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대체 불가능한 사람의 조건 – E자형 인재와 도덕경의 我獨異於人
인공지능(AI) 시대에 대체 불가능한 사람(Irreplaceable Person)의 조건은 한 가지를 깊이 파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영역 여러 개를 조합하는 것이다. AI가 단일 기술의 반복 업무를 대신하는 시대에, 가장 먼저 대체되는 사람은 역설적으로 말 잘 듣는 사람이다. 시키는 대로 하고, 반복을 지겨워하지 않고, 꾸준히 한 가지를 파는 사람. 과거에는 이런 사람이 모범이었다. 지금은 이런 사람이 가장 먼저 바뀐다.

2026년 1월,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탈 안드레센 호로위츠(Andreessen Horowitz, a16z)의 공동 창업자 마크 안드레센(Marc Andreessen)이 레니 라치츠키(Lenny Rachitsky)의 팟캐스트에 출연해서 한 말이 꽤 직설적이었다. 그는 래리 서머스(Larry Summers) 전 하버드 총장의 조언을 빌려 이렇게 요약했다. 대체 가능한 사람이 되지 마라(Don’t be fungible). 한 가지만 잘하는 사람은 바꿔치기가 된다. 그리고 바꿔치기가 되는 순간, 값이 떨어진다.
안드레센이 말한 핵심은 이것이다. 과거에는 T자형 인재(T-shaped talent)가 이상적이었다. 한 분야에 깊이 파고들되, 나머지는 얕게 훑는 사람. 그런데 인공지능이 얕은 부분을 전부 해주는 시대가 되면서, T자의 가로 막대가 의미를 잃었다. 안드레센은 이것을 E자형 인재(E-shaped talent)로 바꿔 말했다. E자형 인재란 깊이 파고든 축이 하나가 아니라 두 개, 세 개인 사람이다. 서로 다른 영역을 여러 개 가지고 있되, 각각에서 상위 25% 안에 드는 사람. 이런 사람은 AI가 대체할 수 없다. 조합 자체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의 원류를 따라가면 딜버트(Dilbert) 만화를 만든 스콧 애덤스(Scott Adams)가 나온다. 애덤스는 세계 최고의 만화가도 아니었고, 경영 전문가도 아니었고, 최고의 유머 작가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림을 꽤 잘 그리고, 사무실 생활을 꿰뚫고, 거기에 독특한 유머 감각을 얹자 전 세계 65개국에 연재되는 만화가 태어났다. 애덤스는 이것을 재능 쌓기(Talent Stack)라고 불렀다. 재능 쌓기란 평범한 재능 두세 개를 쌓아서 비범한 조합을 만드는 전략이다. 하나에서 세계 최고가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두세 가지에서 상위권에 드는 것은 노력하면 가능하다. 그리고 그 조합은 세상에 거의 없다.
안드레센은 여기에 인공지능이라는 변수를 더했다. AI가 있으면 한 사람이 다룰 수 있는 영역의 수가 늘어난다. 코딩에 깊은 엔지니어가 AI를 이용해 디자인도 하고 제품 전략도 짤 수 있게 되면, 그 사람은 세 가지 영역을 동시에 커버하는 존재가 된다. 과거에는 팀이 해야 했던 일을 한 사람이 해내는 것이다. 이런 사람을 대체하려면 같은 조합을 가진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그런 사람은 거의 없다. 대체 불가능의 조건이 기술의 깊이에서 조합의 희소성(Scarcity of Combination)으로 옮겨간 것이다.
반대로, 한 가지만 깊이 파서 그것만 반복하는 사람은 위치가 좁아진다. 코딩만 하는 사람은 AI가 코딩을 해주는 순간 자리가 흔들린다. 디자인만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쓸모없어진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 분야만으로 자기를 정의하는 사람이 약해진다는 이야기다. 축이 하나인 텐트는 바람에 쓰러진다. 축이 셋이면 웬만한 바람에는 버틴다.
도덕경(道德經) 20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衆人昭昭 我獨昏昏 衆人察察 我獨悶悶
뭇사람은 환히 밝은데, 나 홀로 어둡다. 뭇사람은 또렷한데, 나 홀로 답답하다.
이 구절을 읽으면 노자가 자기 비하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맥락을 보면 정반대다. 노자는 세상 사람들이 밝다고 여기는 것, 또렷하다고 여기는 것이 실은 표면이라고 말하고 있다. 뭇사람이 시험 점수에 환호하고, 승진에 들떠 있고, 남들이 가는 길이 뚜렷하다고 확신할 때, 노자는 그 뚜렷함이 오히려 눈을 가린다고 본 것이다. 남들과 같은 방향으로 밝게 보이는 사람은 결국 남들과 같은 자리에 서게 된다.
20장의 끝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我獨異於人 而貴食母. 나 홀로 남과 다르니, 어미, 즉 도(道)를 귀하게 여긴다. 여기서 食母는 근원을 먹고 산다, 근원에서 자양분을 얻는다는 뜻이다. 남들과 다른 길을 가되, 그 다름이 근원에 뿌리를 둔 사람. 이것이 노자가 말한 사람의 모습이다.
안드레센이 말하는 대체 불가능한 사람과 노자가 말하는 我獨異於人 사이에 2,500년의 시차가 있지만, 구조는 같다.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면 안전해 보인다. 시키는 대로 하면 칭찬을 받는다. 그런데 그 안전함은 보호막이 아니라 투명한 벽이다. 밖에서 보면 잘 가고 있는 것 같은데, 안에서는 점점 좁아진다.
말 잘 듣는 사람이 위험한 이유는 순종 자체가 나빠서가 아니다. 순종이 습관이 되면 질문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왜 이 일을 하는가, 이 방향이 맞는가, 다른 방법은 없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불편하다. 조직에서 환영받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런데 AI가 대체할 수 없는 것이 정확히 이 질문이다. 답을 내는 것은 기계가 더 빠르다. 그런데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를 아는 것, 기존 틀을 의심하고 다시 짜는 것, 이것은 아직 사람의 영역이다.
사람을 오래 관찰하면 보이는 것이 하나 있다. 20대에 성실했던 사람이 40대에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20대에 이것저것 기웃거리며 방황했던 사람이, 30대 후반쯤 갑자기 자기만의 영역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있다. 방황이 아니라 탐색이었던 것이다. 여러 분야를 기웃거린 경험이 쌓여서, 어느 순간 그 조합이 하나의 독특한 가치로 수렴한다. 안드레센의 E자형 인재는 처음부터 설계된 것이 아니다. 살아온 궤적이 만들어낸 것이다.
문제는 한국 사회가 여전히 한 우물을 파라는 서사에 강하게 묶여 있다는 것이다. 한 가지를 꾸준히 하는 사람을 진정성 있다고 부르고, 여러 가지를 하는 사람을 산만하다고 부른다. 이력서에 빈칸이 있으면 불안해하고, 경력의 일관성이 깨지면 설명을 요구받는다. 이 구조 안에서는 E자형 인재가 자라기 어렵다. 한 줄로 설명이 안 되는 사람을 걸러내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장은 이미 달라지고 있다. AI가 보조하는 시대에, 혼자서 기획하고 만들고 팔 수 있는 1인 다역(One-person Army)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팀을 꾸리지 않아도 제품이 나오고, 부서를 나누지 않아도 사업이 돌아간다. 이런 사람은 이력서로 설명이 안 된다. 그래서 기존 시스템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결과물은 보인다. 결과물이 보이기 시작하면, 이력서는 의미를 잃는다.
안드레센은 팟캐스트에서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자기 아들이 10살인데, 학교 대신 AI와 대화하면서 공부한다고 했다. AI에게 질문하고, 틀리면 교정받고, 궁금한 것을 끝까지 파고든다. 이것은 과거의 교육이 전제한 것과 정확히 반대 방향이다. 과거의 교육은 가르치는 사람이 정한 순서대로, 정한 내용을, 정한 속도로 익히는 것이었다. 그 안에서 최적화된 사람이 말 잘 듣는 사람이었다. AI 시대의 학습은 반대다. 스스로 궁금한 것을 찾고, 스스로 깊이를 정하고, 스스로 방향을 튼다. 이 구조에서 최적화된 사람은 호기심이 많고 경계를 넘는 사람이다.
노자의 20장을 다시 읽어보면, 마지막에 나 홀로 남과 다르다는 선언이 외롭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그것은 체념이 아니라 선택이다. 뭇사람이 가는 방향이 밝아 보일 때, 거기에 합류하지 않는 것. 뭇사람이 또렷한 답을 들고 있을 때, 자기만의 물음을 들고 서 있는 것. 이것이 2,500년 전에도, 지금도, 대체 불가능한 사람의 조건이다.
다만, 남과 다른 것 자체가 가치는 아니다. 다름이 근원에 닿아 있어야 한다. 食母. 근원을 먹고 사는 사람. 자기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자기가 무엇에서 에너지를 얻는지, 자기만의 조합이 어디를 향하는지를 아는 사람. 그 앎이 있을 때, 다름은 산만함이 아니라 방향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