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양명 지행합일, 생각은 문제를 만들고 행동은 답을 만든다
생각은 문제를 만들고, 행동은 답을 만든다. 왕양명(王陽明, 1472~1528)이라는 인물이 500년이 넘도록 회자되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가 말한 것을 실제로 해냈기 때문이다. 사상가이면서 군사를 지휘했고, 학문을 논하면서 반란을 평정했다. 지행합일(知行合一)이라는 네 글자가 단순한 철학 명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 전체를 관통한 실천이었기에, 그 무게가 다르다.

사람이 실패하는 가장 흔한 경로는 의외로 어리석음이 아니다. 대부분은 충분히 알고 있다. 문제는 알면서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공자가 말한 삼사이후행(三思而後行), 곧 세 번 생각한 뒤에 움직이라는 가르침은 본래 신중함을 권하는 것이었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 이 말은 미루기의 면죄부가 되었다. 세 번 생각하는 사이에 용기가 닳고, 닳은 용기 위에 게으름이 쌓이고, 결국 해야 할 일은 마감에 쫓겨 허겁지겁 처리된다. 왕양명은 이 구조를 꿰뚫어 보았다. 전습록(傳習錄)에서 그는 學問思辨, 곧 배우고 묻고 생각하고 분별하는 것 모두가 실천이 수반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고 못 박았다. 20년 넘게 시장을 관찰해 온 경험으로 말하자면, 투자에서도 이 패턴은 정확히 반복된다. 분석은 완벽하되 매수 버튼을 누르지 못하는 사람, 손절 기준을 정해놓고도 한 번만 더 기다려보자며 미루는 사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워런 버핏이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의 제목이 떠오른다. “Buy American. I Am.” 그는 시장이 공포에 빠졌을 때 자신의 판단대로 움직였다. 알고 있는 것과 그것을 실행하는 것 사이의 간극, 그 간극에서 대부분의 기회가 증발한다.
왕양명 자신의 삶이 이미 하나의 사례다. 젊은 시절 그는 주자(朱子)의 격물치지(格物致知)를 글자 그대로 실험해보기로 했다.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면 앎에 이른다는 가르침을 믿고, 집 앞 대나무 앞에 앉아 7일간 그 이치를 캐려 했다. 결과는 병뿐이었다. 그러나 그 실패 자체가 하나의 깨달음이었다. 밖에서 진리를 찾는 방식이 자신에게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몸으로 확인한 것이다. 격죽(格竹)의 실패가 없었다면 심학(心學)의 탄생도 없었다. 먹어봐야 맛을 알고, 신어봐야 신발이 맞는지 안다. 이 당연한 이치를 사람들은 자꾸 머리로만 해결하려 든다.
도덕경(道德經) 제47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爲學日益 爲道日損. 배움은 날마다 더하고, 도를 닦는 것은 날마다 덜어낸다. 왕양명이 말한 점진(漸進)의 원리와 묘하게 맞닿는 지점이다. 그는 제자들에게 오늘의 양지(良知)가 여기까지라면 오늘은 여기까지만 온전히 밀고 나가라고 했다. 내일 또 새로운 깨달음이 열리면 그때 거기서부터 다시 밀고 나가면 된다고. 한꺼번에 모든 것을 이루려는 조급함이 오히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게 만든다. 나무에 물을 주는 것도 그렇다. 싹이 날 때부터 들통째 쏟아부으면 뿌리가 썩는다. 나무가 자라는 만큼, 물도 따라서 늘리는 것이 순서다. 욕속즉부달(欲速則不達), 빨리 하려 하면 이르지 못한다는 말은 논어에도 나오지만, 그것을 실제 수양의 체계로 만들어낸 것은 왕양명의 공이 크다.
더 흥미로운 것은 사상연마(事上磨練)라는 개념이다. 왕양명의 제자 중 한 관리가 공무가 너무 바빠서 학문에 전념할 수 없다고 하소연했을 때, 왕양명은 웃으며 답했다. 공무를 버리고 오라 한 적 없다고. 죄인을 심문할 때 그의 무례함에 화가 나지 않는지, 그의 아첨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지, 번잡한 업무에 대충 넘기고 싶은 유혹이 생기지 않는지, 그 모든 순간이 곧 수행이라고. 이것은 도교에서 말하는 수처작주(隨處作主)의 정신과 통한다. 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는 것. 특별한 장소, 특별한 시간을 기다리지 말고, 지금 내가 서 있는 바로 이 자리에서 닦으라는 것이다. 1516년 왕양명이 남감(南贛) 지역의 비적 토벌에 나섰을 때, 그는 수십 년간 관군이 해결하지 못한 도적 무리를 불과 1년여 만에 평정했다. 비결은 단순했다. 전장에서도 마음을 흔들리지 않게 하는 훈련이 이미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형세를 차분히 관찰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을 찾아내는 그 능력은 서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매 순간의 마음 다스림에서 나온 것이었다.
공자가 스승 사양자(師襄子)에게 거문고를 배울 때의 일화도 같은 맥락이다. 한 곡을 익히고 나서 사양자가 새 곡을 권하자, 공자는 아직 기법을 완전히 체득하지 못했다고 거절했다. 기법을 익힌 뒤에도 곡에 담긴 감정을 아직 모르겠다며 같은 곡을 반복했다. 감정까지 파악한 뒤에도 작곡자의 됨됨이를 알지 못하겠다며 또 반복했다. 그렇게 파고들어 마침내 그 곡의 주인이 주문왕(周文王)이라는 것까지 간파해냈다. 숙능생교(熟能生巧), 무르익으면 절로 묘한 경지가 열린다는 것은 이런 이야기다. 요즘 사람들이 잘 하는 말로 바꾸면 ‘1만 시간의 법칙’과 비슷한데, 사실 동양에서는 이미 2500년 전에 그것을 실천하고 있었다.
도덕경 제64장에 千里之行 始於足下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왕양명의 생애가 이 한 줄의 주석이다. 그는 열두 살에 성인이 되겠다는 뜻을 세웠고, 아버지는 그것을 미친 소리라 했다. 그러나 그 소년은 뜻을 세운 날부터 멈추지 않았다. 실패하고, 병들고, 귀양가고,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1508년 귀주(貴州) 용장(龍場)의 벽지로 쫓겨갔을 때도, 그는 그곳에서 소수민족을 가르치고 서원을 세웠다. 환경을 탓하지 않았다. 처지를 한탄하지 않았다.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천 번 생각하는 것이 한 번 해보는 것만 못하고, 만 번 망설이는 것이 한 번 실천하는 것만 못하다. 화려하게 넘어지는 것이 의미 없이 서성이는 것보다 낫다는 것, 그것은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종류의 깨달음이 아니다. 발로 걸어봐야 비로소 체득되는 것이다.
왕양명이 귀양서원에서 처음 지행합일을 제창했을 때, 사람들은 갈피를 못 잡았다고 한다. 너무 독창적인 주장이라 동의하는 사람도, 반대하는 사람도 정확히 무엇에 동의하고 반대하는지 몰랐다. 500년이 지난 지금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여전히 안다는 것과 한다는 것을 별개의 영역으로 놓고 살아간다. 그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한, 아는 것은 아는 것으로 끝나고 삶은 삶대로 흘러간다. 왕양명은 그 거리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진짜 아는 것은 이미 하고 있는 것이고,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직 모르는 것이라고. 그 말이 맞는지 틀린지는 각자가 직접 움직여봐야 알 일이다.
