 양생법을 쓰지 않았다. 그냥 규칙적으로 잤다. 그것이 가장 기본적인 양생이다. 기교를 부리지 않고 기본을 지킨다. 이것도 수행이다.

인간관계의 변화 : 좌망(坐忘)의 경지

젊은 시절의 멍거는 독설가로 유명했다. 어리석은 질문에는 가차 없는 비판이 돌아왔다.

그러나 90대에 접어들면서 그는 달라졌다. “다시 86살이 될 수만 있다면…”이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인간미가 넘쳐흘렀다.

이것은 좌망(坐忘)의 경지에 가까워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좌망은 앉아서 잊는다는 뜻이다. 장자 대종사편(大宗師篇)에 나온다. 지체를 잊고, 총명을 버리고, 형체를 떠나 지식을 없애서 대통(大通)과 하나가 된다.

젊을 때의 멍거는 날카로웠다. 옳고 그름이 분명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그 경계가 흐려졌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 자체가 덜 중요해졌다. 남은 것은 따뜻함이었다.

죽기 며칠 전, 그는 병실의 모든 사람을 내보내고 버핏과 단둘이 마지막 통화를 나눴다. 70년 파트너십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그 통화의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죽음 : 안시처순(安時處順)

멍거는 100번째 생일 파티를 기대했다. “100번째 생일 파티가 너무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결국 35일이 모자랐다.

그러나 그는 죽음 앞에서 담담했다. “나는 이미 86살을 두 번 살았다”고 말했고, 죽기 직전까지 “다음에 뭐가 재미있을까”를 궁금해했다.

장자 양생주편(養生主篇)에 안시처순(安時處順)이라는 말이 나온다. 때를 편안히 여기고 순리에 처한다. 삶이 오면 삶을 살고, 죽음이 오면 죽음을 맞는다. 거부하지 않는다.

멍거는 죽음을 거부하지 않았다.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그냥 다음에 뭐가 재미있을지 궁금해했다. 이것이 안시처순이다.

명리학적 해석 : 수행의 명(命)

멍거의 사주를 보면 그가 왜 이런 삶을 살았는지 이해된다.

년주 : 계해(癸亥) 월주 : 갑자(甲子) 일주 : 기묘(己卯) 시주 : 병인(丙寅) – 추정

일주 기토(己土)는 전원의 흙이다. 온화하고 겸손하며 만물을 품어 키우는 성질이 있다. 그러나 한겨울 자월(子月)에 태어났다. 천한지동(天寒地凍), 하늘은 차갑고 땅은 얼어붙은 시기다.

년주 계해(癸亥)와 월지 자수(子水)는 재성(財星)이다. 재물 기회가 넘친다. 일지 묘목(卯木)은 칠살(七殺)로 일주를 공격한다. 사업 압력과 위험이 크다. 그런데 일주 기토는 지지(地支)에 뿌리가 없다. 신약(身弱), 몸이 약하다.

재왕살강이신극약(財旺殺強而身極弱). 기회는 넘치고 압박은 거세지만, 감당할 힘이 부족하다. 체력 약한 수행자가 험한 산을 오르는 격이다.

시주 병화(丙火)가 이 문제를 해결한다. 병화는 태양이고 정인(正印)이다. 얼어붙은 논밭에 태양이 떠오른 것이다. 조후(調候)가 해결되고, 관살(官殺)의 공격이 인성(印星)으로 전환된다.

살인상생(殺印相生). 외부의 압력과 위험을 지혜로 전환해서 자신의 에너지로 만든다. 이것이 멍거 투자의 본질이고, 그의 수행의 본질이다.

신약(身弱)한 사람은 힘으로 밀어붙일 수 없다. 생각으로 이겨야 한다. 멍거가 평생 독서에 매진한 이유가 여기 있다. 그에게 독서는 취미가 아니라 생존 전략이었다. 명(命)이 정해준 길이었다.

대운(大運)을 보면 48세 이후 기미(己未), 무오(戊午), 정사(丁巳) 대운으로 흐른다. 모두 화토(火土) 운이다. 용신(用神)이 작동하는 시기다. 1978년 무오년(戊午年)에 버크셔 해서웨이 부회장이 되었다.

만년의 화토 대운은 조후 역할도 계속했다. 차가운 수기(水氣)를 따뜻하게 데워 생기를 유지시켰다. 99년 11개월 장수의 배경이다.

에어컨 없는 집에서 코스트코 핫도그를 먹고, 다이어트 콜라를 마시며, 석탄주를 사서 7천억을 벌고, 죽기 직전까지 AI의 미래를 궁금해한 사람.

그는 스스로를 수행자라고 부르지 않았다. 도교 경전을 읽었다는 기록도 없다. 그러나 그의 삶은 수행 그 자체였다.

무욕(無慾), 순기자연(順其自然), 격물치지(格物致知), 청정무위(清淨無爲), 허이대물(虛而待物), 안시처순(安時處順).

도교의 핵심 개념들이 그의 삶에 그대로 녹아 있다. 의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그렇게 살았을 뿐이다. 그것이 진짜 수행이다. 수행한다고 의식하지 않으면서 수행하는 것.

99년 11개월의 삶이 남긴 건 단순한 교훈이 아니다. 하나의 질문이다.

당신의 일상은 수행인가, 소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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