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sdom

집착의 무게를 내려놓기 – 국수 일곱 그릇이 가르쳐준 깨달음

어떤 수행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음식을 버리면 복을 버리는 것”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자랐습니다. 밥 한 톨, 반찬 한 점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비우는 것이 미덕이자 의무라고 믿었죠.

세월이 흘러 그는 90킬로그램의 거구가 되었습니다. 몸무게만 늘어난 게 아니었습니다. ‘음식을 남기면 안 된다’는 생각은 어느새 그의 마음을 꽁꽁 묶는 족쇄가 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의 사부가 점심시간에 산으로 올라오라고 불렀습니다. 헐떡이며 산정상에 도착하니, 사부가 환한 미소로 맞아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앞에는 놀랍게도 10인분의 국수가 놓여 있었습니다.

“신도들이 정성껏 공양한 귀중한 음식이니 다 먹거라. 남기면 그들의 정성을 저버리는 것이다.”

수행자는 죽을힘을 다해 먹기 시작했습니다. 5인분… 6인분… 배가 터질 것 같았지만 멈출 수 없었습니다. ‘음식을 남기면 안 된다’는 생각이 그를 옥죄었습니다. 7인분째 억지로 입에 넣는 순간, 그는 갑자기 벌떡 일어났습니다.

“사부님! 제가 다 못 먹어도 돼지가 먹을 것이고, 돼지가 못 먹으면 미생물이 먹을 텐데, 왜 제가 다 먹어야 합니까?”

사부는 빙그레 웃으며 답했습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공양품을 아끼는 마음은 좋다. 하지만 그것에 집착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 순간, 수행자는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평생 지켜온 ‘음식을 남기지 않는다’는 원칙이 어느새 자신을 구속하는 감옥이 되어버렸다는 것을요.

도덕경 제1장에서 노자는 말했습니다.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 – 도라고 말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가르침이라도 그것을 절대적 진리로 붙잡는 순간, 그것은 참된 도에서 멀어집니다.

또한 장자는 “대붕이 북쪽 바다에서 남쪽 바다로 날아갈 때, 물 위를 삼천 리나 치며 구만 리를 올라간다”고 했습니다. 대붕은 자유롭게 날기 위해 작은 가지에 앉지 않습니다. 우리가 작은 규칙에 매달릴 때, 우리는 대붕처럼 날 수 없습니다.

도덕경 제48장에는 이런 구절도 있습니다. “위학일익 위도일손(爲學日益 爲道日損)” – 학문을 하면 날로 더해지지만, 도를 닦으면 날로 덜어진다. 참된 지혜는 더하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에 있습니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의 가르침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억지로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 좋은 것도 강요하면 부자연스럽고, 옳은 것도 집착하면 도에서 멀어집니다.

태상감응편에서는 “화복무문 유인자소(禍福無門 惟人自召)”라 했습니다 – 화와 복에는 정해진 문이 없고, 오직 사람이 스스로 부르는 것이다. 음식을 아끼는 마음은 복을 부르는 것이었지만, 그것에 매달린 순간 오히려 화를 자초한 것입니다.

그 수행자는 이후 음식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합니다. 배가 부르면 남기고, 더 필요하면 더 먹었습니다. 음식을 소중히 여기되, 그것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마음의 짐을 내려놓자 몸의 무게도 자연스럽게 줄어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열자는 “지인자천불위 지천자인불행(至人者天不違 知天者人不行)”이라 했습니다 – 지극한 사람은 하늘을 거스르지 않고, 하늘을 아는 사람은 억지로 행하지 않는다.

우리 각자의 삶에도 이런 ‘국수 일곱 그릇’이 있지 않을까요? 한번쯤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이 나를 자유롭게 하는가, 아니면 구속하는가를.

집착을 놓는다는 것은 소중한 것을 버리는 게 아닙니다. 그것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물처럼 유연하게 흐르되, 물에 빠지지 않는 것. 이것이 도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삶의 지혜입니다.

집착의 무게를 내려놓기 – 국수 일곱 그릇이 가르쳐준 깨달음” 에 달린 1개 의견

  • 다른사람 사례보면 바보같은데 정작 나도 다른걸로 그러고있는 아이러니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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