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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 성묘, 가지 말아야 할 다섯 부류 – 도덕경과 음양의 관점

청명/한식이 다가오면 사람들이 움직인다. 묘를 찾고, 잡초를 뽑고, 술과 음식을 놓고 절을 한다. 조상에게 안부를 전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일이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조상을 기리는 마음이야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지만, 몸의 조건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도교에서는 이것을 기운의 문제로 본다. 묘지는 음기가 짙은 곳이다. 산 사람의 양기가 충분해야 그 음기를 감당할 수 있고, 양기가 약한 사람은 감당하지 못한다. 감당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가. 기운이 빠진다. 몸이 무거워진다. 이유 없이 아프다. 민간에서는 이것을 흔히 뭔가 안 좋은 것이 붙었다고 표현하는데, 도교적으로 말하면 음양의 균형이 무너진 것이다.

도덕경(道德經) 10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載營魄抱一 能無離乎 專氣致柔 能嬰兒乎. 넋을 싣고 하나를 껴안아 떨어지지 않게 할 수 있는가. 기를 오로지 하여 부드러움에 이르러 갓난아이 같을 수 있는가. 노자가 여기서 묻고 있는 것은 생명력의 보전이다. 넋이 몸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 기를 모아 부드럽고 유연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 이것이 건강한 상태이고, 이 상태가 유지되어야 외부의 거친 기운을 만나도 흔들리지 않는다. 문제는 이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음기가 짙은 곳에 가면, 이미 느슨해진 넋과 기가 더 흔들린다.

누가 그런 사람인가.

첫 번째는 임산부다. 아이를 품고 있는 여자의 몸은 평소와 다르다. 자기 기운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뱃속 아이에게도 기운을 나눠주고 있다. 에너지가 둘로 분산되어 있으니 당연히 외부 기운에 취약해진다. 여기에 실질적인 문제도 있다. 조상의 묘는 대개 산에 있다. 산길은 험하고, 발밑이 불안정하다. 걸음이 무거워진 임산부에게 산길은 위험하다. 태기가 흔들릴 수 있다. 마음이야 가고 싶겠지만, 몸이 허락하지 않는 시기가 있다. 도교에서는 부득이하게 가야 할 경우 배를 붉은 천으로 감싸라고 한다. 붉은색은 양기를 상징하고, 음기를 막는 역할을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일곱 살 이하의 어린아이다. 아이들은 天眼이 열려 있다는 말이 도교 안에서 예로부터 전해진다. 어른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는 뜻인데, 이것을 신비롭게 해석할 필요는 없다. 아이의 감각이 어른보다 열려 있다는 것이다. 필터가 아직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외부 기운에 그대로 노출된다. 도덕경 10장이 말하는 嬰兒의 상태, 갓난아이의 상태는 기가 순수하고 부드러운 상태인데, 이 부드러움은 동시에 취약함이기도 하다. 갓난아이가 강한 것은 내적 기운이 순수하기 때문이지, 외부 충격을 견디기 때문이 아니다. 아이를 묘지에 데려가는 것은 아직 껍질이 단단해지지 않은 과일을 거친 바람에 내놓는 것과 같다.

세 번째는 중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다. 몸이 병들면 기운이 약해지는 것은 누구나 안다. 도교에서는 이것을 원신(元神)이 허약해진 상태로 본다. 원신이 허약하면 외부의 나쁜 기운이 쉽게 침범한다. 이것은 현대 의학의 언어로 바꾸면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와 비슷한 구조다. 면역이 약할 때 감염에 취약해지듯, 기운이 약할 때 음기에 취약해진다. 오랜 병으로 누워 있는 사람에게 먼 길을 가게 하는 것 자체가 몸에 무리를 주는 일이고, 그 끝에 음기 짙은 공간이 기다리고 있으니 몸에 좋을 리가 없다.

네 번째는 나이가 많은 어르신이다. 이것은 어르신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몸의 기능이 쇠퇴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고, 그 이치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 도교의 기본 태도다. 묘지는 대개 외진 곳에 있고, 가는 길이 험하다. 연로한 몸으로 그 길을 걷는 것은 체력적으로 부담이 크다. 거기에 묘 앞에 서면 이미 먼저 간 가족이 떠오른다. 함께 살았던 사람, 먼저 보낸 사람. 슬픔이 밀려오고, 감정이 요동치면 기가 흐트러진다. 어르신의 마음이 흔들리면 몸도 따라 흔들린다. 이 두 가지가 겹치면 몸이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다섯 번째는 큰 병을 막 이겨낸 사람이다. 병이 나았다고 기운이 돌아온 것은 아니다. 겉으로는 회복된 것 같아도, 안에서는 아직 기가 차오르지 않았다. 물이 빠진 저수지에 비가 내린 직후와 같다. 수위가 올라가고 있지만, 아직 가득 차지는 않았다. 이 상태에서 음기가 짙은 곳에 가면 채 차오르지 못한 기운이 다시 빠질 수 있다. 회복기에는 가만히 있는 것이 가장 좋은 수행이다.

도덕경 10장의 구절로 돌아가면, 載營魄抱一이라는 말의 핵심은 하나로 모은다는 것이다. 넋과 몸을 하나로 붙들고 있어야 한다는 것. 위에서 말한 다섯 부류의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다. 넋과 몸이 단단히 붙어 있지 못한 상태라는 것이다. 임산부는 기운이 분산되어 있고, 아이는 기운이 아직 여물지 않았고, 중병 환자는 기운이 소진되었고, 어르신은 기운이 쇠퇴했고, 회복기 환자는 기운이 아직 차오르지 않았다. 이 다섯 가지 경우 모두 營魄이 제대로 실려 있지 않은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 음기가 강한 곳에 가면, 느슨해진 틈으로 기운이 빠져나가거나 외부의 탁한 기운이 들어올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도교에서는 간단하게 본다. 직접 가지 못하면 다른 가족이 대신 가서 조상에게 사정을 고하면 된다. 조상도 안다. 후손의 몸이 온전하지 않은데 억지로 찾아오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진짜 효는 몸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형식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보전하면서 마음을 전하는 것이다. 혹 성묘 중에 몸이 좋지 않다면, 근처 사묘에 들러 참배한 뒤 돌아가는 것이 좋다고 전해진다.

시간도 중요하다. 성묘는 아침 다섯 시 이후, 낮 한 시 이전에 마치는 것이 좋다. 묘(卯)시 이후, 오(午)시 이전이다. 오시는 하루 중 양기가 가장 강한 시간이고, 이 시간에 가까울수록 양기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민간에서는 새로 쓴 묘는 일찍 가고, 오래된 묘는 조금 늦게 가도 된다고 한다. 새 묘는 아직 음기가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양기가 약한 이른 아침을 피하는 것이고, 오래된 묘는 이미 기운이 안정되었기 때문에 조금 여유가 있다는 뜻이다. 옷은 화려하지 않은 것이 좋고, 특히 붉은색 계열은 피한다. 조상 앞에서 양기를 과시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묘지라는 공간의 분위기와 맞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차분하고 수수한 옷이 그 자리에 맞다.

이런 금기들을 미신이라고 치부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 수 있다. 다만 수천 년 동안 전해져 온 금기에는 대개 이유가 있다. 그 이유가 기운이든, 체력이든, 감정이든, 결국 가리키는 곳은 같다. 자기 몸과 마음의 상태를 먼저 살피라는 것. 조상을 기리는 마음은 어디서든 전할 수 있다. 몸이 온전하지 않은 날에는 집에서 조용히 마음을 모으는 것이 묘까지 가서 쓰러지는 것보다 낫다. 노자가 말한 것처럼, 넋을 싣고 하나를 껴안아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 성묘를 가든 안 가든, 이것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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