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sdom

가난이 만든 범죄,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사랑

70위안의 도둑

2016년 5월 31일, 난징의 한 슈퍼마켓.

수척한 중년 남자가 매장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장세량(張世亮). 낡은 옷에 초췌한 얼굴, 누가 봐도 가난한 사람이었다. 그는 진열대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닭다리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재빨리 주머니에 넣었다.

이어서 그는 아동 도서 코너로 갔다. 『삼자경』과 『백가성』, 두 권의 얼룩진 그림책을 가슴에 품었다. 마지막으로 잡곡 코너에서 팥과 율무를 한 줌씩 비닐봉지에 담았다.

계산대를 지나려는 순간, 보안요원이 그를 붙잡았다.

“주머니에 뭘 넣었죠?”

장세량은 고개를 떨구었다. 주머니에서 나온 것은 닭다리 하나, 그림책 두 권, 잡곡 조금. 총 가격 70위안, 한국 돈으로 만 3천원 정도였다.

경찰서에서 그는 울기 시작했다.

“내일이 어린이날입니다. 딸아이가… 병원에 있습니다.”

그의 딸은 심각한 신장병을 앓고 있었다. 난징종합병원에서 3개월째 치료 중이었다. 의료비는 이미 20만 위안을 넘어섰고, 집도 팔았고, 친척들에게 빌릴 만큼 다 빌렸다.

“아내도 아픕니다. 허리가 안 좋아서 일을 못 해요. 저도 몸이 약해서 막노동은 못합니다.”

가족 세 명은 병원 복도에서 잠을 잤다. 하루 한 끼 먹기도 힘들었다. 그런데 내일이 어린이날이었다.

“딸아이가 닭고기를 먹고 싶다고… 한 달 전부터 그랬습니다. 책도… 병실에서 심심하다고 해서… 팥죽을 끓여주면 조금이라도 영양이 될까 해서…”

경찰관들도 말을 잇지 못했다.

언론에 이 사연이 알려지자 중국 전역이 들끓었다. CCTV는 특집 방송을 편성했고, 바이옌송 앵커는 “법은 지켜져야 하지만, 이런 아버지를 누가 비난할 수 있겠는가”라고 논평했다.

슈퍼마켓 주인은 고소를 취하했다. 전국에서 기부금이 쏟아졌다. 일주일 만에 30만 위안이 모였다. 딸아이는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장세량은 말했다.

“제가 바란 건 돈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딸아이에게 아빠 노릇을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형의 무릎

법정의 문이 열렸다. 수갑을 찬 청년이 피고인석에 앉았다. 마량(馬亮), 28세, 절도 전과 3범.

“피고인은 2년 동안 7차례에 걸쳐 휴대폰, 지갑 등을 절취했습니다. 상습범으로서…”

검사의 기소 내용이 이어지는 동안, 마량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러다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판사님, 한 가지만 부탁드려도 됩니까?”

“뭡니까?”

“제 동생… 쉬안쉬안이는 이 일을 모릅니다. 제발… 제발 동생에게는 알리지 말아 주십시오.”

그리고 그는 법정에서 무릎을 꿇었다.

“동생은 고3입니다. 성적도 좋습니다. 대학에 갈 수 있습니다. 제발… 형이 감옥에 있다는 걸 알면 공부를 못 할 겁니다.”

법정이 술렁였다. 판사가 제지했지만 마량은 일어나지 않았다.

“저는 상관없습니다. 몇 년을 살든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동생은… 동생은 저와 달라야 합니다.”

마량의 이야기가 밝혀졌다. 부모는 그가 열 살 때 이혼했다. 아버지는 재혼했고, 어머니는 떠났다. 열네 살 형이 여덟 살 동생을 키웠다.

처음엔 구걸을 했다. 그다음엔 쓰레기를 주웠다. 그러다 훔치기 시작했다. 동생 학용품을 사기 위해, 급식비를 내기 위해, 참고서를 사기 위해.

하지만 그는 동생에게는 단 한 번도 훔친 물건을 주지 않았다. 돈이 어디서 났냐고 물으면 “아르바이트했다”고 거짓말했다. 동생이 의심하면 화를 냈다.

“너는 절대 나처럼 살면 안 돼. 공부만 해. 다른 건 신경 쓰지 마.”

마량이 첫 번째로 감옥에 갔을 때, 동생에게는 “공사장에서 일한다”고 했다. 두 번째는 “군대에 간다”고 했다. 세 번째는… 더 이상 숨길 수 없었다.

면회 온 동생이 울면서 물었다.

“형, 왜 그랬어? 내가 공부 안 해도 되는데… 형이 감옥 가는 것보다는…”

마량이 철창 너머로 소리쳤다.

“닥쳐! 너는 공부해야 해. 너는 대학 가야 해. 너는 나와 달라야 한다고!”

CCTV 「오늘의 법정」은 이 장면을 그대로 방송했다. 진행자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법은 엄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형제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요?”

마량은 결국 3년형을 받았다. 하지만 동생 쉬안쉬안은 사회단체의 도움으로 대학에 갔다. 법학을 전공했다.

졸업식 날, 쉬안쉬안은 교도소를 찾았다.

“형, 나 변호사 될 거야. 형 같은 사람들을 돕는 변호사.”

마량은 처음으로 동생 앞에서 울었다.

한국, 분유 도둑

2012년 겨울, 서울의 한 편의점.

새벽 3시, 초췌한 남자가 분유 매대 앞에 서 있었다. 그는 분유통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그러다 결국 파카 안에 분유통을 넣었다.

편의점 알바생이 그를 붙잡았다.

“아저씨, 뭐 하시는 거예요?”

남자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주민등록증을 확인하니 32세, 김모 씨였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경찰이 왔다. 편의점 주인도 나왔다. 사연을 들은 모두가 말문이 막혔다.

아내는 출산 중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생후 2개월 된 아이와 단둘이 남았다. 일용직 건설 노동자였는데, 아이를 돌보느라 일을 나갈 수 없었다.

“어제부터 애가 울기만 합니다. 분유가 떨어졌는데… 돈이…”

주머니를 뒤지니 구겨진 천원짜리 두 장이 나왔다.

편의점 주인이 물었다.

“가족은 없어요?”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처가도 연락 끊겼습니다.”

경찰관이 물었다.

“기초생활수급은?”

“신청했는데 아직… 서류가 복잡해서…”

편의점 주인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말했다.

“고소 안 합니다. 분유 가져가세요.”

그리고 진열대에서 분유를 더 꺼내 봉지에 담았다. 기저귀도 넣었다.

“이것도 가져가요. 애 아빠가… 힘내요.”

할머니의 계란

2018년 봄, 부산의 한 대형마트.

70대 할머니가 계란 한 판을 카트에 넣었다. 그리고 옷 속에 숨겼다.

보안요원이 다가왔다.

“할머니, 계산 안 하신 물건이 있으신데요.”

할머니는 체념한 듯 계란을 꺼냈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사무실로 연행된 할머니는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내일이 손자 생일인데… 계란찜이라도 해주고 싶어서…”

기초생활수급자인 할머니는 폐지를 주워 생활했다. 아들은 교통사고로 죽었고, 며느리는 재혼했다. 중학생 손자와 단둘이 살았다.

“손자가 반에서 키가 제일 작아요. 먹는 게 부실해서 그런가 봐요. 생일날이라도 계란찜을…”

할머니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은 3천원. 계란 한 판은 5천원이었다.

마트 직원들이 슬그머니 돈을 모았다. 점장도 거들었다.

“할머니, 이거 가져가세요. 생일 선물이에요.”

계란 두 판과 케이크, 그리고 과일이 담긴 봉지를 건넸다.

할머니는 한참을 울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손자한테 부끄럽지 않은 할머니가 되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음의 무게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극도의 가난.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어쩔 수 없음’.

법 앞에서 이들은 모두 죄인이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우리는 쉽게 돌을 던질 수 없다.

닭다리를 훔친 아버지, 동생을 위해 도둑이 된 형, 분유를 훔친 아버지, 계란을 훔친 할머니.

그들은 말한다.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일까? 아니면 진실일까?

적어도 그 순간, 그들에게는 정말로 다른 선택지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병든 딸 앞에서, 공부하는 동생 앞에서, 울고 있는 아기 앞에서, 생일을 맞은 손자 앞에서.

법과 사랑 사이

“가난해도 정직해야 한다”는 말은 옳다.

하지만 장발장이 빵을 훔쳤을 때,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범죄자를 보는가, 아니면 인간을 보는가?

이런 이야기들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의 자리에 우리가 있었다면, 우리는 과연 다르게 행동했을까?

굶주린 아이 앞에서, 죽어가는 가족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도덕적일 수 있을까?

“어쩔 수 없었다”

이 말이 모든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때로는,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순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리고 그 순간에 인간은, 법보다 사랑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는 각자가 판단할 일이다.

다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더 나은 세상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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