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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는 정말 떠나는가 – 혼백, 신명, 그리고 보이지 않는 세계의 감각

죽은 자는 정말 떠나는가. 동양의 오래된 물음이다. 혼백(魂魄)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이래, 사람이 죽으면 혼(魂)은 양기(陽氣)를 따라 하늘로 오르고 백(魄)은 음기(陰氣)를 따라 땅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주자(朱子)는 이것을 향불에 비유했다. 향에 불을 지피면 연기는 올라가고 재는 남는다. 연기가 혼이고 재가 백이다. 그런데 간혹, 그 연기가 흩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어떤 고등학생이 낮잠을 자다 온몸이 굳어 깨어나지 못한 적이 있었다. 의식은 있으나 몸이 움직이지 않는, 이른바 가위눌림의 상태였다. 간신히 눈을 실낱만큼 떴을 때, 침대 머리맡에 검은 옷을 입은 여자가 서서 머리를 빗고 있었다. 긴 머리카락이 얼굴 전체를 덮고 있었다. 방 안의 다른 것들은 흐릿하게 보이는데 그 형상만 또렷했다. 눈으로 본다기보다 의식 자체가 그것을 감지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과학은 이런 현상을 특정 주파수의 자기장이 뇌의 측두엽을 자극해 발생하는 감각 왜곡으로 설명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 다음이다. 이미 세상을 떠난 할머니가 나타나 그 검은 형상에게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이미 3년이 지난 뒤였다. 그동안 수없이 꿈에서 할머니를 만났지만, 매번 얼굴이 검은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 처음으로 할머니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화난 표정으로 그 형상을 밀치고 쫓아낸 뒤, 웃으면서 말했다. 안 무섭지, 할머니 왔어, 어서 일어나 학교 가. 그 순간 몸이 풀렸고, 속옷까지 땀에 젖어 있었다. 방 안에는 할머니의 영정 사진이 놓여 있었다.

동양의 전통적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단순한 환각이 아니다. 조선시대 학자 이규경(李圭景)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사람의 양기가 혼이 되어 몸에 붙어 있으며, 뼈와 살이 썩으면 혼이 의지할 곳을 잃고 흩어진다고 했다. 그런데 흩어지지 않는 혼이 있다. 한(恨)이 남아서 떠도는 것이 귀신이라면, 사랑이 남아서 떠도는 것은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가. 도교에서 말하는 신명(神明)이라는 개념이 그것에 가깝다. 한 세상을 미련 없이 살다 간 이의 혼은 양기를 타고 올라 밝은 존재, 곧 신명이 된다. 우리 말에 신명 난다는 표현이 여기서 왔다.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숭배가 아니라, 신명이 된 이에게 예를 올리는 것이다.

비슷하지만 결이 다른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할머니를 잃은 대학생이 반년 동안 똑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었다. 꿈속에서 할머니가 몇 걸음 앞에서 걸어오는데, 모습이 평소와 조금 달랐다. 주변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할머니를 반겼지만, 꿈속의 본인만이 할머니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도망쳤다. 매번 도망쳤다. 할머니가 다가올수록 더 빨리 뛰었고, 할머니가 가까이 왔을 때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났다. 이런 꿈을 네다섯 번 꾸었다. 마지막 꿈은 집 앞이었다. 할머니 집에서 본인 집까지 1분도 안 되는 거리.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3학년까지 6년간, 집에 아무도 없을 때면 늘 할머니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했다. 할머니 손에는 십몇 년 동안 쓴 낡은 열쇠가 있었고, 열쇠에 새겨진 글자는 이미 닳아 보이지 않았다. 그 마지막 꿈에서 할머니가 혼자 걸어왔다. 역시 무서웠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나를 보러 온 것일 수도 있겠다. 가만히 서서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다가와서, 열쇠를 꺼내 문을 열어주고, 돌아서서 걸어갔다. 아무 말도 없이. 그 뒤로 그 꿈은 다시 오지 않았다.

나중에서야 깨달았다고 한다. 할머니는 그저 한번 보고 싶었던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 수도 있고, 얼굴이라도 보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매번 자기가 무서워서 도망쳤으니, 할머니는 결국 마지막으로 문만 열어주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떠났다. 내가 무서워하는 모습이 할머니를 얼마나 슬프게 했을까. 이 생각을 하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고 했다.

도덕경(道德經) 제16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致虛極 守靜篤 萬物並作 吾以觀復. 비움을 끝까지 밀고 가고, 고요함을 지극히 지키면, 만물이 함께 일어나는 것을 보며 나는 그 돌아감을 본다. 노자가 말하는 복(復)은 돌아감이다. 모든 것은 근원으로 돌아간다. 혼백의 분리도, 기(氣)의 흩어짐도, 결국은 돌아감의 한 형태일 뿐이다. 그런데 돌아가기 전에, 한 번만 더 보고 싶은 얼굴이 있다면. 그것이 사랑인지, 미련인지, 아니면 기(氣)가 완전히 소산되기 직전의 마지막 응집인지는 알 수 없다.

한편, 앞의 이야기들과는 결이 다른 것도 있다. 2001년, 서른일곱 살의 한 남자가 가족과 함께 화산(華山)을 올랐다. 화산은 도교 오악(五岳) 중 서악(西嶽)에 해당하는 산이다. 송나라 때 도교가 크게 부흥하면서 화산파(華山派)가 형성되었고, 진단(陳摶)이라는 도사가 이곳에서 전통적인 도가 학설에 유불(儒佛)의 사상을 융합하여 내단(內丹) 이론을 체계화한 곳이기도 하다. 산을 오르다 도관(道觀)을 지나게 되었는데, 이 남자는 귀신도 신도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도관의 신상(神像) 앞에서 욕설을 퍼부었다. 그리고 계속 올랐다. 새벽 네 시쯤 정상에 도착해 해가 뜨기를 기다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병원으로 옮겨 뇌출혈을 의심했으나 검사상 이상이 없었다. 이틀간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가 깨어났을 때, 큰형에게 울면서 말했다. 귀신과 신은 실재한다고.

그가 말하기를, 검은 옷을 입은 두 사람이 쇠사슬을 목에 걸어 끌고 갔다. 올라오는 데 두세 시간 걸린 그 도관까지 순식간에 끌려갔는데, 안에 앉아 있던 것은 진흙으로 만든 상이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였다. 옆에는 야차(夜叉)와 악귀가 서 있었다. 신상 앞에 꿇린 채 채찍으로 입을 맞았다. 한참을 맞은 뒤 누군가 들어와 그를 위해 말을 해주었고, 작은 귀졸이 그를 묘 밖으로 들어 던졌다. 그 순간 깨어났다. 기이한 점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그 뒤 1, 2년간 말을 더듬거렸고 혀에 통증이 있었다는 것이다. 입을 맞은 것의 물리적 흔적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구체적이다. 다른 하나는, 그를 위해 말을 해준 존재가 집안 어른들에 의하면 해방 초기 화산 기슭에서 비적 소탕 중 전사한 선조라는 것이다.

화산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도교의 오악은 각각 특정한 기(氣)를 다스리는 것으로 여겨졌고, 화산은 서방의 금기(金氣)를 주관한다. 갈홍(葛洪)의 포박자(抱朴子)에서도 명산에 들어가 수련하되 그 산의 신에게 반드시 예를 갖추라고 했다. 산천의 기가 응집된 곳에서 그 기를 모독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이것을 미신이라 부를 수도 있고, 아직 과학이 도달하지 못한 영역이라 부를 수도 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 남자는 그 뒤로 도관 앞을 지나면 고개를 숙였다는 점이다.

이 이야기들을 관통하는 것이 있다면, 보이지 않는 세계가 보이는 세계와 완전히 단절되어 있지 않다는 감각이다. 동양에서는 이것을 음양(陰陽)의 교감이라 불렀다. 양의 세계에 사는 자가 음의 세계를 완전히 부정할 수 없고, 음의 세계에 있는 자도 양의 세계와의 끈을 완전히 놓지 못하는 것. 도덕경 제1장의 此兩者同出而異名, 이 둘은 같은 곳에서 나왔으나 이름이 다를 뿐이라는 구절이 떠오르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열쇠를 들고 문을 열어주던 할머니는 결국 무엇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화산의 신상은 왜 그토록 모독에 민감했던 것일까. 혼백이 분리된 뒤에도 남는 것이 있다면, 그것의 정체는 사랑인가 아니면 기(氣)의 잔향인가. 어쩌면 그 구분 자체가 산 자의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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