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덕
선행을 하면 공덕이 쌓인다.
부처님에게 가서 빌면 공덕이 쌓인다. (한국은 어차피 도관도 거의 없으니까)
성당에 가서 기도하면 공덕이 쌓일까?
이것은
“마음”을 봐야 한다.
만약 내가 선행을 하는 이유가 공덕, 복덕을 쌓기 위한 목적이라면,
미안하지만 쌓기 어렵다.
당신이 재래 시장 가서, 할머니가 뭐 팔고 있는것 보고
나이 먹은 분이 장사하는게 불쌍해서, 왕창 샀어 , 빨리 집에 가시라고
그리곤 선행을 했다고, 기분이가 좋아.
그리고 친구, 가족에게 이야기해
그래?
공덕은 이미 사라짐
선행 자체는 맞아
그렇지만 공덕이 쌓이지는 않아.
복이 쌓이지는 않아.
“무상보시” 상이 없는 보시들이 공덕이 쌓이지
특히 내가 선행했으니 복받겠지?
그건 “교역”이지
매매라고
세상 모든것은 마음과 관계되지
사실 진정한 선행이라면
할머니면 불쌍한가?
그건 당신의 마음속의 어떤 편견의 반영이라고
중국의 양무제는 겁나 독실한 불교 신자였어
그래서 사찰도 많이 만들고
자주 출가 하고 싶어했지
사실 이 분 전에는 승려들도 고기 먹었어
그런데 살생 계율을 지킬려고
511년부터 본인이 채식을 시작함
그리고 517년 스님 육식금지 칙령을 내려서,,, 그 이후로 불교는 고기를 안먹게 됨
그 결과 중국, 한국, 일본 불교 다 영향을 받아서 채식으로 전환. 그 전까지는 고기 먹음
왜?
양무제는 이런 행동이 무량공덕을 쌓는거라고 믿었거든
그리고 내세의 복덕을 대박 쌓는다고 믿었거든
그래서 달마조사가 중국에 왔을때
겁나 자랑하지
내가 사찰을 얼마나 많이 지었는지 아냐???
내가 승려들에게 보시 겁나 많이 한거 아니?
“자 … 내 공덕 더럽게 많지? ” 물어보잖아
달마조사가 이야기 하지
“너 공덕 없어”
그건 니가 한 모든 행위가 “유상보시”
목적이 공덕을 쌓고, 복덕을 얻기 위한 거잖아.
교환이잖아.
양무제는 평생을 그렇게 독실하게 살았지만
“무아”가 무엇인지 모른거지
“무아”라는게
나를 잊는다는 뜻이 아니야
내가 없다는 것인데
내가 없다는 말은 내 의식과 의지가 없다는 이야기
그냥 당신이 하는 행위에 어떤 의미가 없어, 그냥 당신이 선 그 자체야
나는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어
그런데 남들은 그걸 선행이라고 부르네
그런게 무아이타 인 것
이타를 위한 이타가 아니라
그래
절에가서
기와도 기부하고
불상에 금칠 기부도 하고
향 올리고
초도 켜고
뭐하러 간거지?
“평안함을 주세요”
“복을 내려주세요”
“무엇을 해결해주세요”
“아들 좋은 대학 가게 해주세요”
“남편 승진하게 해주세요”
“부자되게 해주세요”
교환하러 간거잖아.
불교를 예로 들었지만
기독교, 천주교 다 마찬가지라고
도대체 무엇을 할려는 것이냐?
누구에게 뭘 주세요.
그런게 종교가 아니라
내가 나를 갈고 닦는 것
즉 수행을 하는 것이 진정 종교를 믿는 행위라는 것이지
복은 본인의 수행으로 얻는거지
신이나 부처에게 구걸해서 얻는게 아니라고
누구나 불성이 있어서, 깨달으면 다 부처다.
뭐 누구나 마음속에 도심이 있으니, 누구나 득도가 가능하다.
사실 다 비슷한 이야기지
사실 불교의 무상보시는 내가 예전에 이야기했던 음덕을 쌓는다. 같은 개념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