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탑의 환상: 현실과 동떨어진 학문의 위험성
“지식인이 민중을 배반하는 것은 자신의 지식을 권력화할 때이다” – 에드워드 사이드
복단대학교의 황유광(黄有光) 교수 사례는 학문이 현실과 유리될 때 얼마나 황당한 주장이 나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다. 1942년생 말레이시아 출신의 이 경제학자는 호주 사회과학원 원사이자 세계적인 복지경제학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가 제시한 ‘해법’들은 과연 권위자다운가?
황 교수의 황당한 제안들
그의 주장을 들어보자. 남녀 성비 불균형 문제를 일처다부제로 해결하자고 한다. 성매매를 합법화하자고 한다. 더 나아가 기름값을 10배로 올려 교통 문제를 해결하자고 한다. 이런 주장들이 과연 “세계적 복지경제학 권위자”에게서 나올 법한 이야기인가?
문제는 이런 주장들이 단순히 학문적 가설이 아니라 실제 정책 제안으로 제시된다는 점이다. 수식과 이론에만 매몰된 채, 그 정책이 실제 사람들의 삶에 미칠 영향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경제학적 효율성만 추구하다 보니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적 가치는 계산식에서 사라진다.
한국의 상아탑 지식인들
이런 현상은 비단 황유광 교수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몇 년 전 한 경제학 교수는 “청년들이 집을 사려고 하지 말고 전세로 살면서 그 돈을 주식에 투자하라”고 조언했다. 자신은 강남에 여러 채의 부동산을 소유하면서 말이다. 또 다른 교수는 “N포 세대라고 불평하지 말고 더 노력하라”며 청년들의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환원시켰다.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라면값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고위 공직자들이 서민 경제를 논한다. “전세가 없어지면 집값이 내려간다”는 비현실적인 주장을 하는 정치인들도 있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바로 자신들이 살아가는 세계와 일반 국민들이 살아가는 현실 사이의 괴리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학문의 본질을 잃었을 때
“배움이란 날마다 늘어가는 것이요, 도를 닦는다는 것은 날마다 덜어내는 것이다” – 노자
진정한 학문은 현실을 이해하고 개선하기 위한 도구여야 한다. 하지만 학문 그 자체가 목적이 되고, 현실과의 접점을 잃으면 공허한 이론 놀음이 된다. 황유광 교수처럼 복잡한 수식과 모델 속에서만 살다 보면, 일처다부제 같은 황당한 해법이 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권위자’들의 발언이 정책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들의 이론적 권위 때문에 황당한 주장도 진지하게 검토되곤 한다. 결과적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일반 시민들이다.
현실과 소통하는 지식인이 필요하다
“군자는 화합하되 동일하지 않고, 소인은 동일하되 화합하지 못한다” – 논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아탑에 갇힌 권위자가 아니라 현실과 소통하는 지식인이다. 시장 바닥에서 장사하는 상인의 고충을 이해하고, 취업 준비생의 막막함을 공감하며, 육아맘의 어려움을 아는 학자 말이다.
학문적 성과와 사회적 영향력이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겸손하게 현실을 관찰하고, 작은 개선책부터 제시하는 학자들이 더 큰 기여를 한다. 화려한 이론보다는 따뜻한 시선이, 복잡한 모델보다는 상식적인 판단이 때로는 더 중요하다.
황유광 교수의 사례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아무리 뛰어난 학문적 업적을 쌓았더라도, 현실과의 연결고리를 잃으면 그 지식은 해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진정한 지식인이라면 먼저 발을 땅에 딛고, 눈높이를 사람들과 맞춰야 한다. 그것이 학문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윤리다.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앎이다” – 공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