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sdom

당신은 선량하지 않다

1950년대 시카고 범죄조직의 우두머리 알 카포네(Al Capone)는 법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했을 뿐이다. 내가 한 일의 대부분은 공공선을 위한 것이었다.” 그는 밀주 판매, 살인 교사, 공갈 등으로 기소되었지만, 자신을 선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심지어 대공황 시기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며 자선가로 보이려 했다.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Roy Baumeister)는 1996년 발표한 연구 “Evil: Inside Human Violence and Cruelty”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밝혔다. 가해자의 89%가 자신의 폭력 행위를 정당하거나 필요한 것으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학교 폭력 가해 학생들을 인터뷰하면 “쟤가 먼저 시비를 걸었다”, “교육이 필요했다”는 식의 답변이 돌아온다.

우리는 자신을 선한 사람으로 본다. 거의 모든 사람이 그렇다. 2001년 스탠퍼드 대학의 연구팀이 500명의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 그들 중 대부분이 자신을 평균 이상으로 도덕적이라고 평가했다. 살인, 강도, 사기를 저지른 이들조차 말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인간의 뇌는 자기보호 기제(self-serving bias)로 작동한다. 인지부조화 이론의 창시자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가 밝혔듯, 우리는 자신의 행동과 믿음이 충돌할 때 견딜 수 없는 불편함을 느낀다. 그래서 뇌는 행동을 바꾸는 대신 해석을 바꾼다. “나는 선한 사람이다”라는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 악한 행동을 선한 것으로 재해석한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선한 것 아닌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2019년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 성인의 73%가 도덕성을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으로 정의했다. 그러나 이것은 선의 최저 기준일 뿐이다. 도로에서 사람을 치지 않는다고 해서 좋은 운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무위(無爲)를 선으로 착각하는 경우다. 도덕 심리학자 조나단 하이트(Jonathan Haidt)는 “The Righteous Mind”에서 행위의 도덕성이 의도와 결과의 조합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나쁜 일을 하지 않음”을 “좋은 일을 함”과 동일시한다. 길에서 쓰러진 사람을 보고 지나치는 것, 부당함을 목격하고 침묵하는 것, 이것들은 직접적 가해는 아니지만 선한 행위도 아니다.

도교의 수행론은 이 지점에서 날카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장자(莊子)는 “외물편(外物篇)”에서 “지인무기(至人無己)”를 말한다. 지극한 경지에 이른 사람은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다. 수행의 첫 단계는 자신을 제대로 보는 것, 즉 관조(觀照)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마음의 거울에 먼지가 끼어있는데, 그 먼지를 통해 자신을 본다. 그래서 왜곡된 자아상을 갖게 된다.

도교 수행자들이 강조하는 것이 “성찰(省察)”이다. 매일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돌아보는 것이다. 송나라의 도사 장백단(張伯端)은 “오진편(悟眞篇)”에서 “일일삼성오신(一日三省吾身)”, 하루에 세 번 자신을 살피라고 했다. 단순히 “나쁜 짓을 하지 않았나”를 점검하는 것이 아니다. “선한 마음을 냈는가, 그것을 행동으로 옮겼는가”를 묻는 것이다.

2012년 프린스턴 대학의 대니얼 배트슨(Daniel Batson) 교수는 30년간의 연구를 종합하며 진정한 이타심(純粹利他主義, pure altruism)의 조건을 제시했다.

첫째,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적 관심(empathic concern)이 있어야 한다.

둘째, 그 관심이 자기 이익과 무관해야 한다.

셋째, 실제 도움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세 가지가 모두 충족되어야 선한 것이다.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다. 2015년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연구진은 “good intentions-behavior gap”을 분석했다. 설문 참가자의 87%가 자선단체에 기부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지만, 실제로 기부한 사람은 23%에 불과했다. 선한 의도와 선한 행동 사이에는 거대한 간극이 있다.

노자(老子)는 “도덕경(道德經)” 38장에서 “상덕불덕(上德不德)”이라 했다. 최고의 덕은 자신이 덕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신을 선하다고 여기는 순간, 이미 선에서 멀어진다. 왜냐하면 그 “선함”은 자기만족을 위한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2018년 서울시가 실시한 사회조사에서 시민의 91%가 자신을 도덕적이라고 평가했다. 같은 해 같은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46%가 최근 1년 내 부정직한 행동을 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진정한 선은 희귀하다. 선한 마음을 가지는 것도 어렵지만, 그것을 지속적으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더욱 어렵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완전한 악인도 아니고, 진정한 선인도 아닌.

문제는 그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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